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커뮤니티

살다

여러분이

  • 김성렬
  • 조회 수 1466
  • 댓글 수 3
  • 추천 수 0
2005년 7월 9일 06시 40분 등록
어려운 이야기 안 한다!!!



이 곳에 오면, 그리고 실린 많은 글들을 보면 ‘언어의 유희’라는 것을 실감한다.
거기에다 솔직하게 말한다면 “택도 안되는 나의 수준‘은 열등감을 넘어 좌절감마져 생긴다.
그래도 인내심을 가지고 보고 또 보고 통합사전, 지식사전, 불로그를 오가며 기를 쓰곤 한다. 왜나면 좋은 글이고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실전과 훈련을 통한 오랫동안(30년이면 해당되나?!)의 경험과 감각을 선수들에게 전달하고 싶어 한다.
내 세계 사람들은 사는데 하나도 보탬이 안 되는 짓이라고 핀잔을 주지만 그래도 그것이 하고 싶다.
왜냐면 내가 겪은 고통과 갈등을 새로운 세대들에게 똑같은 시간 과 양만큼 겪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생각에는 이러한 내 생각이 내 살림에 보탬이 되든 안 되든 나쁜 일은 아니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점에 있어서는 타인들도 과하게 부정적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선수들을 가르칠 때 설명을 위한 기준은 “어려운 이야기 안 한다.” 는 것이다.
그런데도 말을 하다보면 복잡하다. 더군다나 글로 쓰다보면 복잡하다 못해 제정신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자주 핀잔을 듣는다.
‘어이, 그것은 학문이 아니네! 형식과 규칙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해야 돼!’
‘ 범위가 너무 넓어 좁혀, 신뢰도 높여! 검증이 안되쟎아! ’
‘ 자네 지금 뭔 소리하고 있나! 정신 차려, 현실을 똑바로 보란 말야!’

그럴 때마다 나는 냉큼 대답한다.
‘그렇죠! 제가 너무 산만하고 제도적이지 못하죠...’
‘고칠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더 솔직하게 말한다면,,,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죠...
‘젠장... 사실이 그런데 나 보다 어쩌란 말이요, 거짓말을 하라는 거요,,, ’
‘그래도 지구는 돕니다.!’

최고의 찬사는 ‘니 말 맞기는 맞는데, 누가 그렇게 하냐? ’ 일 것이다.
‘아니, 맞으면 됐제, 남이사...미쳤다고 하든가 말든가!’

--------------------------------------------------------
‘글을 말을 따르지 못하고 말은 뜻을 다하지 못한다. 그래서 성인께서는 상(像)으로서 뜻을 전한다.‘ 주역에서 그랬던가? 시가 글자나 개념들의 집합이 아니고 예술인 것도 비슷하지 않나? !!?

하여간 선수들의 전술적 행동에 관하여 글로 쓰다보면 어려운 이야기가 된다.판단이나 선택에 관한 문제들은 그렇다치더라도 눈에 보이는 동작들은 슬쩍 곁 눈으로 한 번 보고, 몰래 저쪽 구석에 가서 살짝 따라 해보면 될 것을 가지고 온갖 미사여구와 복잡한 법칙이 작동하는 무슨 비밀스러운 것이 설명되는 것처럼 변해서는 안 된다.
그런 것들은 종종 멋진 옷 입고, 품위 있는 모션으로 빨간 레이저 광선을 비춰가며 자신도 잘 알지도 못하는 개념과 용어들을 늘어놓으며 이상하고 복잡한 결론에 도달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별로 좋지도 않은 머릿 속을 온통 헤집고 들쑤셔 놓은 뒤에야, ‘아니, 결론은 잘 모르겠다는 소리 아니여! ’

나는 속으로 딴 생각을 한다.
‘어이구, 저거 하느라 얼마나 고생했을까?’
그리고 거기에 각주로 따라 온 수없이 많은 영어로 된 참고 문헌들이 있다.
‘읽어 봤을까?’ 나의 궁금증은 주제로부터 멀어져 있다. 나는 바본가?
딴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적고 있는데...

------------------------------------------------------
일반적으로 인간의 행동들은 그것이 학습 과정을 거쳤든 아니면 본능처럼 보다 더 원시적이든 현상 속에서는 인지과정을 거치지 않고 수행되는 경우가 많다.
쓰레기통에 휴지를 휙 던져 넣다가 빗나가 떨어지기도 전에 에고,, 잘못 던졌군!을 인식하듯이 지각과 운동행동은 인지과정 없이 직접적으로 수행되는, 우리가 말하는 직접지각이라는 것에 의존하는 경우 대부분이다 그것은 숙련된 운동선수들의 기각 막힌 동작들만이 아니다. 일상속에서도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시속 320km 로 내리 꽂아지는 배드민턴 셔틀 콕을 받는데 그걸 어떻게 받는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고속 촬영에 3D 분석으로 설명까지는 좋다 치자 안 되는 선수 되게 할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하는데? 한 번의 채공에 세 개의 손동작을 순식간에 해치우는데 그 중심조절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말로 언어로 정확하게 기술하라고? 한다면 책 한권이다.
그리고 분명히 알고 있지 않는가? 배드민턴은 스매싱 하나로 이루어 진 게 아니다. 이중에서 삼중으로 넘어가며 하는 찌르기 동작은 그저 펜싱의 무한에 달하는 기술 중의 하나 일 뿐이다 휴지통에 쓰레기 던지면서 관찰과 검증과 신뢰도와 타당도를 분석해야 할까?

누군가 그러던가?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날마다 아침이면 이빨을 닦지만 그리고 과학적인 방법론에 입각해서 안 세어 봤지만, 모르긴 해도 횟수까지는 같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문질러지는 면적에 강도까지 정확하게 할려면 ... 그것을 관찰하고 문서로 만들고 법칙으로 만들어? 그 다음에 책으로 만들어 이빨을 훌륭하게 닦는 방법 99가지!
그렇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훈련시키려고 한다면 기술에 관한 논문만도 만 개 쯤은 써야 되네.... 날마다 다른 것을 일년 내내 가르칠 수 있으니까, ...
더군다나 그걸 개념들의 집합인 글로 써도 그것을 읽어야 할 사람 즉 감각지각을 우선으로 하는 우뇌형인 선수들에게는 글자가 글자가 아니고 어렵고 이상한 고대문자아닌가? 그걸 풀어쓰자면 .. 에... ~~ 생각하기도 싫다....
내 머리로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리석은 짓이다,
과학적 방법론이라는 것이,,, 체계적이라는 것이, 구체적이라는 것이...


물론, 박사 학위를 따서 먹고 살아야 하니까, 예술적인 동작은 못하더라도 로봇 춤 정도는 출 수 있겠지...라는 자조 섞인 태도로 컴퓨터 이진법 처리 같은 미련한 짓을 하고 있지만 그것이 그 정도면 다행이겠지만 단말기나 CPU 가 없는 인터페이스라면....
----------------------------------------------------------------

인간의 전술적 행동이란 경험과 학습과 상상의 순간적인 총집합이다. 그러나 현재 속에 이루어지는 행동은 경험과 학습과 상상이 창조적으로 재생시키고 있는 새 상품이다. 오차가 적으면 적을수록 습관이고 재고이고 크면 클수록 진화다. 뉴모델인 셈이다. 급격하면 돌연변이다. 버전이 소수점에서 단 단위로 바뀐다는 것이다.


--------------------------------------------------------------
운명을 바꾸겠다며 체계적인 문장이나 계획으로 자신을 달랠 수는 있겠지만 행동하지 않는다면 막말로 하면 ‘앙꼬 없는 찐빵,’이고 부처님 말씀을 빌리자면 ‘밥그릇에 닿는 것은 숟가락이지만 밥맛을 아는 것은 혀다’ 이다. 기초라는 것은 설명이나 분석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해 봐야 된다. 실천해야 된다.
가서 보지 않고 유비쿼터스 환경은 어떨까는 경험과 기억과 상상의 집합이다. 그것은 이해의 느낌이지 진짜 그 유비쿼터스 환경의 느낌이 아니다.

스포츠에 있어서 계획과 체계는 가치가 후하게 주면 50% 겠지만 생활의 변화를 꿈꾸는 사람에게는 90%쯤 될 것이다. 아니 99%라고 해도 지식사회에 있어서 과장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만 할 것은 그 중요도에 있어서 차이가 있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실천이 없는 계획과 노력은 지도를 세밀하게 그리면 그릴수록 실제와 멀어지는 것과 같다.
왜, 실제는 항공촬영을 하는 그 순간에도 변하고 있으니까!

‘선생님! 이번에 우승한 프랑스 선수가 했던 마지막 득점동작 기술은 꼭 배우고 싶은 데요?’
‘그래! 너 그 동작 해 봤어?’
‘....’
‘그럼, 한 번 해 보거라, ! 그리고 너의 생각을 말하면 조정해 주겠다. 할 수 있도록...’


***
이 이야기는 실용중심이니 학문 중심이니 하는 말 같지도 않는 설을 하는 누구나 자율성이나 제도적 장치를 논하면서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잘 하는 고무다리를 긁는 사람들한테 하는 농담 이야기다. 내 생각에는 기본인가, 응용인가? 과학적인 방법론으로 해결할 일인가, 직관적인 통찰인가?의 문제인 것 같다. 본고사를 안보면 우수 인재를 변별하지 못하나? 그렇다면 능력이 없는 것이다. 거부반응을 일으킬 수 없도록 정책에 정당성을 부여하지 못하나? 그렇다면 정치적인 능력이 부족한 것이다. 그걸 바라보는 학부모는 답답한 가슴으로 조이나? 그렇게 많이 돈 들여 키운 자식들이 만든 세상이 이렇다.
장자가 그랬다. 그래서 그것은 쓰레기요! 우리 아버지가 그랬다. ‘씨잘데기 없는 소리 하지 말고 하는 것이나 잘 해!’

言者不知, 知者不言, 知人者智, 自知者明. 無爲而無不爲

말하는 자는 모르고 아는 자는 말이 없다.
알고 있는 자는 지혜롭고 스스로를 아는 자는 밝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가장 적절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다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범사에 감사하고 일상에 황홀해 질 수 있다.



IP *.163.146.177

프로필 이미지
박노진
2005.07.09 08:36:37 *.118.67.80
식자의 유형에는 박학다식과 잡학다식이 있다고 합니다.
둘 다 똑똑한 유형이긴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에 적합한 것은 어떤 게 좋을까요?
"씨잘데기 없는 소리 하지 말고 ..."라구요?
"한 번 해 보거라. "하고 할 수도 있잖아요?
그래야 범사에 감사하고 일상에 황홀해 질 수 있거든요.
어쨌던 다식한 것은 사실이잖아요.
프로필 이미지
김성렬
2005.07.09 14:09:00 *.120.57.133
만다라를 그리는 티벳의 고승이나 정신분열 환자의
이상 상태는 같은 거죠.
차이가 있다면 하나는 통제하고 있고
하나는 통제범위를 벗어났다는 것입니다.
지식이, 삶이 통제하에 있는지 없는지는
그것이 삶과 실천에 공헌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달려 있을 겁니다.
본인의 입장에서는 공헌도가 떨어지면 잡학이고 높으면 박학이겠죠
타인의 입장에서 타자 전체지식이 자신에게 보탬이 되는 공헌도겠죠
정신적 장애란 사고과정이 개인 내외적으로 적응이 잘못된 결과라고
이상심리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고 힘이 없는 정의란 말만 무성하고 좌절과 고통을 가중시키죠,
지식이 정의고 실천이 힘이라면 개인차가 존재하지만
그래도 어떤 정도가 적절한 것인지 각 개인은 알 수 있다고 봅니다.

새 술을 새로운 포대에 담아야 한다면 새로운 기획과 비전은
실천이라는 새로운 포대를 통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이죠...
실천과 계획은 같은 것의 양면 같은 역동적인 것이니까,
계획하면서 실천하고 실천하면서 계획해야 한다는 거죠.

삶 속에서 길을 잃으면 박학이든 잡학이든 부정적으로
작용하기 쉽죠...
새 출발이란 가야할 길이 멀고 짐을 놓아 둘 창고를
잃어버렸다는 것인데

지고 가야할 짐이 많으면 그만큼 더 힘들지 않겠습니까?
프로필 이미지
사랑의기원
2005.07.10 02:40:18 *.190.84.114
훌륭한글 잘 읽었습니다. 자연보다 좋은 아름다움은 없습니다. 자연을 닮는 삶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