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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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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18일 16시 42분 등록
사무실이 위치한 건물 내에는 흡연실이 있다. 사무실 바로 옆이 흡연실이어서 하나 태울 것이 두 개로 늘어난다. 흡연실이 가까이 있어서 좋은 점도 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의 대화를 슬쩍 들을 수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건물에는 다양한 업종의 다양한 기업들이 입주해있다. 대부분 벤처나 중소기업 수준이고 꽤 규모가 큰 기업도 있다. 흡연실에 종종 가고 눈치가 있다 보니,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그 사람과 그 사람의 일을 보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일에 대한 대화를 들어보면, 사람 사는 것이 어디 가도 비슷하듯이 하는 일은 달라도 일의 속 모습은 비슷함을 알 수 있다. 작고 소소한 것들, 그것이 바로 일이었다. 그것을 해내는 것이 능력이었고 그것이 쌓여 승부가 결정되었다. 일 잘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 짓는 것은 일 자체가 아니라 다른 것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비즈니스가 세계적 수준의 레스토랑과 여러 모로 비슷한 면이 많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고급 레스토랑이라 할지라도 주방 안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음식들은 완벽하게 장식해 유리 접시에 담겨진 테이블 위의 음식만큼 훌륭해 보이지 않는 법이다.”
- 잭 웰치(Jack Welch)


2002년 6월 말, 우리 팀은 신규사업 준비에 뛰어 들었다. 당시 경력도 능력도 없는 내가 그 준비의 중심에서 하나의 축을 담당했다. 1년이라는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몰입과 긴장의 연속이었고 희망과 우울의 경계에 나는 있었다. 사업 기획부터 기본 프로세스 구축, 컨텐츠 개발, 시스템 테스트, 교육 운영 준비... 이 기간은 백지 위에 밑그림을 그리고, 퍼즐 조각을 설계하는 과정 같았다. 힘들었지만 의미 있었고,배우는 것 또한 적지 않았다.

1년이 지나자, 큰 그림과 조각은 대강 자리를 잡았다. 나는 고생이 끝나고 달콤한 열매를 따 먹는 일만 남았다고 기뻐했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다시 새로운 고생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 전과는 아주 다른 성질의 문제였고 고생이었다. 큰 작업이 마무리되자, 작은 작업이 남아 있었다. 윤곽 안의 작고 세세한 부분을 칠하는 것, 퍼즐의 중심에서 크고 작은 조각을 끼워 맞추는 것, 바로 그런 작업이 남아 있었다. 이것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이 없어 보였다.

나는 점차 흥미를 잃어 갔다. 나는 한 숨 지었다. 그 한 숨은 점점 잦아지고 이내 일상이 되어 버렸다. ‘고작 내가 이러려고 여기에 있는 것인가?’, ‘이게 내 일인가?’ 불평, 짜증, 변명. 내가 싫어하는 것들 안에 내가 있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일은 다 그런거야. 안 그런 일이 있나.’ 나는 이 말을 알듯 모를 듯 했다. 어쩌면 내가 경력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그 말을 체감하지 못한 것도 같았다.

언제부터인가, ‘무대 위와 무대 뒤의 차이’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무대 위의 화려함과 스포트라이트는 무대 뒤까지 비치지 않는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게는 의미 있는 깨달음이었다. 잭 웰치의 글을 보는 순간, 내가 겪는 고생과 힘들어하는 마음이 나쁜 것도 이상한 것도 아님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고생에서 의미를 찾고 마음을 모으는 것은 또 다른 것이었다.

이런 시기에 우연히 15세기에 일본의 한 사무라이가 무사도(武士道)에 관해 쓴 시를 읽게 되었다.

“내게 집이란 없었다. 나는 깨어있음을 집으로 삼았노라.
내게 생사는 없었다. 나는 호흡의 들고 남을 생사로 삼았노라.
내게 수단이란 없었다. 나는 이해를 수단으로 삼았노라.
내게 비법은 없었다. 나는 됨됨을 비법으로 삼았노라.
내게 눈이란 없었다. 나는 전광석화를 눈으로 삼았노라.
내게 귀는 없었다. 나는 감수성을 귀로 삼았노라.
내게 사지는 없었다. 나는 신속함을 사지로 삼았노라.
내게 전략이란 없었다. 나는 생각의 그늘지지 않음을 전략으로 삼았노라.
내게 설계는 없었다. 나는 기회의 앞머리 채를 거머잡는 것을 설계로 삼았노라.
내게 원칙은 없었다. 나는 정황에 적응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노라.
내게 친구란 없었다. 나는 내 마음을 친구로 삼았노라.
내게 재능이란 없었다. 나는 기지를 재능으로 삼았노라.
내게 적이란 없었다. 나는 부주의를 적으로 삼았노라.
내게 기적이란 없었다 나는 바른 생활을 기적으로 삼았노라.
내게 육체란 없었다. 나는 견딤을 육체로 삼았노라.
나는 갑옷이란 없었다. 나는 관대함과 의로움을 갑옷으로 삼았노라.
내게 성곽이란 없었다. 나는 부동의 마음을 성곽으로 삼았노라.
내게 칼이란 없었다. 나는 자아의 부재를 칼로 삼았노라.”

이 시는 이해할 새도 없이 내 가슴에 그대로 박혔다. 회유하지 않고 곧장 내 마음에 박혀 붉은 피를 흐르게 했다. 피는 나의 주먹을 불끈 쥐게 하였다. 이해는 멀리 보내고 느끼는 것으로 족했다. 내가 느낀 것은 ‘정신’이었다. 그것이 어떤 정신이고 무엇을 위한 정신인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 글을 누가 썼는지 언제 썼는지는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정신 그 자체로 다가온 것, 그 마음과 느낌과 힘이 중요했다. 비로소 나는 ‘무대 뒤의 정신이 무대 위를 결정한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무대 뒤와 무대 위의 차이’에서 혼동을 느끼던 내게 더 이상 둘의 차이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남들이 외면하는 일에서 남다른 정신으로 임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그 일을 넘어서게 된다. 일 안에 철학이 담겨 있고 철학이 일로 표현된다. 한 분야의 대가는 다른 분야의 대가와 5분만 만나도 통한다. 정신이 있고 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수련을 통해 핵심에 다가가는 안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일에서 의미를 찾아도 좋다. 일 중에는 그 자체로 정신을 고양시키는 일들이 있다. 그런 일은 다행스럽고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의미에서 일을 세운다면 어떤 일도 대단한 일이 되고 겁나는 일이 된다. 이제 내 생각은 분명해졌다.

“일을 통해 정신을 세우려하지 말고 정신을 통해 일을 세워라. 그것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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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진
2005.10.18 22:17:06 *.118.67.206
'수련을 통해 핵심에 다가가는 안목'이 우리에겐 더 더욱 필요한 때입니다. 무사의 칼과 선비의 책은 그래서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 할 일을 다하지 못하고 죄스런 마음으로 들어왔다가 마져 다하고 자야겠다는 마음을 다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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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빈
2005.10.19 09:41:54 *.217.147.199
가르침이 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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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곤
2005.10.24 21:11:45 *.51.65.107
잭 웰치가 사무라이 칼에 당했군요.
일 자체보다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것은 충분히 공감합니다.
다만 제 생각은 오히려 글 전체적인 느낌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노력만큼 성과가 나오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으로 느껴지는데요.
일을 마치고 난 후 피드백을 정확히 해보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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