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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성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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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8일 04시 24분 등록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있다.

'선생님 말씀이 옳으신데요, 아무도 그렇게 안해요!

' 어쩔수 없어요....'

나의 대답은 간단하다.

' 그것이 옳다면 그렇게 하면 된다. '

나는 사람들이 칼을 휘두르면서 '어쩔 수 없어서'라는

말로 자신을 정당화하는것을 너무 많이 보아 왔다.

'살려니까, 어쩔수 없어서...'

'어쩔수 없어, 그러니 우리도 편을 짜야돼!'

" 누구는 때리고 싶어요, 못이기면 아무도 처다봐

주지 않는걸요.. 어쩔수 없쟎아요...'

내게 무예의 기본을 가르쳐 주시던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김코치, 칼은 위험한 물건이다.

어쩔수 없어서란 정당한 이유가 되지 않는다.

칼이 없다면 어찌했겠는가? '


미국의 정치학교수가 한국인의 심리보고서를 썼는데

내가 흥분한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한국의 지식인들의

미온한 태도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그의 글을 읽으면 왜

많은 사람들이 어쩔수없다 라는 말을 쓰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으며 그러한 문제의 해결방법도 들어

있다.

나는 그의 논지에 대해 반박한다.

타문화에 대한 자기 문화적 비판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토마스 쿤의 '공약불가능성'이라는

견지와 극과 극이 서로 통하며 물리학자 보어의

' 대립하는 것은 상호보완한다' 는 모순의 존재

성립을 통해 해답을 구한다.


(한국인의 심리에 관한 보고서 ;
프레드 펠퍼드 지음 남경태 옮김그린비, 2000)


3.한국인은 왜 늘 '우리'라고 말하면서 '나'로 행동할까?

일반적으로 말해서 수치심은 집단주의 문화의 특징이고

죄의식은 개인주의 문화의 특징이다. 수치심-죄의식 구분의

나쁜 측면세서 보면, 수치심 문화권의 사람들은 부정행위를

지질렀을 때 낭패하거나 '체면을 잃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으면 그런 기분은 없다.

그런 점에서 수치심 문화는 미성숙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수치심 문화의 사람들은 그 문화의 가치들을 죄의식으로

내면화할 수 없으며 오직 부정이 폭로된다든가 하는 공개적

수모를 당했을 때에만 반응을 보인다.

그리고 그 수모는 곧 자신이 속한 집단으로부터 추방될지도

모른다는 데서 비롯된다. 죄의식 문화는 개인적 자율성에서

진일보한 점이 있다.

이 문화의 사람들은 사람의 가치들을 제대로 내면화하고

있으므로 설사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았다 해도

뉘우침과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4. 악은 무관함이다.

한국에 악은 있을 수 없다는 이유는 현실적 관계가 긴밀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러한 관계가 전반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족관계를 다른 관계들과 구별할 수 있어야만 악을

일반화하는 게 가능하다.

사회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가족이라면 그래서 모든 관계가

가족 관계에 기초하고 있다면 악은 생각할 수 없다.

악이 있다면 가족 자체가 악이라고 말하는 셈이 된다.

이는 오디푸스콤플렉스와 비슷한 신경증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모든 관계를 가족 관계의 견지에서 보는 것은

가치 선택이며, 세계를 풍부한 의미로 짜여진 인간관계망으로

만들고자 하는 결정이다.

자아가 중칩되어 있고, 모든 사람들이 항상적인 연결 상태에 있으며

정이 도처에 존재하는 세계는 신경증의 세계가 아니다.


6. 세계화는 악이다.

가족, 학교, 지역적 연고의 '우리'와 '우리 한국사람'의 '우리'

사이에는 커다란 틈이 있다. 이 틈에서 한국인들은 자유를 느끼고

무책임하게 행동할 수 있는 여지를 발견한다. 이후에 자기 행동에

대해 설명할 수만 있으면 된다.

이런 문화는 무책임성만 조장할 뿐이다. 그 속에서 개인은 마치

뇌물을 받는 자아가 공적 신분으로 활동하는 자아와 같지 않은

것처럼 여긴다.그러한 문화는 아무도 책임질 사람이 없는 틈을

만들어냄으로써 그 분리를 더욱 조장한다.

정은 단지 관계인 것만이 아니라 분리이기도 하다.

그 분리가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양측이 사랑을 교환하는지 아니면 돈을 교환하는지

여부에 달려있다.

한국인들은 대개 그 차이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

정의 체제는 지나치게 긴밀하고 지나치게 반사회적이다.

갈수록 넓어지는 전통과 법 사이의 틈이 빚어낸 혼란은

다른 문화들로부터 만이 아니라 자체 문화로부터도 소외되고

단절된다.

이틈에서 벌어지는 행동은 오로지 무책임한 것일 뿐 창조적인

무책임성 다시 말해 비전통적인 생각, 이념, 사람에 대한

책임성은 구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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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부당한 것이라도 우리니까

'내가 한 번 봐 줄테니까, 너도 한 번 봐줘..'가 아니고

재는 우리가 아니니까 무조건 칼을 겨누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것을 잘 하고 너는 그것을 잘 하니까

우리 함께 좋은 일을 해보자' 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사용한 방법이나 수단의 옳고 그름은

수단이나 방법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사람을 이롭게 하고 우리를 이롭게 하는가

아닌가에 있다.

그것이 개인의 이익을 위해 우리로 위장해 있다면

그것은 이미 옳은 수단도 옳은 방법도 아니다.

왜냐면 옳은 수단이나 옳은 방법도 옳지 않은 사람의

손에 쥐어지면 그것은 이미 옳은 것으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권좌나 배고픔 때문에 칼을 뽑으면

그들은 언제나 어쩔수 없다고 말을 한다.


그렇게 말하고 싶다.

진정으로 자존심과 명예를 지키고 싶다면

좀더 열심히 노력하던지 아니면 욕심을

줄여야 한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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