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야
- 조회 수 2064
- 댓글 수 0
- 추천 수 0
오래된 기도
이문재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 놓기만 해도
솔숲 지나는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
시를 읽고 따라 적어 보고 또 읊조려 보는 것도 기도하는 것이다. 그대를 생각하고 마음을 헤아려보는 것도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하기를 100번째가 되었다. 100일은 이 땅의 여인들에게 아주 오래된 기도이다. 처음 마음은 무작정 100일 동안 100편의 시를 올려보리라 생각했다. 꾸준히가 부족한 나에게 100일은 마늘과 쑥을 먹던 호랑이가 동굴을 뛰쳐나간 것처럼 견디어내기 힘든, 긴 시간으로 여겨졌었다. 그걸 이겨냈으니 그럼 나는 이제 웅녀가 되는 건가?
돌이켜보니 시를 소리 내어 읽기 시작한 것은 무작정이 아니었다. 사랑이 오려고 그랬던 것이다. 시가 말을 걸어왔기 때문도 아니고 알 수 없는 사랑을 맞이하려는 진통이었던 것이다. 맥 빠진 가슴에 사랑이 꽃피려고 시가 절절하게 읽혔나 보다. 이건 아마도 언제 시작되었는지 모를 파동의 부딪힘이며 기적이고 아주 오래된 기도가 이루어진 것이다. 짐작해보니 별, 그대를 사랑하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내가 읊조린 모든 시가 그대에게 기쁨이었기를.
이 영광을 나에게 별이자 시가 되어 준 그대에게!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3938 | 2007책 서문-1st version | 도명수 | 2006.05.09 | 1491 |
3937 | -->[re]여행사진 몇장 [1] | 신재동 | 2007.10.03 | 1491 |
3936 | 쥐돌이의 달리기 [3] | 오세나 | 2006.04.13 | 1492 |
3935 | 무제 | idgie | 2008.01.29 | 1492 |
3934 | 연구원 1년차 [9] | 한명석 | 2006.04.06 | 1493 |
3933 | -->[re][74] 불 익는 바탕학교 | 써니 | 2008.02.04 | 1493 |
3932 | 청계천에 흐르는 봄 [5] | 여름 | 2007.04.27 | 1494 |
3931 | 잃어버린 4년 [6] | 박노진 | 2006.04.17 | 1496 |
3930 | 집필계획 및 필독서 [2] | 이미경 | 2006.05.02 | 1496 |
3929 | [8] 2007년 12월까지 책을 내기 위해 해야 할 일 [2] | 조윤택 | 2006.05.02 | 1496 |
3928 | 나, 일년동안 이렇게 글썼어요. ^^ | 강미영 | 2006.05.06 | 1496 |
3927 | 바람 한 점 ... [7] | 백산 | 2007.08.09 | 1496 |
3926 | 긴장 없는 일상 [1] | 신재동 | 2005.12.01 | 1497 |
3925 | 지하철 파업사태를 바라보며. [1] | 이미경 | 2006.03.12 | 1497 |
3924 | 다시 일상으로 [3] | 박노진 | 2006.04.26 | 1498 |
3923 | 기도에 대한 회고 [2] | 기원 | 2007.05.03 | 1498 |
3922 | 전국적으로 벌어지는 꿈 신드롬 [1] | 자로사랑 | 2006.02.20 | 1499 |
3921 | 도봉산에서의 깨달음 [1] | 꿈꾸는 간디(오성민) | 2006.03.29 | 1499 |
3920 | -->[re]하나님도 웃어버리신 기도 [2] | 나그네 | 2007.05.03 | 1499 |
3919 | '김수로'의 힘 | 정재엽 | 2006.03.28 | 15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