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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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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27일 02시 03분 등록
프로젝트 막바지라 다소 분주하다.
오병곤 연구원의 저서 '대한민국 개발자 희망보고서'에서 나오는 '일단 짜보고 고치기'라는 용어를 빌어 현재의 상황을 표현하자면 짜 놓는 작업은 다 끝났고 이제 열심히 고치고 있는 중이다. 지난 일요일에도 한가한 휴일을 막 즐기려던 찰나에 회사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는 급히 출근을 해야 했다.
어제도 하루 종일 고치고 고치고 하다가 결국 업무 시간 내에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야근을 해야 했다. 그 바람에 저녁 식사를 점심 식사에 이어 또 다시 회사 구내 식당에서 때워야 했다.

파견 나가 있는 회사는 이름 들으면 알만한 통신회사의 협력사이다. 그 협력사의 사장 - 나보다 나이가 두 살 어리다 - 과 직원 둘 그리고 또 다른 회사에서 기술지원 나온 두 사람과 나까지 모두 여섯 명이 함께 식사를 했다.
그런데 기술지원을 나온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새신랑인가 보다. 협력사 사장 왈 요즘도 깨가 쏟아지느냐고 묻는데 그 말의 진의는 이제 좋은 시간 다 지나가지 않았느냐는 의미였다.

그 새신랑은 협력사 사장이 흐뭇한 미소를 지을만한 답을 해댄다. 그 말인 즉, 결혼 안 한 친구가 결혼해서 좋은 점 10가지만 얘기해 달라고 했단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안 좋은 점은 여러 가지가 떠오르는데 좋은 점은 떠오르지가 않더란다. 나는 그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그냥 묵묵히 내 할 일만 했다. 열심히 배식판에 담아 돈 밥과 찬을 꼭꼭 씹어 먹었다. 하나도 남김 없이 깔끔하게. 물론 마음 속으로는 여러 마디 해주고 싶은 것 꾹 참으면서 말이다.

그 사장 밑으로 20대 후반의 남자 직원과 20대 중반의 여직원이 있는데 일전에도 그 사장은 자신의 직원들에게 자신의 결혼관을 강력하게 설파하곤 했다. 구체적으로 언급한 얘기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무언가 상당히 괴롭고 억울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보다 일찍 퇴근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가끔 내가 밤 10시에 퇴근할 때에도 그 사장은 여전히 '열심히' 일 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으니...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저녁 식사 때 있었던 일이 다시 떠올랐고 기술지원 나온 사람의 친구가 질문 했다는 결혼 후 좋아진 점에 대한 질문을 나에게 해보고 싶어졌다.

사실 나는 그런 류의 질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정리되어 있지는 않지만 내 머리 속에는 대략적으로 그것이 무엇 무엇이다라고 정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자면 적당한 단어도 잘 떠오르지 않고 억지로 조합해서 만들다 보면 애초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그 의미가 퇴색되어 보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잠깐 시간을 내어 몇 글자로 그에 대한 답을 해본다면....

다른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것도 있고 지극히 개인적인 것도 떠오른다. 물론 순전히 남자 입장이다.

가장 크게 좋아진 것은 솔로로 지낼 때보다 마음이 무척 안정 되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나이 서른이 넘으면 대부분의 남성 혹은 여성들이 결혼이라는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내 경우에는 사회적 통념에 따른 결혼 적령기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지만 독신을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독신에 대한 가능성을 완전히 닫아 두지도 않았다.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다 보니 의외로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그와 관련한 잡념에 들어갔다.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 보니 그렇다.
어쩌다 결혼 안 한 이성이라도 만날 때면

이 사람이 혹시 나의 인연일까?
아닐까?
마음에 드는데 한번 고백이나 해볼까?
아.. 나는 참 숫기가 없어..


하는 고민으로 또 넉넉하지 않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했다.

지금은 그런 것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
남들이 보면 사소한 부분일지 몰라도 내겐 그렇지 않다.

한 가지만 얘기하고 끝나면 아쉬우니 더 하여 또 한 가지 언급해 본다.

나는 결혼을 통하여 강력한 지지자를 얻었다.
이렇게 얘기하니 부모님께서 섭섭해 하실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그것은 사실이고 솔직히 부모님께서도 인정하실 꺼다.(그래 주시리라 믿는다.. ㅋ)

이래서 이런 얘기를 공개적인 장소에 쓰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여하튼..

아버님께서는 방관자에 가까우셨고 어머님께서는 나를 지지해 주는 면이 없진 않았지만 특유의 신중함이 워낙 강하셔서 드러내 놓고 그러지는 못하셨다. 지난 얘기지만 사춘기 시절 그것은 내게 커다란 아쉬움이었고 상처이기도 했다.
스스로 난관을 헤쳐 나가는 와중에 힘겨움이 느껴지는데 아무도 내게 힘을 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생각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런 경험 때문에 난 지지자의 존재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누구도 언급했듯이 아내가 나를 지지해주는 모습에는 사실 약간 비현실적인 모습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그건 큰 문제가 아니다. 내 스스로 균형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게는 그런 것을 구분해주는 사람보다는 나를 믿어주는, 나를 강력히 지지해주는 사람, 그런 존재가 훨씬 중요하다.

갑작스레 생뚱 맞은 얘기를 꺼내 본다. 자신의 강점을 조직에서만 응용하려 하지 말고 가정에서도 응용해 보라고.
아직 초보 아빠 딱지를 떼려면 멀었고 이제 초보 남편 딱지는 떼었으려나.
그렇지만 그 위치에서도 나름의 노하우는 발휘할 수 있다.

총각 시절, 겉보기보다 부부간 갈등이 심한 가정이 꽤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난 이왕 결혼해 살꺼라면 좀 다르게 살고 싶었다. 물론 나만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그렇게 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거저 주어지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들과는 뭔가 다른 방식으로 살아야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이 결혼 후 요리를 내 손으로 해보자 하는 것이었다.
나는 결혼 전부터 집안 일은 잘 돕는 편이었다. 집에 아무도 없으면 밥상도 손수 차리고 설거지도 곧잘 했다. 반찬 투정도 하지 않았다. 대신에 청소는 잘 하지 않았다. 정리정돈도 내가 잘 하는 일은 아니었다.

결혼을 하면 그 중 긍정적인 부분을 살려보자 했다. 요리를 내가 손수 하면 집안일도 분담이 되고 아내에게 생색도 낼 수 있고 중요한 것은 나는 요리에 관심이 많았다. 어머님께서 해주신 그 맛난 요리를 분가하면 맛 볼 기회가 적어질 테니 나 스스로 만들어 보는 것이 가장 좋은 대안이라 생각했다.
맛은 둘째 문제다. 나는 그것으로 내 마음을 보여 주려 했다. 물론 초보 요리사 치고는 맛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고.

혹시나 글 보고 부러워 하시는 분 계시다면 너무 그러실 필요는 없다고 말씀 드리고 싶다.(괜한 걱정인가?)
나 역시 일상에 치이고 아이 봐주는 데에 지치고 매일 한 끼 식사 해결하는 데에 골머리를 앓는다.
다만 그 와중에 미처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아름다운, 흐뭇한 모습들도 많기에 매일 그 모습을 보기 위해 애쓰며 하루하루 살려 한다.

피곤하다.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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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이
2007.11.27 05:56:31 *.70.72.121
우리 변.경.연 홈페이지의 기혼남성들의 많은 글들이 팔불출이 되는 그날까지. 만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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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07.11.27 15:55:14 *.207.136.252
지지자, 산소 같은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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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2007.11.29 13:44:35 *.145.231.210
맞다. 피곤할 땐 자는게 최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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