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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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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8일 06시 14분 등록

내 속에 무엇이 숨어있는가?

뭔가가 들어있는 상자가 나온다. 출연자는 상자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모른 채 그걸로 뭘 할 것인지에 대해 말한다. 뭔지도 모르는 걸 어떻게 써야할지를 말해야하는 비상식적인 상황, 당연히 어이없는 진술이 쏟아져 나온다. 대답을 시작하기 전에 몇 차례 상자안의 내용물에 대한 탐색질문의 기회가 있긴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회는 실없이 소모되고 그래서 상황은 더 코믹해진다. TV 오락프로그램에 단골로 등장하는 게임 레파토리이다. 나도 출연자들의 바보스러운 대답에 킥킥거리곤 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나 철학적인 게임이었나? 나 그렇게 맘편히 웃어도 좋았던 걸까? 상자에 무엇이 숨어있는지 나는 그들보다 더 많이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적어도 상자안의 그것을 알아내려는 나의 가설과 전략은 그들보다 더 적절하고 타당하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그들이 정답을 맞추지 못했을 때의 대가는 그저 순간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뿐이다. 그런데 나는? 오답의 대가는 내 삶 그 자체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직도 명쾌한 답을 찾지 못한 내가 이 질문에 대답을 구하는 것 말고 다른데다 시간과 노력을 쓰고 있다면 그것을 '낭비'말고 달리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나는 다급해졌고 내 삶은‘내 속에 무엇이 숨어있는가?’를 찾기 위한 시간과 노력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삼년 전의 일이다.


책, 세미나, 강의 등 힌트가 될 만한 것이라면 닥치는 대로 섭취하고 실험하며 보냈다. 둘째 아이를 가지면서 몸은 점점 힘들어졌지만 그럴수록 더 미친 듯이 해답을 구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다 알 것처럼 느껴지다가도 자고 일어나보면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오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그러다가 구본형의 <세월이 젊음에게>에서 ‘행복은 나와 세상이 그윽하게 공명하는 상태’라는 구절을 만나게 되었다.


“그러니까 행복이란 느낌은 내 안에 숨어있는 무엇이 세상과 반응할 때 만들어진다는 것이란 말이지? 그렇다면 행복한 순간을 해부해 보면 내 안에 숨은 놈의 모습을 찾아낼 수 있겠네!”여기까지 오고 나니 문제해결은 급진전을 보였고, 내가 해야 할 일도 분명해졌다. 행복한 떨림의 순간을 잡아내야 했다. 심장이 뭔가에 반응한다면 그건 내안에 숨어있는 것과 관련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떨림의 느낌들이 올 때마다 꼼꼼히 기록했다. 대부분이 그냥 왔다가 가는 일시적인 떨림이었지만 멀리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만으로도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익숙한 녀석들도 생겨났다.


이렇게 데이터가 모이다보니 그 안에서 어떤 그림이 떠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퍼내도 퍼내도 자꾸만 차오르는 떨림들이 이리저리 헤어졌다 만났다 하면서 만들어낸 그림이었다. 세부적인 설정이 조금씩 달라지기는 하지만 하나의 이미지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떨림의 조합이 예측 가능한 패턴을 갖기 시작했다. 나는 그 이미지를 시나리오로 재구성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시나리오는 가설로서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 내었다. 내 안의 무언가가 현실에서 검증되기 시작한 것이다. 검증된 가설은 더 발전적 가설을 위한 근거가 되어준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나는 어렴풋하게나마 내 안의 그것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 이쯤에서 내안의 이미지를 건저 내와 거기에 녹아있는 나를 추출해내는 작업을 해보기로 한다.

2014.7.25

 

시원한 그늘, 가끔씩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

 탄력 쨍쨍한 햇살과 함께라 더 고마운 터키의 아침..

 이곳에 머문지도 벌써 엿새째

 어느새 이 아침도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시간적․경제적 여유, 자기 탐색을 위한 새로운 기회로서의 여행 ]

 

 창훈이는 해먹에 누워 책장을 넘기다 그대로 잠이 들기도 하고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스케치북을 찾기도 한다.

 창훈이는 이번 여행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녀석이 없는 새 살짝 컨닝한 스케치북안에 그려진 세상에서

 훌쩍 커버린 아이를 본다. [ 가족, 표현 ]

 

 서영이는 마당에서 펜션손님들과 놀고 있다.

 바다로 나가는 길을 알려주기도 하고..

 제 입맛에 맞았던 식당에 대해 이야기해주기도 하고..

 또 그들이 이곳까지 오는 길에 보았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마치 제가 이곳의 주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한사람 한사람 세심히 살피는 모습이

 제법 어른스럽다. [ 가족, 소통 ]

 

엄마는 테이블에 앉아 그런 서영이를 흐뭇한 모습으로 바라보신다.

테이블위에는 이곳 풍경을 담은 예쁜 엽서들이 흩어져있다.

엄마는 지인들을 떠올리며 정성스레 엽서를 쓰고 계신다.

머무는 곳마다 빠뜨리지 않고 하는 엄마만의 의식이다.

작년엔 엄마의 주요 수신인이셨던 아저씨 한분이

엄마의 여행 엽서를 엮어 책을 내주시기도 했다. [ 가족 ]

 

워서 보는 하늘은 온통 나뭇잎이다.

잎이 흔들릴 때마다 빛이 그 사이를 파고들며 부서진다.

아~!! 이 순간의 감동을 글로 표현하고 싶어

서둘러 일어나 노트북앞에 앉았다.  [ 글쓰기, 표현 ]

 

오늘은 남편이 오는 날이다.

일때문에 모든 일정을 함께 할 수 없는 남편은

주말이 되면 우리가 머무는 곳으로 바로 날아온다.

남편이 오면 꼭 바다에 데려가야지..

쏟아질듯 빛나는 밤별을 그와 함께 느껴봐야지..

보고 싶다. [ 가족, 아름다움 ]

                                                          [ 이 모든 것의 조화로운 공존 ]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떨림이 되는 이 이미지에는 나를 행복하게 하는 요소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우선 나의 정체성은 ‘내면탐험가’. 적성에 맞는 일을 구하기 위한 시도로서 시작되었던 ‘자기탐색’이었는데, 하다 보니 그 탐색 자체에 열정과 재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기탐색으로 ‘재능’과 ‘열정’을 발굴해냈다면 이를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가공해야 하는데, 내가 세상과 만나는 이름은 여행작가, 동화작가, 상담가, 문화기획자, 드림 스타일리스트 등 다양하다. 나와 세상이 아름다운 만남을 하고 있다는 증거는 내가 일로 인해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돈은 내가 ‘내면탐험’이라는 운명의 여행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노자와 같은 것으로, 세상은 정확하게 나의 기여분을 계산해 대가를 지불한다.


그런데 일을 하는 과정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가족이다. 그렇게 재미있는 일인데도 일에 빠져들면 들수록 충만해지기는 커녕 자꾸만 결핍감이 깊어질 때가 있는데, 십중 팔구는 일이 가족을 희생시키는 구도로 진행되는 경우였다. 자유로운 여행을 위해 몸을 가볍게 하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내 몸의 일부를 잘라 놓고 떠날 수는 없는 것이다. 가족과 일, 참 양립하기 어려운 두 가치라고 생각했는데 고민하다 보니 방법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가족에 대한 나의 사랑과 책임이 내 여행의 깊이를 더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나는 내 안에 숨어있는 그 것이 ‘재능’, ‘열정’, ‘가족에 대한 사랑’, ‘아름다움’으로 이루어진 무엇일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참으로 불충분한 설명이었다. 한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에 목마름은 더 절실해져만 갔다.


이런 내게 융은 시원하고 달디 단 물 한바가지를 들고 나타난 자애로운 신령님이었다.


나는 그녀의 행동거지에서 우러나는 확신과 자부심이 거의 대부분

그녀의 분명한 전체성과의 동일시에 근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전체성은

아이, 집, 작은 가축, 샴바,

그리고 무시할 수 없는 나머지 요소인 그녀의 매력적인 몸매로 이루어져 있었다.


융이 아프리카에서 발견한 천연적인 전체성의 모습이야말로 내 안에 숨어있는 그 것의 정체가 아닐까? 이 아름다운 전체성의 현대적 구현이야말로 내 삶의 진정한 이유는 아닐까?

IP *.236.7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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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8 06:44:25 *.106.7.10
이 새벽, 열심히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들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좋은 새벽,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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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옥
2010.03.08 22:20:07 *.53.82.120
emot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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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성
2010.03.08 10:13:40 *.30.254.28
멋지군요.....응원하고 싶습니다. 님의 꿈을....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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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옥
2010.03.08 22:20:58 *.53.82.120
가까이서 서로를 응원할 수 있는 관계가 되었으면..

지금 이순간 가장 간절한 소망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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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
2010.03.08 16:36:34 *.236.3.241
파닥파닥한 놈들을 건져올리니 그대로 미래의 풍광이 되네요 ^^ 4주간 고생하셨고,
아름다운 봄 맞으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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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옥
2010.03.08 22:21:56 *.53.82.120
우리모두에게
눈부시게 아름다운 봄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엄청 쎄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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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철
2010.03.08 19:22:38 *.154.57.140
와... 참 멋지네요. 저는 제가 뱉어놓은 글을 보면서, 거칠고, 불안하고, 요동치는 모습들이 보이는데..
으..음..뭐랄까.. 담백하고, 맑고..따뜻해요.  미옥님의 다른 글에서 느껴지던 여리고, 아픈 모습하고는
많이 다른 느낌이네요.  오락프로그램으로 시작한 도입도 좋고, 건져낸 내 안의 이미지는 무척 인상적이네요.
깔끔한 마무리까지... 와... 부럽다...  와인마시고, 황차로 마무리한 느낌? ㅋㅋ 와인먹고 싶어지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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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옥
2010.03.08 22:23:06 *.53.82.120
오~!!
와인..나두 먹구 싶당..  ^^

과분한 칭찬에 저 숨도 못 쉬고 좋아하고 있는 거
보이세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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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희
2010.03.09 00:10:04 *.108.158.238
4주간 고생 많으셨고요.
좋은 결과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만나서 좋은 말씀  듣고 싶네요.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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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옥
2010.03.09 04:35:22 *.53.82.120
찐~한 4주였죠?
그 밀도만큼이나 소중했던 4주!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으로 영원히 기억될 듯 합니다.  ^^

인희님도           emot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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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2010.03.09 01:09:06 *.83.68.7
이제 중요한 결정도 끝나고 마음도 풀어 놓았으니
달릴 준비만 하면 되겠어요.
힘차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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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옥
2010.03.09 05:30:49 *.53.82.120
그러게요!!

요즘의 회사생활!
시한부 인생을 정리하는 불치병자의 그것과 같이
경건하기가 이를데 없습니다.

후회없는 10년으로 기억하기 위해선
깔끔한 마무리가 중요할테니까요..

행복한 사람입니다.
저는..

어서 만나고 싶습니다!!             emot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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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주
2010.03.09 23:34:35 *.68.10.114
가족과 함께 하는 멋진 꿈...글을 읽다가 저도 한번 꿈꿔봅니다~^^
"행복한 떨림의 순간" 그 순간을 잡아내어 이미지화 시키는 작업이 참 매력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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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옥
2010.03.10 04:20:06 *.53.82.120
이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네요.
어서 만나고 싶습니다!!emot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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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철
2010.03.10 19:58:09 *.154.57.140
저는 미옥님의 심장용량이 궁금합니다. 1,500cc 제 심장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수출용 그랜져급? 2,800cc 정도? 더군다나 2기통이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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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옥
2010.03.14 22:28:17 *.53.82.120
궁금하신 것은 해결해드릴 수 있으나
뭐 굳이 감당하시려고 부대끼실 필요는 없을 듯.. ㅋㅋ
그치만 한사코 감당하실 요량이시라면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담주 토욜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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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희
2010.03.11 13:43:23 *.142.217.230
2차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뵐 수 있게 되어 반갑네요.
좋은 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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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옥
2010.03.14 22:28:59 *.53.82.120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 좋은 인연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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