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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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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 17일 12시 26분 등록
잃어버린 4년

만 4년에서 2달이 빠지는 세월동안 저를 잠 못 들게 하고 가슴 아프게 했던 일이 며칠 전에야 마무리되었습니다. 해수로 5년이라는 시간동안 내면의 끓어오르는 분노와 자신에 대한 자책감으로 일그러졌던 기억하기도 싫은 삶의 한 단면을 잘라내는 느낌이란 두 번 다시 이런 일은 겪지 않겠다는 각오보다도, 기억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밖에 아무 것도 나지 않습니다.

이 시간 동안 저는 당뇨라는 평생의 질환을 얻었고, 부쩍 늘어난 흰머리는 어쩔 수 없이 늙어가는 중년의 좌절감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선천적으로 긍정적인 사고에서 사람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언제나 이해관계에는 신뢰보다 법의 규칙을 먼저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믿지 않아도 좋습니다만 가정의 파탄까지도 생각한 적이 있었고, 저의 무너져 내리는 비참함에 대한 절망은 혼자만 당할 수는 없다라는 감정적인 송사까지도 준비하였습니다.

어쨌던 이제 그 모든 것이 마무리되고 해묵은 감정까지 씻어버리고 나니 지금의 심정을 글로나마 남겨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나 몇 자 적어보려 합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으실 분들께서도 그래서는 안 되겠지만 행여라도 저와 유사한 경우가 생길 경우에 대비해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삼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어느 정도 각색이 있을 수 있겠지만 대부분 경험에 근거한 내용이므로 참고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

2002년 여름 저는 일대 결단을 내리고 업의 전환을 시도하였습니다. 단체급식이라는 업종에서 외식업으로의 존재이전이었죠. 지금 생각하면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데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되어 버렸고 되돌아서기에는 너무 많은 과정을 거쳤다는 생각에 이 길에서 성공해야지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시작한 식당은 지역에서는 최고의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고, 유서 깊은 전통까지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대단한 식당이었습니다. 저 혼자 하기에는 무리라는 생각에 다른 2명의 지인까지 주주로 참여시켜 화려한 출발을 하였습니다.

폼생폼사라고, 좀 더 철저한 사전 준비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몇 몇의 말만 믿고 달라는 임대료를 다 주겠다고 계약을 하고 나서는 오픈 준비는 직원들에게 맡겨 놓고 골프만 치러 다녔습니다. 장사가 가장 잘 될 6월 한 달을 그렇게 보내놓고 불볕 더위가 시작될 7월에 오픈하였으니 앞으로 다가올 겨울을 생각지도 않는 베짱이같은 어리석음이었습니다. 출발이 이랬으니 이후의 상황은 더 말할 나위도 없었습니다.

동업은 할 만 합니다. 자본이 부족하고 경험이 부족할수록 같이 하고 나눌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좋은 점은 찾기 어려울 겁니다. 멀리는 LG 그룹이 그랬고, 가깝게는 저의 이전 경험이 그랬습니다. 동업을 할 때는 신뢰와 계약이 명확해야 합니다. 신뢰를 믿고 계약을 불분명하게 해 놓으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하게 됩니다. 잘 되면 잘 돼서 다툼이 생기고, 못 되면 못 돼서 분쟁이 생기게 됩니다. 결국 사람이 나쁜게 아니라 돈이 웬수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저는 돈이 아니라 사람이 분명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1년이 지날 무렵 동업했던 두 주주들에게 투자금의 50%를 손해보고 손을 떼라고 하였습니다. 더 이상 같이 하다간 손실만 더 커질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나머지 손실은 제가 안겠다고 하고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들도 가슴이 쓰리겠지만 저는 훨씬 더 큰 손실과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정리하는 오늘까지 그때의 정리 때문에 금전적인 손실을 입어야 했습니다. 사람에 대한 신뢰는 무조건적인 믿음이 아니라 명확한 약속과 내용이 기초된 상호간의 실천에 대한 신뢰이어야 합니다.

가끔 어떤 일에 열중하거나 미친 듯이 일하거나 하는 이들을 보면 뭐에 홀린 것 같다고 하기도 하죠. 또는 전혀 정상적이지 않은 일이나 행동을 하는 것도 같은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저는 후자의 경험을 해봤습니다. 주방이 맘에 들지 않아서 여기 저기 수소문한 끝에 아주 괜찮은 주방장을 채용하였습니다. 당시 고깃집은 주방장이 좌지우지한다고 할 정도로 솜씨있는 주방장 한 명에 장사의 명운을 맡기기도 하는 분위기였거든요. 수원에서 일하던 그 친구는 자기가 직접 오픈했다고 하는 몇몇의 식당까지 가보고 데려온 친구였는데 온 당일 기존 직원들을 다 내보내고는 자기가 데려온 단 한 명만 데리고 주방에 내려갑디다. 그러기를 한나절을 있다가 궁금해 내려가 보니 술 먹고 자고 있더라구요. 손님은 와서 음식 달라고 하는데 이 사람은 아무 준비도 해놓지 않고 만사태평이더란 말씀이죠. 순간적으로 이 인간이 방통인가? 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그날은 가게 문을 닫아야 했고, 사정도 하고 달래도 봤지만 잘 되지 않아 내보내야 했습니다. 지금도 그때 상황을 기억하는 어떤 이는 그 몇 시간동안 제가 미친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지금은 속편하게 글로 표현하는데 그 때 제 마음은 뭐라 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어쨌던, 사람은 채용할 때 잘 보고 쓰야 한다는 겁니다. 특히 업의 특성을 좌우하는 핵심 업무를 담당하는 인력일수록 기술력보다는 성품을 봐야 합니다. 기술은 돈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특히 작은 기업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저는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더 오래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면 아무리 힘이 들어도 조건이 나쁘더라도 즐겁게 그 일을 해냅니다. 밤을 세워서라도 하게 되고, 술을 먹다가도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메모하거나 일자리로 가서 하게 됩니다. 일요일도 따로 없는 ‘월화수목금금금’도 힘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게 되면 그 일이 아무리 대가가 놓은 일이거나 수익이 많다 하더라도 재미가 없게 됩니다. 괜시리 다른 일이 더 좋아 보이게 되고, 여기 저기 기웃거리며 세월만 소비합니다. 뭐 좋은 거 없나 하고 말이죠. 제가 그랬습니다. 저는 말로 일을 했습니다. 고객만족을 이야기하면서 이것이 주방과 홀에서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직원만족을 이야기하면서도 그들이 자부심으로, 애정으로 직장생활을 할 수 있게끔 만들지 못했습니다. 음식점의 생명은 뭐니 뭐니 해도 음식의 질입니다. 원가가 어떻다 해도 고객이 만족하지 못하는 음식은 고객을 위한 상품구성이 아닙니다. 핵심역량이 어디에 집중되어야 하는지, 책과 현실이 어떻게 일치하는지를 몰랐습니다. 재미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 일을 시작했는가? 하고 반문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이라 착각했던 것이죠. 밥장사가 제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조금은 눈이 뜨여 무엇을, 어떻게, 어디서 해야 하는지 알지만 그 당시에는 말만 앞섰던 모양이었습니다. 장황했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해야만 실패와 시련도 약이 됩니다. 도전과 인내가 성공의 밑바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지 못했던 저는 시간과 돈과 열정을 잃어 버렸습니다.

오픈 초기 매상의 절반으로 떨어진 다음에야 부랴부랴 이런 저런 아이디어와 새로운 상품을 내 놓았지만 외면한 고객들의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마지막 1년은 열심히 일했습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지만 먹고 살아야 하는 절박함이 더 절실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꿈 프로그램’도 다녀오고 ‘연구원’ 활동도 하게 되면서 더 적극적인 면도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 번 돌아선 고객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디다. 그 때서야 그들이 보내주었던 애정을 얼마나 소홀히 대했었나 반성이 되었습니다.

망해봐야 안다고 하던가요? 처음으로 망해 봤다고 말한 이 고깃집 장사를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먼저, 신뢰는 중요하다. 하지만 계약이 분명해야 신뢰가 더해질 수 있다. 둘째는, 기업의 핵심역량은 사람이다. 사업주의 업무의 50%는 여기에 쏟아야 한다. 셋째, 일에 미쳐야 한다. 그러자면 꿈에서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고객이 대한 자기 정의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고객이 찾는 상품만이 성공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사업을 하던 직장을 다니던 스스로의 업무를 되돌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지난 4년을 악몽처럼 따라 다니던 자책감과 분노에서 벗어나 보니 지금은 더 없이 편안합니다. 이제야 다른 이들과 편안하게 어울릴 수 있겠다 싶습니다. 아니, 지금까지 한 행동은 뭬야? 라고 반문하실 수 있지만 제 마음이 그랬다는 거죠. 이제는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 합니다. 제 마음과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일, 20대 질풍노도의 열정을 다시 쏟을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서고자 합니다. 그렇게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다시는 자책과 분노가 제 마음에 자리 잡을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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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달팔
2006.04.17 10:45:58 *.150.69.68
경험에서 우러나온 소중한 지혜를 잘 배웠습니다.
가슴을 치고, 때립니다.
저도 과거에 너무 자신을 몰랐고, 다른 사람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저 자신과 타인에 대해 조금은 알만 합니다.
몰랐을 땐 용감했는데 알만 하니 더 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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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완
2006.04.17 13:19:37 *.120.97.46
형, 내가 소주 한 잔 사기로 했지? 한 잔 하자.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지만, 이건 또 새로운 사연이다. 한 잔하면서 실감나게 나눠보자. 내가 이런거 어디서 듣겠어. 좋은 공부가 되겠다. 장난 아니고 진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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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자식
2006.04.17 16:00:29 *.229.28.221
노진님의 평안한 인상 뒤에 이렇 큰 사연이 있었네요.
긴 시간동안의 괴로움에서 지금에라고 벗어나셨다니,
안도가 됩니다.

20대의 열정으로 다시 시작하시는데,

저도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

노진님, 화이팅!!
(화이팅 외, 다른 응원할 말이 마땅히 없는 언어 한계에 가슴을 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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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거인
2006.04.18 00:58:43 *.103.178.159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한 시련들도 때로는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한 어려움을 극복한 뒤에 오는 평온함의 의미는,
노진님은 이미 상당한 수준의 고수가 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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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종희
2006.04.18 15:36:11 *.204.83.86
글이 마음으로 들어오네요. 절절한 마음으로 쓰셨나 봅니다. 제목처럼 잃어버린 4년은 아니신거 같아요. 그 4년을 다르게 느끼시길 기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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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간디
2006.04.18 21:28:50 *.228.100.50
박노진님께서 이런 히스토리를 가지고 계셨군요. 역시 체험에서 나오는 진실함은 사람의 맘을 흔드는 강한 무기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제가 미국에서 식당아르바이트를 할 때 식당운영에 관해 잘은 모르지만 사장님들이 무척이나 신경써야 할 것이 많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게 되었었는데 박노진님께서는 더욱 힘든 경험을 하셨군요.

세상에는 실패는 없다고 합니다. 단지 피드백만이 있을 뿐이다라고 말이죠. 그런 점에서 박노진님의 피드백은 저에게도 큰 교훈이면서 배움을 주시내요.

대단히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많은 배움을 얻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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