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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 18일 22시 20분 등록
지난 일요일에는 금정산에 갔다.
딸아이와 둘이서 금정산성 동문에서 열리는 풍물패 정기공연을 보러 간 길이다.
아이의 어린이집 담임선생님이 활동을 하는 풍물패의 공연이라 일부러 찾아 나선 길이었다.
바람이 약간 불어대긴 했지만, 모처럼 환하게 빛나는 사월의 오후였다.
봄날 산에는 등산객들로 붐볐고, 산아래에서는 이미 다 지고난 벚꽃들이 산성어귀에는 한창이었다. 진달래도 아직 피어 있었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같은 공간과 시간을 다른 속도로 지나가는 것이다.

딸아이의 선생님은 풍물패들 가운데서도 가장 빛난다.
이제 갓 스물다섯...즈음의 시간을 보내는 저 아리따운 청춘..
세 시간 가까이 장구를 치고, 북을 두드리고, 이마에 송글송글 맺히는 땀들...
내 스물다섯 즈음이 생각이 났다.
그때 나는 내 안에 갇혀 있었다. 그것만이 생각난다.
나는 진로를 걱정하고,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 끔찍한 상상력을 발휘해 가면서,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아지지 않는 것을 원망했었으리라는 기억만 난다.
스물다섯의 나는 무엇을 했었나.
내 삶의 시간속에서 그 무렵의 시간은 흘러갔으나 , 내가 살아 낸 것은 아니었다. 후회라는 단어를 써도 원망이 없다.

딸아이는 일곱 살이 되었고 나는 서른 일곱이 되었다.
서른 다섯은 내게 큰 고비였다.
이제 시간은 나와 무관하게 흘러가지 않고, 나는 삶을 살아낸다.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깜깜한 동굴속에서 걸어나와 세상에 내 발로 걸음을 내 딛는 것. 오로지 내 힘으로 내 생계를 꾸려 나간다는 것. 그 엄숙함.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나는 이만큼이나 뒤늦게 깨닫는 것이다.

사월의 봄 산에서.
서울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이 나라에서는 오월이 계절의 여왕이라고 하지만,
이 남쪽의 봄은 사월이 절정이다. .. 꽃이 떨어진 자리 자리에 꽃보다 눈부시게 일어서는
초록 초록 초록 초록 초록...
지금부터 나는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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