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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2월 7일 22시 44분 등록
<변화학 칼럼 35>

무엇이 그들을 바꾸었을까?
- 중독으로부터 회복하는 사람들의 5가지 특성 -


문 요한 (변화경영 연구소 연구원, 정신과 전문의)



나를 움직이는 오랜 화두
내가 알지 못했던 나를 알 수 있었던 삶의 계기는 크게 네 가지가 있다. 정신분석, 술, 결혼, 아이들이다. 꽃 같은 젊은 날에 술은 때로 나를 숨겨주었고, 술은 때로 나를 발가벗겨 버렸고, 또 술은 잠시나마 나를 새가 되게 만들어 주었다. 그런 연유 때문인지 나는 알코올 중독 환자들과 인연이 많았다. 지면상 자세한 이야기를 적지는 못할 것 같고, 오랫동안 나의 관심사였던 ‘어떤 사람들은 술을 끊고, 어떤 사람들은 재발을 할까?’라는 궁금증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경험을 소개할까 싶다. 그 궁금증은 언제부터인가 ‘어떤 사람들은 변화하고, 어떤 사람들은 변화하지 못할까?’라는 화두로 확대되어 오늘의 나를 움직이고 있다.

변화의 원리는 다를 수가 없다
이 고민은 1998년도에 알코올 치료프로그램을 마치고 퇴원한 200여명의 삶을 추적조사하면서 구체적으로 시작되었다. 중간에 한동안 알코올 환자들과 만날 수 없었던 시간도 있었지만 그간의 임상경험을 토대로 보면 알코올 뿐만 아니라 모든 중독의 회복과정은 유사했다. 칼럼을 통해 이를 소개하는 것은 중독으로부터의 회복이라는 과정이야말로 일반적인 변화의 원리와 다를 바 없을뿐더러 변화하려는 우리에게 가장 모범적인 답안을 제시해 줄 수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신 안에 부정적인 습관과 중독이 없다고 자신할 사람은 드물테니까.

회복하는 사람들의 5가지 특성
1. 주관적 바닥체험 (subjective bottom experience)과 희망 (hope)
이 역설적인 두 단어! ‘좌절’과 ‘희망’. 밑바닥이란 것은 말 그대로 더 이상 내려가려고 해도 갈 곳이 없는 상태이다. 생의 최저점에서 기고 있는 느낌이다.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다는 그 비극! 하지만 회복하는 사람들은 바닥에서 앞으로 나아갈 반동(反動)의 힘을 얻는다. 바닥이란 절망과 희망의 변곡점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 밑바닥에서 건져 올린 퍼덕거리는 희망! 그것은 온 몸을 던져 걸어가는 절박한 길이다. 하지만 그 길 위에서 지금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내 안에 ‘더 큰 힘’과 ‘더 나은 삶’이 살아있다는 진정한 희망으로 무장한다. 변화의 도상에 나선 우리들도 마찬가지이다. 오늘을 바닥삼아 치고 올라서야 한다. 누구나 희망을 노래할 수는 있지만 좌절을 맛본 사람만이 바닥을 치고 희망으로 도약할 수 있다.

2. 중독물의 파괴성에 대한 자각(self-awareness)
뭐 이런 당연한 말을 언급하느냐고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의외로 많은 알코올 중독자들은 그 폐해를 알지 못할뿐더러 최후의 순간까지 술을 ‘찬미’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바로 그 술로 인해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렸는데도 말이다. 회복하는 사람들은 술로 인한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 관계적 폐해 등 술에 대한 문제를 전면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술로 인해 달라져버린 인생행로를 복기(復棋)할 수 있는 사람들이며, 술이 없을 때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지를 명확하게 그려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자기실현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우리는 낡은 습관의 찌든 폐해를 전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넘어섰을 때 얼마나 자유로울 것인지 그려볼 수 있어야 한다.

3. 긍정적인 대체물 (positive substitutes)과 지속적인 자기점검(self-monitoring)
회복하는 사람들의 또 하나의 특성은 중독물이 자리 잡았던 마음속에 무언가 다른 것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술이 떠난 빈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일, 사랑, 신앙, 운동, 공부, 취미 등 여러 가지였다. 모습은 제각각이었지만 그 형태 속에는 하나같이 집념과 열정이 담겨 있다. 날마다 성경책 2장씩을 그대로 공책에 옮겨 적고 있는 K씨, 매일 아침 산에 오르고 네 시간씩 운동하는 O씨, 임대 아파트에 입주하기 위하여 매일 예배에 나가고 폐지를 모으는 C씨 등 많은 회복자들이 매일 자기의례(self-ritual)를 통해 하루를 점검하고, 기록하고, 의지를 다진다. 중독이 떠난 그 자리가 빈자리로 남아 있다면 재발은 불을 보듯 뻔하다. ‘더 나은 삶’을 실천하는 우리들도 낡은 습관을 내보내고 그 곳에 긍정적인 에너지가 모일 수 있는 대체물과 자기의례를 채워 넣어야 한다.

4. 지지체계 재구축 (rebuilding support system)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들(AA: Alcoholic Anonymous)'이라는 단주모임(중독자만으로 구성된 자치모임)은 수많은 회복자들을 만들고 있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협심자(協心者)가 되어 마음과 마음을 묶어 회복의 길로 이끌어주는 역사적인 조직이다. 한편, 많은 중독자들은 오랜 기간을 거쳐 비로소 중독이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중독이 된 원인을 가족들 때문이라고 말하고 비난한다. 하지만 회복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사람들이다. 더 나아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용서를 구하고 그 잘못을 보상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다. 그럼으로써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가장 가까운 회복의 후원자로 만든다. 누군가가 변화되었는지를 알려면 무엇을 보고 알 수 있을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관계를 보면 알 수 있다. 자, 당신이 변화하는 것을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당신의 가장 가까운 후원자는 누구입니까?

5. 영적인 힘 (spiritual power)과 이타적인 삶(altruistic life)
영적인 힘은 중독으로부터의 회복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다. 중독으로부터의 회복은 단순히 ‘술을 마시느냐! 끊느냐!’의 행위나 습관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중독은 그 사람의 인격, 관계, 도덕, 사랑, 꿈 등 인간이 인간일 수 있게 해주는 모든 것들을 파괴시키기 때문에 회복이란 삶 전체를 바꾸는 것이 된다. 회복이란 ‘술 끊는 것’이 아니라 ‘재탄생(rebirth)’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성은 중독자들의 회복에 강력한 구원이자 빛이다. 실제로 중독자들은 단주에 가장 큰 힘이 되어준 요소를 영성이라고 꼽고 있고, 많은 종교기관의 도움을 받는다. 그리고 회복하는 사람들은 다른 중독자들을 위해 재활의 희망이 되겠다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단주모임에 들어가 쉼 없이 단주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알코올 상담사가 되어 재활의 희망이 되어주고 있다. 그들은 복지시설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며 기꺼이 자신의 여생을 남을 돕는 곳에 바치고 있다. 어쩌면 우리들의 변화도 무엇을 바꾸겠다는 개선의 문제가 아니라 내 자신으로 거듭나겠다는 재탄생의 의미이자 그럼으로써 또 다른 사람의 희망이 되는 것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그는 내가 약해지고 실패했을 때, 걱정이 있거나 지쳐 있을 때 나를 유혹해 왔다. 그는 언제나 나를 속였다. 그는 신체에 거짓된 힘을 주었고 가짜로 기분을 유쾌하게 올려 놓았으며 모든 일이 실제보다 훨씬 쉬워 보이게 했다. 그는 누구를 막론하고 유혹의 손길을 보내 낡은 램프를 새 것으로 바꾸어주고 무미건조한 현실을 환상의 별가루로 바꾼다.”
- 미국 작가 잭 런던(1876~1916)의 자전적 소설 ‘존 발리콘’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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