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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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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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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11일 00시 59분 등록

지난 11월 29일, 친구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절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20년 넘게 이어온 인연이니 보통 관계는 아니었습니다. 친구 아내에게 그가 마지막 숨을 거두던 시간을 듣고 헤아려보니, 그때 나는 법정 스님의 책 <맑고 향기롭게>를 읽고 있었습니다. 내가 책을 읽는 동안 이승에서의 한 인연이 끊어졌습니다.

 

11월 마지막 날 새벽에 장례식장에서 나오면서 나는 택시를 잡지 않았습니다. 오랜 만에 많이 마신 술을 깨고 싶은 마음에, 아니 어쩌면 술기운 때문에 걸었습니다. 신촌에서 충정로를 지나 어느 곳까지. 걷는 내내 어떤 질문이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

 

20대 초반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고, 나름대로 노력해서 찾은 답을 내 삶의 방향성으로 잡았습니다. 그리고 십여 년이 흐른 시점에 이 질문이 나를 찾아왔습니다. 사실 몇 년 전부터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했고, 나름의 모색을 통해 향후 10년의 삶의 방향을 잡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친구의 죽음과 함께 이 질문이 불현듯 나를 다시 사로잡았습니다. 존재의 의미가 흐릿해지고, 삶에 안개가 자욱해진 느낌입니다. 법정 스님은 “이런 원초적인 인간의 물음 앞에 서야 한다”고 하면서 이렇게 덧붙입니다.

 

“이때 인간은 비로소 고독을 느낀다. 이 고독은 보랏빛 노을 같은 감상이 아니다. 벗들과 떨어져 있기 때문에 오는 대중가요조의 외로움이 아니다. 발가벗은 자신과 마주 서 있는 데서 오는 전율 같은 것이다. 인간이 본래부터 지평선 위에 드리우고 있는 당당한 실존이다.”

 

이 고독은 ‘나에 대한 고독’입니다. 스님의 책에서 “이러한 고독은 절망과 동질의 것이다”라는 구절을 처음 봤을 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불과 이틀 사이에 이 구절의 뜻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 대한 자각에서 오는 절망은 결코 ‘죽음에 이르는 병’일 수 없다. 외부와의 관계에서 벗어난 순수한 자신에게 눈뜨는 계기다. 이때 비로소 자기의 분수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 결단하게 된다”는 말씀에서 한줄기 빛도 보았습니다.

 

다른 때보다 심적으로 힘들었던 것은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라는 질문에 또 하나의 질문이 더해졌기 때문입니다. “너는 네 세상 어디에 있느냐? 너에게 주어진 몇몇 해가 지나고 몇몇 날이 지났는데, 그래 너는 네 세상 어디쯤에 와 있느냐?”, 마르틴 부버가 던진 질문입니다. 법정 스님의 책에서 만난 이 질문은 새벽길을 걷는 내내 내 안에서 터질듯이 솟아올랐습니다. 이 질문은 이미 알고 있었고, 몇 년 전에 출간한 내 책에서 인용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절절하게 다가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법정 스님은 이 질문을 소개하며 말합니다.

 

“이 글을 눈으로만 스치고 지나치지 말고, 나직한 자신의 목소리로 또박또박 자신을 향해 소리내어 읽어 보라. 자기 자신에게 되묻는 이 물음을 통해서, 우리는 각자 지나온 세월의 무게와 빛깔을 얼마쯤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때때로 이런 물음으로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20대에 삶의 방향성을 탐색할 때는 앞만 보았습니다. 미래를 창조하는 것을 현재의 과업으로 여겼습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초점은 분명했습니다. 이제는 과거와 미래가 같은 무게로 다가옵니다. 그 사이에서 성찰과 예감이 뒤섞인 혼돈 속에 나는 있는 듯합니다. ‘너는 네 세상 어디에 있는가?’, 스님은 이 질문을 두 번 더 제시하면서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할 것을 권합니다.

 

“이와 같은 물음으로 인해 우리는 저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진정한 자신의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삶의 가치와 무게를 어디에 두고 살아야 할 것인지도 함께 헤아리게 될 것이다.”

 

올 겨울, 내 화두는 정해졌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 너는 네 세상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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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法頂) 저, 맑고 향기롭게, 조화로운삶,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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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1 06:50:48 *.46.229.174

마르틴 부버......2년전 가을. 또 꺼내 읽던 책 나와 너.   영업파트 말단에서  고민하던 내가 떠오릅니다.    캐논변주와같이 끝없이 이어지는 음과 음이 만나 알레고리를 이루면서 나아간 존재.  그의  재창조, 재해석들이 한덩어리로 뭉쳐져 혼돈과 흙속에서 한줄기 빛을 찾아나가는 일.. 아름다운 몸짓과 말짓이 어우러진 숨겨진 무대.  생각게 하는 글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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