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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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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31일 00시 27분 등록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 정현종, [방문객] 中 -

 

사회자가 ‘어떻게 나오게 되셨느냐?’ 고 물어보자, 한 마디씩 이야기 합니다.

 

“어머님이 주신 몸을 잘 간수하지 못해서 이 꼴이 되었네요. 여러분은 건강하세요. 어머니를 생각하며 한 곡 부르겠습니다.”

“추억을 만들고 싶어서 나왔어요. 모두들 건강하세요.”

“병동생활이 따분해서요. 노래라도 부르면 힘이 날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모두 빨리 빨리 쾌차하세요.”

“위암수술이 잘되어서 엄마가 내일 퇴원해요. 감사합니다.”

....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아침, 사회사업팀에서 주관하는 성탄 노래자랑이 시작되었습니다. 총 20 팀이 참가를 했고,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저는 심사위원 중의 한명이 되었습니다.

 

경쟁적으로 방송되는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은 가창력, 리듬, 가사 전달력 등 여러 기준으로 노래 잘하는 사람들을 선별합니다. 재미를 높이려고 출연자의 사연을 캐내거나, 작위적 상황설정과 의도적인 편집 등 시청율을 높이기 위한 장치를 해놓기도 합니다. 하지만 병원의 노래자랑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환자 한분 한분이 저마다, 책 한권의 사연을 담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제 몸 하나 간수하지 못해서, 낳아주신 어머님께 죄송하다 말하시는 중년의 아저씨. 반주기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에 구성진 목소리로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 를 듣고 있자니, 콧잔등이 시큰해지고 아침부터 소주 한잔이 생각나게 합니다.

 

수술이 잘 되어 퇴원을 하루 앞둔 엄마와 딸은 흥겨운 댄스곡을 불렀습니다. 특이하게도 딸이 노래를 부르고, 환자복을 입은 엄마가 사지가 따로 노는 어설픈 춤을 추어서 우리 모두는 한참을 웃었습니다.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퇴원한다는 것, 다시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춤을 추고 싶을 만큼 기쁜 일입니다.

 

50대 후반의 아주머니 한 분이 나왔습니다. 무대 앞에서 큰소리로 박수치고 웃으며 분위기를 즐겁게 해주는 분이었습니다. 그녀는 즐거움 가득한 얼굴로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우리 남편이 말기 암환자에요. 호스피스 병동에 일주일 전에 왔어요. 처음에는 너무 무서웠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제가 웃고 즐거워야 환자도 즐거워진다고 생각해요. 모두들 9988234 아시죠? 구십구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 아프고 죽어야지요. 여러분 모두 그렇게 사세요. 부탁드립니다.”

 

노래 1등상을 받은 참가자는 오후에 수술실에 들어갈 예정인 어머니를 둔 딸이었습니다. 

상을 받으며 그녀는 눈물까지 글썽였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왠지 오늘 정말 수술이 잘 될 것 같아요. 큰 선물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날 저녁, 참석한 성탄전야 미사에서 신부님은 ‘가난한 마음이 성탄의 선물’ 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언제 가난한 걸까요? 희망이 없으면 가난해진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희망이 없는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가난한 이들은 하느님께 희망을 둡니다. 부자들이 하느님을 만나기 어려운 것은, 자기가 가진 것에 희망을 두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만나려면 우리는 가난해져야 합니다. 가난한 마음은 성탄의 선물입니다.”

 

병원은 더 이상 희망을 찾기 어려운 마음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그들은 특별히 신께서 더욱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몸짓과 노래, 그 어느 때보다 가난한 마음이 새로운 희망의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올 한해, 많은 분들이 제게 오셨습니다. 먼저 병원에서 만나 깨달음과 배움을 주셨던 그분들에게 감사함을 전합니다. 정현종 시인의 말대로, 사람이 온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입니다. 그의 과거와 현재, 미래, 일생이 오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23 page..,

1년 동안 격려와 공감, 관심의 답장을 보내주신 분들의 편지글을 모아보니, 모두 23 페이지나 되었습니다. 제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심어린 격려와 응원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 선물인지를 알려주셨습니다. 마음편지를 쓰던 올해 첫 날의 마음을 잊지 않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겠습니다.

 

2013년 선물같은 새해를 기쁨으로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20121029_184608.jpg

 

  (자주 가는 시장통 술집 벽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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