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승완
  • 조회 수 5170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3년 1월 15일 05시 52분 등록

다방면에 호기심이 많은 작가 빌 브라이슨은 친구 스티븐 카츠와 함께 미국의 유명한 도보여행 코스인 애팔래치아 트레일(Appalachian Trail) 종주에 도전한 적이 있습니다. 이 트레일은 미국 동부 연안 14개주를 관통하며, 총 길이는 3,500킬로미터, 종주하는 데는 보통 6개월이 걸립니다. 브라이슨이 도전할 무렵 종주 성공률은 10퍼센트가 안 될 정도로 멀고 힘든 길입니다. 도전자 100명 중 절반은 전체 여정의 3분의 1에 도달하지 못하고, 20명은 여행 첫 주에 포기합니다. 6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확보하고 값비싼 장비를 들고 와서, 스스로 선택한 길을 걷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완주율은 상당히 낮은 편입니다.

 

애팔래치아 트레일 초기에 포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내가 생각했던 트레일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을 기대했을까요? 장엄한 풍경과 싱싱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 있음을 느끼는 자신, 맑은 공기와 점점 건강해지는 몸, 동물원이 아닌 야생에서 사는 - 물론 맹수는 아닌 동물과의 만남, 그리고 고요한 숲 속에서 자신과 나누는 대화. 아마 이런 것들을 기대했을 겁니다. 준비하는 데 투자한 시간과 돈을 생각하면 이 정도 기대는 무리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애팔래치아 트레일은 첫날부터 이런 기대를 깨버립니다. 브라이슨과 카츠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두 사람은 등반을 시작하자마자 “곧바로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지옥이었다”고 합니다. 브라이슨은 <나를 부르는 숲>에서 여행 첫 날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내 몸 상태는 구제 불능이었다. 배낭은 그냥 무거운 정도가 아니라 천근만근이었다. 준비가 안 된 채 이렇게 무거운 걸 매본 것도 처음이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이 힘겨운 투쟁이었다. 가장 어려운 것은 아무리 걸어도 끊임없이 새로운 봉우리가 나온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애팔래치아 트레일 완주에 성공한 사람들은 종주 경험이 일생에 남을 만한 멋지고 대단한 일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그렇게 멋지지도 대단하지도 않습니다. 6개월 안에 종주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날씨에 상관없이 매일 일정 거리를 걸어야 합니다. 물론 적어도 10킬로그램은 넘는 배낭을 메고 말입니다. 익숙하고 편리한 문명 세계를 떠나 낯설고 조금은 위험한 숲의 세계에 순응해야 하며, 며칠 동안 씻지 못하는 불쾌함과 불편한 잠자리, 맛이 아닌 살기 위해 음식을 먹는 것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짐을 줄이기 위해 고심하며 고른 장비를 버리고, 입도 대지 않은 맛난 음식을 버리는 경험도 한두 번은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멀리 떠날수록 더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만 오래 가기 위해서는 짐이 가벼워야 하니까요. 종주자는 이런 상실을 짐뿐만 아니라 정신에서도 겪게 될 겁니다. 이런 어려움과 불편함이 일상이 되면 숲 속 생활은 단순해집니다. 브라이슨은 트레일 과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삶은 굉장히 단순하다. 시간의 의미는 멈추었다. 어두워지면 자고 밝아지면 일어난다. 그 중간은 그냥 중간일 뿐이다. 너무도 훌륭하지 않은가.”

 

새로운 일상이 자리 잡으면 불현 듯 등장하는 황홀한 풍경에 감동하거나 숲 속에서 사슴 같은 야생동물과 마주치는 일은 일종의 이벤트가 되고, 이전의 불편함은 여백으로 대체됩니다. “대부분의 시간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할 이유가 없다. 당신은 이제 움직이는 선(禪)의 세계 속에 놓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브라이슨은 말합니다. 어려움을 견디고 내 안에 여백이 생겼을 때 비로소 여행자는 스스로를 성찰하고 길이 주는 교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에 첫 발을 내딛는 이들이 기대하는 경험은 시간과 돈만으로는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매혹적인 풍광과 살아있음의 황홀과 자신과의 대화는 생존의 어려움과 동떨어져있는 게 아니라 그 모두가 길 위에 있습니다. 이것이 애팔래치아 트레일이 주는 가르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삶이라는 트레일도 다르지 않을 겁니다. 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에 성공한 사람들이 종주 과정을 통해 삶을 바꿀 수 있었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sw20130115.jpg

빌 브라이슨 저, 홍은택 저, 나를 부르는 숲, 동아일보사, 2008년 3월

 

* 안내 : 구본형 사부님의 신간 <구본형의 그리스인 이야기> 출간

구본형 사부님의 신간 <구본형의 그리스인 이야기>이 출간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 혹은 아래 이미지 클릭하시기 바랍니다.

 

bhgoobook-20130115.jpg

<구본형의 그리스인 이야기 : 신화가 된 영웅들의 모험과 변신 그리고 사랑>,

구본형 저, 생각정원, 2013년 1월

 

* 안내 : ‘1인 지식기업가의 자기경영’ 프로그램 소개

변화경영연구소의 카페 ‘크리에이티브 살롱 9’에서 2013년 2월부터 ‘1인 지식기업가의 자기경영’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본 프로그램은 매주 화요일 저녁에 진행되는 총 4개월 과정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클릭하세요.

 

sw20130115-2.jpg

 

 

IP *.34.180.245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