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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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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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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17일 00시 02분 등록

해거름이 되면 나는 산방 아궁이에 불을 지피러 갑니다. 그래야 밤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장작을 가득 넣고 서너 시간이 흐르면 그때부터 구들에 열기가 모아져 다음 날 오전 까지 뜨끈함이 지속됩니다. 그러니 하루 일과 중에 장작을 지피는 일처럼 중요한 일이 없습니다. 지난 달 눈이 많이 쌓이고 얼마 지나지 않은 날 장작을 지피러 아궁이로 가다가 흠칫 놀라 멈춰 선 적이 있습니다. 배와 가슴 부분이 사라진 짐승 한 마리가 아궁이로 가는 길목에 누워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라니의 사체였습니다. ‘바다’가 저지른 짓이었습니다. ‘바다’는 며칠 동안 그 고라니를 온전히 뜯어 먹었습니다. 남겨 놓은 것이라고는 정말이지 털 밖에 없을 만큼 사그리 먹어 치웠습니다.


그리고 이번 달 초 또 눈이 많이 내리고 난 다음 날, 바다는 텃밭 닭장 근처에서 또 고라니 한 마리를 뜯어 먹고 있었습니다. 눈이 내리고 쌓이면 산짐승들은 먹이를 구하기 위해 밭 언저리를 배회하는 날이 많습니다. 4년 넘게 야생의 생활과 사냥의 기술을 키운 개 ‘바다’와 ‘산’도 그런 동물들의 생태를 잘 알게 되었고 그렇게 몇 마리의 토끼와 두 마리의 고라니가 겨울을 건너지 못하고 잡혀 먹힌 것입니다. 며칠 전 늦도록 글을 쓰고 숲학교 사무실을 나서 오두막으로 퇴근(?)을 하던 날 밤, 나는 비슷한 일로 무척 처연해졌습니다. 사무실 문을 잠그고 돌아서 어둠 속으로 발을 놓아 막 산방에 다다르려는 즈음, 멀리서 고라니가 날카롭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소리는 높고 다급하게 멀리 퍼지다가 이내 점점 힘을 잃어가며 슬퍼졌고 마침내 작고 낮아졌습니다. 20초도 안되는 짧은 순간 동안 지속된 소리였지만 그 소리가 너무나 강하게 내 가슴에 남았습니다. 이번에는 ‘산’이가 사냥을 했는지 늦도록 ‘산’이가 돌아오질 않았습니다. 죽어가는 한 생명의 소리가 빚은 슬픔에 갇혀 나는 쉬이 잠을 청하지 못했습니다.


‘산’과 ‘바다’가 스스로 사냥을 하는 개요 그 사냥으로 획득한 먹잇감을 털 빼고는 남김 없이 먹는 개라고 일러주면 그때 까지 녀석들을 귀여워하고 다정하게 놀던 방문객들은 모두 조금씩 놀라 거리를 두곤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잔인한 놈들!’ 하고 혼잣말처럼 질책을 하기도 합니다. 나 역시 종종 ‘산’과 ‘바다’에게 이제 제발 살생을 자제해 보라고 말을 합니다. ‘산’과 ‘바다’는 그런 나와 사람들을 멀뚱이 쳐다보기 일쑤입니다.


녀석들에게 훈계를 할 때 마다 녀석들이 바라보는 눈빛에서 나는 종종 나 스스로를 향한 질문을 마주하게 됩니다. ‘하긴 저 개가 더 잔인할까? 나를 포함한 인간들이 더 잔인할까? 저 녀석들이야 필요하지 않은 사냥은 아예 하지 않지. 또 늘 단박에, 가장 짧은 순간에 그 먹잇감의 숨통을 끊지. 잡은 먹잇감을 남겨 쓸 데 없이 쓰레기를 만들어 버리는 일도 없지...’ ‘저들처럼 우리 역시 누군가를 잡아 먹고 살지만 우리는 얼마나 잔인한 방식으로 가축을 사육하고, 또 얼마나 잔인한 방식으로 그들을 도륙하며, 또 얼마나 많이 그들을 남겨 쓸 데 없이 버리는가를 생각하면 누가 더 잔인한가?’ 이후 나는 음식을 남기는 일을 삼가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는 형과 내게 닭을 잡는 일을 시키셨습니다. 오랫동안 물을 끓여 털 뽑는 일만을 하던 우리는 직접 마당을 뛰다니는 닭을 잡아 숨통을 끊고 뜨거운 물에 거죽을 살짝 익혀 털을 뽑고 배를 가르고 내장을 손질하는 일까지 모두 직접 해보는 체험을 하며 자랐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칼을 써서 닭의 숨통을 끊지 않으셨습니다. 닭 날갯죽지 어느 자리를 눌러 닭을 기절시킨 뒤 숨통을 끊으셨습니다. 내장 중에 어느 것도 버려서는 안된다 직접 보여주시는 것으로 가축을 대하는 법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전에는 생명 하나를 취하는 인간의 자세가 그랬음을 기억합니다. 개가 산짐승의 숨통을 단박에 가장 짧은 순간에 끊듯, 우리 사람들도 아픔을 덜 주며 가축을 취했습니다. 닭 뼈의 골수까지도 먹을 만큼 허투로 버리는 것이 없었습니다. 인간 역시 동물이어서 누군가를 취하여 사는 것을 거역할 수는 없는 생명이지만 다른 생명에 대한 예의가 함께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참 많이 잔인해 졌습니다. 칼과 총과 더 대단한 무기 또는 장비를 만들어낼수록 우리는 더 많이 잔인해 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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