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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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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24일 13시 23분 등록

숲에 살면서 아무리 힘겨운 국면이 찾아와도 버릴 수 없는 욕망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농부로 사는 꿈입니다. 숲의 이야기를 담아 글을 써서 독자를 만나거나 강연의 형태로 대중과 나누는 작업도 기쁘지만, 무엇보다 농부라는 업을 버리고 싶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농사는 몸을 써야 하고, 땀을 흘려야 하는 어쩌면 상대적으로 더 고된 작업이지만, 나는 그 업을 형편껏 죽을 때 까지 지속하고 싶습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입니다. 첫째는 참 정직한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땀이 만드는 정직함으로 세상에 소구하는 업이 농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허위의 사회 경제적 구조를 전복할 수 있는 힘이 있는 업이 바로 농사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스스로 창조하는 삶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창조해 놓은 것을 중개할 일 없고, 누군가의 부와 영광을 위해 종사할 일 없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겸손하게 살 수 있는 업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을 우러러 살고, 땅에게 기도하며 살 수 있는 업이 농사이기 때문입니다.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기에 더 없이 훌륭한 업이기 때문입니다.


농사를 업의 하나로 삼더라도 나는 결코 농사꾼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나는 농부라는 표현을 농사꾼이라는 표현과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철학자가 철학 노동자와 구분되고 교육노동자와 교육자가 구분되는 것과 같은 차원의 의미를 담고 있는 구분입니다. 철학자는 그 동안 존재해 온 철학자들의 철학을 단순히 집계하고 소개하는 철학 노동자와 다릅니다. 철학자는 스스로 근본을 추구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피에르 라비 같은 농부는 별도로 철학적 지식을 추구하지 않았지만 당당히 농부 철학자로 불립니다. 같은 차원에서 교육자는 단순히 지식과 비법을 전달하는 교육 노동자와 구분됩니다. 학교는 죽었다는 말이 학교 사회에 횡행하는데도, 박봉과 그 절망적인 분위기를 감수하면서 제자들을 만나러 날마다 출근하는 선생님들, 그들이 더 많은 소득이 보장되는 학원의 강사로 떠나가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그 개념을 쉽게 구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농사꾼이 아닌 농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농부는 오직 돈만을 위해 감히 밥상에 장난을 치지 않습니다. 자신이 먹기 두려운 농산물을 만들지 않는 이들이 진정한 농부입니다. 나는 그런 농부의 삶을 내 삶의 한 축으로 삼고 싶은 것입니다.

그대 역시 그런 분일 것입니다. 그러니 그대 처한 곳이 어디이든 꾼으로 살지는 않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힘겨운 국면이 찾아와도 꾼이 아닌 창조자로 사는 욕망 하나 꼭 지켜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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