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김용규
  • 조회 수 4457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3년 1월 31일 00시 53분 등록

개념 혹은 사상 창조자


셈해 보니 나는 18년 간 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원 석사 과정까지 제도화된 교육과정에 참여하여 공부한 시간이 그렇게나 긴 시간입니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공부해 놓고도 삶이 무언지 몰라 쩔쩔맨 시간이 많았습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몰라 아픈 날 많았습니다. 무엇이 참으로 귀하고 무엇이 사소한 것인지 몰라 귀한 것을 놓치고 사소한 것에 빠져 허우적거린 날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천성이 책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 책에 빠져 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 세월만큼 읽은 책도 제법이고, 두세 권 내 이름을 달고 책을 내놓기에 이르렀지만, 아직도 본질을 보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는 갑갑함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어제 읍내에서 한 분야를 30년 간 공부하셨다는 분의 강의를 들었는데 역시 비슷한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그 선생님 말씀이 자신이 조선말기에 있었던 농민운동과 그 사상을 그토록 오랫동안 공부하셨다는데 강의는 시원하지가 않았습니다. 그 사상의 위대함은 알겠는데, 그 사상이 이 시대에 어떻게 창조적으로 발현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과 답은 들을 수 없었습니다.


연대기적 사실과 배경, 흐름을 그간의 사료와 당신이 발로 뛰어 직접 발굴해 낸 자료를 중심으로 탁월하고도 객관적으로 풀어낸 강의지만, 나는 그 운동이 품고 있는 사상에 대한 설명에서는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그 답답한 감정은 코끼리의 다리는 선명하게 만지고 있는데 코끼리를 온전히 볼 수 있는 눈을 열어주지는 못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돌아와 아랫목에 누워서 긴 시간 그 생각을 했습니다. 나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최소 20년 가까이, 혹은 그 이상의 공부를 하는데 도대체 왜 우리는 코끼리의 다리를 만지다가 마는 걸까? 백이삼십 년 전에 그 농민운동의 사상적 뼈대를 구축하고 많은 민중들의 가슴을 그 사상으로 물들여 놓은 분들은 농민과 민중에게 이것이 참된 삶이고 진실이요 저것이 허위고 거짓이라고 설파했습니다. 그런데 후학은 그 사상의 조각들을 어루만지는 수준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과거의 위대함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우리 각자가 행하는 제 분야의 공부가 그렇게 선대의 사유를 쫓아가기에 급급합니다. 모으고 흩고, 다시 모으면서 새롭게 창조해 내는 힘이 확실히 빈약합니다. 한 시대의 문제, 아니 작게는 우리가 당면한 현실적인 문제의 본질을 꿰고 그 답을 내놓을 창조적 개념과 위대한 사상이 이 땅에서 나오지 못한 것이 너무 오래 되었습니다. 그러한 개념과 사상의 창조자가 보이지 않은지 너무 오래입니다. 왜 그럴까요? 공부 제도나 방법의 한계일까요? 사유의 한계일까요?

IP *.20.202.74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336 [수요편지] 잡념, 상념, 걷기 [1] 불씨 2024.04.17 167
4335 [내 삶의 단어장] 코인, 영어 할배 [1] 에움길~ 2024.03.12 267
4334 [수요편지] 전문가에 대한 미신 불씨 2024.03.27 290
4333 [수요편지] 거시와 미시 불씨 2024.03.13 299
4332 [수요편지] 목적을 위한 삶, 삶을 위한 목적 [1] 불씨 2024.03.06 312
4331 [책과 함께] 모든 나라의 역사는 같다 /피의 꽃잎들 [1] 에움길~ 2024.02.27 331
4330 [내 삶의 단어장] 각인, 그 무엇으로부터도 에움길~ 2024.01.30 332
4329 [내 삶의 단어장] 바구니, 진정성 [2] 에움길~ 2024.02.20 344
4328 [내 삶의 단어장] 덧없이 흐르는 이야기: 마그리트와 프랑스어와 루이비통 [1] 에움길~ 2024.03.05 353
4327 [수요편지] 행복에 대한 또다른 이런 저런... [1] 불씨 2024.02.28 360
4326 [내 삶의 단어장] with, 함께 할 수 없다면 에움길~ 2023.07.10 373
4325 언제나 들리는 소리 어니언 2023.12.21 378
4324 [수요편지] 행복에 관해 헷갈려 하지 말아야 할 것들 불씨 2024.02.21 382
4323 [내 삶의 단어장] 호박, 마법 또는 저주 [1] 에움길~ 2024.02.06 388
4322 캠핑 가보셨나요? [2] 어니언 2023.06.22 394
4321 [내 삶의 단어장] El Condor Pasa 철새는 날아가고, 나는 편안하고 [1] 에움길~ 2024.03.19 394
4320 [수요편지] 잠 못 드는 밤 비는 안 내리네 [2] 불씨 2023.11.22 396
4319 [수요편지] 미시적 우연과 거시적 필연 [1] 불씨 2023.11.07 399
4318 충실한 일상이 좋은 생각을 부른다 어니언 2023.11.02 404
4317 [내 삶의 단어장] 발견과 발명에 대한 고찰 [1] 에움길~ 2023.07.31 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