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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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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14일 10시 18분 등록

에어컨이 없어야 장사가 잘 된다

 

몇 가지 이색적인 라오스 모습을 소개한다. 다른 문화에서 오는 색다른 삶의 양태이기도 하지만 일견,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당시 실제 겪은 사실에 기반했으나, 소개하는 모습들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여전하리라 생각한다.

 

1. 8층 이상 건물을 지을 수 없는 까닭

오스는 높은 건물이 없어 처음 들어서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고층 건물의 위압감이 없다. 이유가 있었다. 수도首都를 관통하는 주도로가 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경복궁에서 시작해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동상으로 이어지는 광화문 광장쯤 되겠다. 라오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탓루앙 (‘은 우리 말 이고, ‘루앙위대한이라는 의미)에서 파리의 개선문을 본 딴 빠뚜사이’ (이름도 개선문이라는 뜻), 그리고 대통령 궁으로 이어지는 길이, 수도 비엔티안의 중심 도로다. 이 길에 국회의사당을 비롯 주요 관공서와 금융, 상업 건물이 들어서 있다. 이 모든 건물들이 8층 이하다. 위대한 탑, ‘탓루앙높이보다 높게 짓는 것은 법으로 엄격하게 금지된다. 뿐만 아니라 도시 어디든 주변 랜드마크 유적지 이상의 높이로 건물을 지을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다. 경관을 살리는 동시에 국가 사적지 위상을 높이는 일석이조의 효과다. 실제 8층 건물의 옥상에 올라가면 지평선을 볼 수 있다. 사방 360도가 시원하게 트인다. 내 마음의 안식처였다. 비가 오는 곳과 오지 않는 곳을 구분할 수 있고, 미켈란젤로가 그린 것 같은 구름이 하늘 끝까지 뻗어 있고, 번개가 치는 곳과 맑은 곳을 동시에 볼 수 있다. 한참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지구의 업무보고를 듣고 있는 것만 같다.

 

2. 에어컨이 없어야 장사가 잘 된다

줄을 서서 먹는 맛집은 어딜 가나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맛집의 팔할은 에어컨 없이 개방된 식당들이다. 에어컨 있는 식당들은 고급 식당으로 여겨진다. 외국인들과 일부 사람들만 드나든다. 그곳은 늘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 주고 출입문을 닫아 놓는다. 라오스는 열대기후로 계절이 없다. 굳이 계절을 나누자면 비 오는 여름과 비 안 오는 여름이다. 한국의 여름만큼은 덥지 않지만 4, 5월 비 오지 않는 여름은 꽤나 덥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 사람들은 시원하게 에어컨 나오는 곳은 잘 가지 않는다. 무엇보다 음식 값이 비싸고 닫힌 공간이라 선호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 말을 듣고 난 다음부터 유심히 보고 다녔는데, 신기하게도, 아닌 게 아니라 대부분의 식당에 문이 없다. 라오 사람들은 폐쇄적인 공간을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처럼 싫어했다.

 

3. 우체국은 편지를 배달하지 않는다

한국에 지인을 통해 책을 받기로 했다. 보냈다고 하는데 두 달이 지나도 오지 않아 궁금했던 차였다. 책이 오는 길에 바다에 빠진 모양이다 여기고 있었다. 어느 날, 전화가 왔다. 우체국으로 소포를 찾으러 오라고 했다. 시내 하나뿐인 우체국에 가니 산더미 같이 쌓인 편지와 소포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에서 우편료를 지불했음에도 또 다시 일정금액을 지불하고 나서야 찾을 수 있었다. 다음 날 라오 친구에게 물어봤다. 예전엔 우편배달부가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졌다고 한다. 도로 사정도 열악하거니와 첩첩산중 두메산골에 사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배달할거냐고 나에게 반문한다. 그래 맞다. 그런데 말이다. 내 듣기론 프랑스 식민지 기간(18~19C) 에 이 나라 대통령이 우편배달부 출신이었다 들었다. 나라를 속속들이 찾아 다니며 사람들을 알았으니 그 시대 그만한 유세 방법이 없었겠다 싶다. 그야말로 대통령 감이다.

 

4. 포교하면 추방

한국에서 기독교 선교를 목적으로 라오스에 오신 분들이 많다. 나는 종교를 가지지 않았지만 많은 선교활동가들이 음지에서 암약하신다 들었다. 우리나라 군대 가는 것처럼 스님이 되고, 국민의 90%가 불자인 나라에 포교하러 오셨으니 어찌되었건 보통 용기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이곳에 뿌리 내리고 사신지 꽤 오래 된 태권도 학원 관장님도 그 중 한 분이었던 모양이다. 근래 잘 보이지 않아 어느 날, 지인을 통해 그분의 안부를 물으니 급하게 한국으로 가셨다고 한다. 손바닥을 세워 입에 갖다 대며 사실, 쥐도 새도 모르게 추방당했다고 속삭였다. 이유인즉 선교 활동을 하다 누군가의 고발로 당국에 적발되어 그 길로 곧바로 강제 추방 조치를 당했다고 했다. 종교란 무엇인가. 책꽂이에 잠자고 있던 자크 데리다의 신앙과 지식을 펴 들었다.

 

5. 송중기는 몰라도 손흥민은 안다

라오 사람들에게 박지성은 아시아의 영웅이다. 이곳 웬만한 남자들은 박지성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브리핑을 할 수 있을 정도다. 뿐만 아니라 잉글랜드 프리미어 축구리그에 관해선 전문가 수준이다. 감독은 물론 모르는 선수가 없고 주요한 전략과 팀별로 주로 구사하는 전술까지 꿰고 있다. 독일 분데스리가, 스페인 라리가 리그도 섭렵한다. 저녁이 되고 땅거미가 내려 앉으면 동네 허름한 까페에 삼삼오오 남자들이 모여든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축구 중계를 보며 삼매경에 빠진다. 축구가 끝나고 나면 그날 패인에 대해 분석하며 맥주를 마신다. 언젠가 소개하기도 했던 직장 동료 스왕’(갑자기 출근하지 않았던, 그 길로 시골에 내려가 소 여물을 먹이던 그다) 이 자신의 축구클럽에 나를 초대했다. 군대에서 갈고 닦은 전투축구를 시현해 보일 예정이었다. 동네 축구려니 생각하고 옛 실력을 뽐내려 갔는데 전반 5분을 소화하고 골키퍼로 자진하여 포지션을 변경했다. 라오 사람들의 축구실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사회체육으로써 배드민턴과 축구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 군대를 능가한다.

(사실 확인을 위해 참고한 책: 비밀의 라오스, 한명규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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