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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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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21일 12시 02분 등록


학교 가기 대소동


혹시라도 누군가 무턱대고 외국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생각이라면, 나는 슬그머니 그 분의 소매 끝을 잡겠다. 지난 시행착오를 생각하면 처음 외국에 발 디딘 날까지, 아니다, 외국에 가겠다고 마음 먹었던 순간까지 만유인력으로 소급하며 머리를 감싼다. 이곳에선 금기어와도 같은 조건법, ‘만약 내가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저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이 금기어를 내뱉게 되는 날이 올 테니 말이다. 어른들이야 진흙탕을 구르든 레드카펫을 밟고 다니든 제 앞길 제 알아서 살면 그만이지만, 아이들은 어디 그런가. 태어나 엄마 입을 보고 수백 번 반복하며 어렵사리 배운 모국어가 점점 폐기되는 전환을 겪게 되고, 자기에게 가장 소중한 유희왕 카드를 양도소득세도 없이 이전하며 주변정리를 하고 왔지만 정작 친구들은 없고 결국 혼자 밥을 먹게 되는 소외를 당한다. 말이 통하면 싸우기라도 하겠으나 이건 당최, 선생님이고 친구들이고 말조차 알아 먹을 수 없으니 매일이 난감하고 당황스럽다.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우는 것이다.


곡절이 있었으나 결론부터 말하면 아이들은 학교를 잘 다니고 있다. 그런데 프랑스학교다. 라오스에서 한국아이가 프랑스학교라니, 뜬금 없지만 내막은 이렇다. 라오스에는 한국학교가 없다. 한국어로 가르치는 학교를 수소문 해서 찾아갔지만 이미 정원이 찼다고 했다. 어렵사리 상담한 국제학교는 대뜸 영어 테스트부터 했고 에이비씨디를 모르는 아이에겐 입학을 허가할 수 없다고 했다. 더구나 현재는 각 학급마다 학생들이 만원이라 받아줄 수 없다고 했다. 다른 학교를 찾아갔지만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혼란스러웠다. 잘 다니던 한국의 학교를 그만두고 아빠를 따라 외국에 왔는데, 아이들은 학교를 다닐 수 없는 상황이다. 아이들에게 괜한 짓을 하나 싶었고 다시 돌려보낼 생각까지 하던 찰나, 오히려 잘 됐다 싶은 것이다. 이러든 저러든 어차피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너희들 생애에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학교 가지 말고 실컷 놀아보라했다. 무모했다. 2개월이 지났다. 학교 가지 않는 아이들이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고 아이들도 마냥 노는 게 지겨워졌다. 사실, 입이 마른다. 그때 마침 연락이 닿아 입학 상담을 했던 곳이 프랑스학교다. 어디에 있는지, 누가 다니는지, 커리큘럼은 어떤지, 존재조차 몰랐던 학교였다. 백발의 교감선생님과 기본적인 상담을 했다. 이러저러한 얘기에 덧붙여, 아이들은 영어는 고사하고 프랑스어는 말할 줄도 모르고 본 적도 없다고 했다. 그는 내일 아이들을 데리고 오라 했고, 다음 날 입학했다.


허무한 대소동의 결말이다. 입학하기 전날 밤, 아이들을 불러 모아 물었다. “프랑스라는 곳을 아느냐? 모른다. 프랑스학교라는 곳이 있다는데 다닐 수 있겠느냐? (노는 게 지겨웠으니) 다닐 수 있다.” , 깊은 한숨을 내쉬고 하늘을 봤다. 나는 더 막막해진다. 못 다니겠다 했으면 여길 떠나기라도 했을 텐데 말이다. 스스로 가겠다 하니 말릴 수도 없겠다. 어쩌겠는가, 어차피 에이비씨디도 모르고 아베쎄데도 모르니 어디서 배우든 너희에겐 매 한가지다. 훗날 알고 보니 불어 구사는 입학의 필수조건이었고 아무것도 모른 체 입학한 케이스는 전무했다. 교민사회에서도 여전히 회자되는 알 수 없는 미스터리다. 입학을 승인한 백발의 교감쌤, 도미니크는 전무한 케이스를 남기고 그 다음해 프랑스로 발령받아 떠났다.


언어는 큰 장벽이었다. 부모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고 오로지 아이 내면의 힘으로 감당해야 하는 고통이다. 아이는 이겨내려 발버둥을 쳤으나, 밤이면 우는 아이를 나는 야단쳤다. 태연한 척 뒤돌아 서며 함께 울어야 하는 부모도 몸부림을 쳤다. 일찍이 사라져 버린 가혹한 성인식을 이른 나이에 치르게 한 건 아닌가 하는 애석함, 안타까움, 미안함이 늘 들어앉아 있다. 소동은 일단락 됐다. 이후 낯선 학교, 친구, 언어에 적응해 가면서 말하지 못하는 눈물 겨운 일들은 많다. 하나 하나 말하기 시작하면 책이 나온다. 기어이 그 책을 집필하려거든 그리 하는 건 좋지만 그 전에 말리고 싶은 것이다. 다시 하라면 혀를 내 두르며 손사래를 치고 머리도 흔들 테다. 교육에 관한 담론을 말하려 하는 건 아니다. 가르치고 훈육한다는 교육이라는 말이 맞기나 한 것인지조차 모르겠다. 누가 누구를 가르치겠는가. 아이에게 배울 게 더 많은데 말이다. 그것은 가치관의 문제이므로 부모 된 사람들 각자의 몫이자 사회의 몫이다. 특정 국가의 우월한 교육시스템도 없다. 다만 어디를 가든, 어디에서 무엇을 배우든, 단지 시험공부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 공부가 아님을 알았으면 좋겠다. 전체 중에 하나가 아니라 온전한 개인으로 자랐으면 하는 바램뿐이다.


아비가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지 못했으니 공부를 강요할 순 없다. 이 세상 모든 게 공부라 말하며 긴 수염의 뒷짐진 현자처럼 손을 놓고 있을 수도 없다. 그러나, 말이 통하지 않는 답답함을 드러내 보이는 아이를 안아주는 대신, 목소리를 높이고 야단치진 말았어야 했다. 지난 날 내 과오에 퇴계 선생이 할배 목소리를 하고 말한다퇴계 선생의 훈몽訓蒙 시에 이런 것이 있다. 


많은 가르침은 싹을 뽑아 북돋움과 한가지니

큰 칭찬이 회초리보다 훨씬 낫다네

내 자식 어리석다 말하지 말라

좋은 낯빛 짓는 것만 같지 못하리 ('일침', 정민 지음, 재인용) 


맹자가 거든다.

어떤 이가 자기 밭에 심군 곡식의 싹이 잘 자라지 않자 싹을 강제로 뽑아 올라오게 했다. 그리고는 자라는 것을 도와주었다고 자랑했다. 다음 날 보니 싹은 다 말라 죽어 있었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부모의 칭찬과 든든한 신뢰, 그리고 환한 낯빛이다.’ 말이 나온 김에 못난 아비의 기원까지 거슬러 가보자. 허수경 시인의 산문집에 나오는 얘기다. 기원전 3천년 수메르어로 씌어진 글이다. 아들이 학교 수업을 빼먹고 길거리에서 시간을 헛되게 보내는 것을 한탄하는 아버지가 있었다. 교실에 앉아 있어도 읽지도 쓰지도 덧셈도 뺄셈도 못하는 아들, 그 아들을 꾸짖는 아버지의 글을 보곤 시인이 말한다. ‘이 세상의 모든 아버지여, 고대나 지금이나 아들들은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마치 당신들이 누군가의 아들이었을 때처럼요.’ 모자란 부모와 아비의 예는 차고 넘친다. 깊이 반성한다.


그러고 보니 백발의 도미니크쌤과의 일화가 하나 있다. 라오스에 1년 반을 살다 베트남 호치민으로 넘어오던 때였다. 교감선생님이 베트남으로 가기 전, 같은 반 친구들과 마지막 여행을 함께 했으면 하니 여행 비용과 그 기간의 학비를 내지 않아도 여행을 보냈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해왔다. 좋은 사람들이다. 안타깝게도 비행기 일정으로 큰 아이는 반 친구들과 마지막 여행을 갈 수 없었다. 비행기 일정을 조정해서라도 보내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좋은 사람들의 선의와 못다한 우정과, 인연의 아쉬움을 잊지 않고 사는 수밖에. 나라가 어디든, 학교가 어디든 사람을 키워내는 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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