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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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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4일 12시 30분 등록

그대,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삶은 때로 자신의 의도대로 순항하는가 싶다가도 알 수 없는 운명의 폭풍 속에 내던져지기도 한다. 주먹을 불끈 쥐고 모든 걸 박차고 떠나는가 하면, 어디서 왔는지 모를 환희가 온 몸을 지배하기도 한다. 시간과 장소에 쑤셔 넣으면 시들 것 같지 않던 의지는 수많은 형태로 무너지기도 하고, 알 수 없는 당황으로 온 몸의 피가 솟구치는 삶의 의욕에 달아오르기도 하지만 속수무책의 허탈함으로 온 몸에 피가 다시 빠져나가는 무참함을 경험하기도 한다. 삶이 진화한다거나 진보, 발전한다 말할 수 없는 건 이 때문이다. 그것은 나이가 많고 적고의 문제가 아니다. 오래 산 사람을 구분하여 고난이 우회한다거나, 시간이 비켜 가진 않는다.

 

생에 달관하고 많은 시간을 살아내어서 이제는 관조할 수 있다 여기지만 끼니처럼 달려드는 모진 상황의 문턱에 걸려 우리는 늘 자빠진다. 행복이라는 놈에게 머리채를 휘어 잡히는 일은 죽을 때까지 반복될 것이다. (‘인간이 만약 행복에 관해 생각할 필요가 없다면 인생은 얼마나 재미있을 것인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무시로 공전하듯 삶은 자신을 안고 치열하게 뒹구는 것이다. 거대한 짐승의 등껍질 같은 화강암이 제자리에서 억겁을 버티는 것과, 원숭이가 새끼의 털을 골라주는 것과, 전기 파리채에 죽는 모기와, 내가 살아온 삶은 다르지 않다. 지구 자전처럼 삶은 그렇게 전개되는 것, 태어났기 때문에 살아야 하고 삶이 주어졌기 때문에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이 탄생될 때 가동되는 힘, 삶과 죽음의 힘, 그 시간에 어머니와 아이는 맹목적인 본능으로 어둠 속에서 길을 찾아 더듬’거린다. 우리는 숙연해진다. 가장 위대한 더듬거림에 칸트는 풋내기고 뉴턴은 돌팔이가 된다. 살아야 하는 목적과 이유를 이 보다 극명하게 설명해 주는 장면은 없다. 이 세상 모든 철학을 짓밟고 있으며 천문학을 뭉개고 서 있고, 모든 값어치 너머에 있는 것이 삶이다. 상찬해 마지않았던 철학은 슴슴한 젓갈 한 숟갈도 담그지 못하고, 숭배했던 천문학은 딸의 왼쪽 뺨에 하는 뽀뽀를 원칙을 들어 설명할 수 없다. 잘난 경제학에서 내가 비엔티안 거리를 배회하는 이유를 치환할 수 있는 학적 모델은 없다.

 

나는 내가 낯선 나라에 온 이유를 오랫동안 고민했었다. 의도대로 되지 않는 삶의 전개에 자괴하기도 했고, 처지를 정당화하며 안심하기도 했는데 죄다 쓸데없는 고민이었음을 긴 시간이 지난 뒤 알게 됐다. 이유가 없었다. 근거는 무근거 위에 서 있다. 삶이라는 복잡하고 중층적인 우연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 시간을 만유인력으로 끌어 당겨 태초로 되돌려놓지 않는 이상 내가 이곳에 있는 근거를 설명할 수 있는 건 세상에 없다. 살아야 하기 때문에 사는 것처럼, 있어야 하기 때문에 있는 것처럼 나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오랜 고민의 소득치곤 궁핍하다. 어쩌겠는가, 삶은 가장 정직한 정찰제다. 흥정할 수도 없고 에누리도 없다. 나는 그게 무엇이건, 어디서건 이유를 찾아내려 야단법석을 떨었다. 찾아낸 이유를 두고 기뻐하거나 실망했다. 스스로 버린 것은 탈탈 털어내고 그 중에 남아 있는 것들을 건져내 ‘한 번 더’를 말할 수 있는 ‘신성한 긍정’이 나에게 필요했었다. 카잔차키스의 아버지처럼.

 

“일 년 내 고생해 거두어 반쯤 말린 포도가 바다로 가서 썩어버리려고 한 아름씩 물에 휩쓸려 내려가는 광경을 보았다.

 

‘아버지!’ 내가 소리쳤다. ‘포도가 다 없어졌어요!

우리들은 없어지지 않았어.’ 그가 대답했다.

 

꼼짝 않고 서서 재난을 지켜보며, 모든 사람들 가운데 아버지 혼자만이 인간의 위엄을 그대로 지켰다“. (영혼의 자서전, 니코스 카잔차키스)

 

잠들 수 없는 질문들에 구질구질한 대답들의 혈흔을 찾아 나서기 보다는 낯선 문자와 언어들에도 내 몸에 기억된 수많은 인간들의 질문들을 물었어야 했다. 나는 끝내 묻지 못하고 라오스를 떠난다. 돌아가신 스승께도 늘 질문하지 않는 놈으로 찍혔었는데 우물쭈물하다 나 그럴 줄 알았으니 매사가 이런 걸 또 어찌하겠는가. 비엔티안을 떠나올 때 고마움을 곁들인 회심의 미소 한 움큼 날리려 했었지만 눈물이 조금 글썽거려 웃을 수 없었다. 긍정의 인간이라도 돼야 할 텐데 눈물만 많아진다. 나이 들수록 로고스(논리)는 사라지고 에토스(정서)만 남는다. 약해 빠져 어디 쓸데도 없다.

 

라오스를 떠나며 처음 이곳으로 올 때를 생각했다. 오래 몸담았던 회사에 부침이 있었다. 한 조직의 수장이었고 책임을 져야 할 자리였다. 팀원을 대신해 회사를 나왔지만 부끄럽지 않았다. 나름 정의로웠다 말하고 싶지만 지나고 보니 꼭 그렇지 만도 않았다는 걸 알게 된다. 구조조정 앞에 약삭빨랐던 인간, 동료의 퇴사에 어정쩡했던 사람들, 또 자신은 정의로웠다 생각한 월급쟁이, 모두 군상들의 한 조각이었다. 나는 잘나지 않은 고만고만한 사람들 속에 어디든 있을 법한 사람들 중에 하나였다. 그걸 두고 부끄럽니 마니, 양심이 있니 없니 하는 건 민망한 것이다. 그렇다고 내 운명이 정해져 있고, 난장을 쳐도 제 갈 길 다 간다는 운명론자는 아니다. 그런 염세의 삶은 생각하기도 싫거니와 포르말린에 말린 것 같은 관조하는 삶도 시시하다.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닌 삶은 더더욱 싫다. 그렇지만 삶은 나를 또 어디로 이끌지 모른다. 그것은 나와 지구가 언젠가 알아서 할 일이다. 늘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감 놔라 배 놔라 하진 않는다.

 

특별한 목적이 있었던 글은 아니었음을 감안하더라도, 지나간 글을 찬찬히 다시 보니 두서가 없다. 했던 말을 또 하기도 하고 치기어린 밤의 글들이 고스란히 활자화 돼 e-mail을 탔다. 보기 싫게 산만하고 질척거린다. 죽은 사람 권위에 기대 숨거나 젠 채 하는 버릇은 아직 버리지 못했다. 수사가 많고, 필요 이상으로 무거운 글은 언제 버려질지 모르겠다. 다만 여전히 눈 뜨고 봐주고 있는 건, 내가 모자란 인간인 것까지 감출 수 없기 때문이다. 모자라고 부끄러운 게 당연하지만 그것을 또 뻔뻔하게 감당해야 하는 건 내 몫이다. 오늘 할 말은 내일의 해선 안 될 말이 될 수 있는데, 해선 안 될 말을 하는 부끄러움 또한 오로지 내 몫이다. 꼭 그와 같이 수치심에 숨고 싶지만 여전히 떳떳한 척하는, 한 월급쟁이 유치한 그 모습을 스스로 여태껏 보아주고 있는 것이다. 나까지 나를 암바(arm bar)걸 순 없다. 세상에 걸려있는 암바로 족하다.

 

무거운 보따리를 들고 라오스를 떠났다. 비행기의 무지막지한 속도로 순식간에 여긴 더 이상 라오스가 아니라는 걸 알았을 때, 몇 시간 전에 떠나온 그곳이 마치 십 년 전의 일처럼 아득했다. 회한도 그리움도 없이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는 어렴풋한 기억뿐. 그것은 십 년의 시간을 진하게 우려내 단번에 들이킨 일 년 이었다. 아니다, 일 년 부피에 십 년을 담아버린 실제 있었던 십 년이었는지 모른다. 언젠가 오천 년 전에 내가 겪은 것 같은 일이 훅하고 들어올 때처럼, 수천 년 뒤 누군가의 기억에 십 년의 일 년이 다시 일 초도 안 되는 순간이 되어 뇌리에 훅하고 다시 박히게 될지 모를 십 년이 지났다. 그리곤 다시 그곳에 가지 못했다. 한때 전부였던, 내 마음 깊숙이 파고들었던 라오스는 비행기를 타고 떠나오던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두고 온 것도 없어서 아마 영원히 다시 갈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내 목소리가, 내 눈물이, 내 할 말은 아직 그곳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이번 글을 끝으로 ‘라오스 이야기’를 마칩니다. 그 동안 못난 글에 함께 기뻐해 주시고 격려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위로를 해드려도 부족할 판에 도리어 제가 위로와 응원을 받았습니다. 어찌 갚아야 할지요. 졸필을 이어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 글부터는 호치민 이야기로 찾아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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