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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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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18일 10시 28분 등록


오토바이, 그 자유의 바람



날아오는 맞바람에 긴 머리를 휘날리며 말의 갈기처럼 거침없이 달리는 여인. 나에게 오토바이 타는 여인의 심상은 이렇게 다가온다. 마치 옛날 한 손에 손도끼를 불끈 쥔 채 양다리를 벌려 말을 타고 밤새 배회하는 여자의 현대적 질감 같은 것. 베트남은 가히 모터바이크의 나라라 해도 무색하지 않을 만큼 오토바이가 거리를 점령하고 있다. 처음 왔을 땐 이 나라 사람 모두가 오토바이를 끌고 거리에 나왔나 싶을 정도로 많은 오토바이에 놀랐다. 처음엔 신호등 파란 불에도 쌩쌩 달리는 그들이 무서워 도로를 건너지 못했다. 맞은 편 식당을 두고 길을 건너지 못해 점심을 거른 적이 있다. 오토바이와 친근해 지면서부터 사이공 사람이 되는 모양이다. 무서웠던 오토바이가 정겹다. 이젠 딴짓을 하며 길을 건너기도 한다. 점차 오토바이를 즐기며 그 맛에 빠져들었는데, 한 번 빠진 그 맛에서 헤어나기가 어렵다. 대륙을 말 달리던 갈기는 핸들로 바뀌었을 뿐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허리를 곧추세우고 두 팔을 쫙 펴면 자유가 된다. 머리칼이 사방 천지로 흩날리는 자유의 바람, 나는 사이공 Saigon으로 왔다.


늦은 오후 퇴근 시간, 사이공 거리는 오토바이들로 가득 찬다. 도로를 가득 메운 오토바이들이 혈관같이 한데 엉겨 가다 신호가 걸리면 동맥경화처럼 순식간에 쌓인다. 수백 수천은 족히 돼 보이는 오토바이들이 출발 신호를 기다린다. 박차고 나갈 듯 부릉거리고 있다. 사거리 맞은편 오토바이들도 부릉, 부릉댄다. 마치 폭발을 기다리고 있는 에너지들의 경쟁 같다. 긴장은 극에 달하고 마침내 신호가 바뀌면 먼저 뛰쳐나간 오토바이들이 교차로 중앙에 진로를 뚫어 내려 안간힘을 쓴다. 맞은 편에서 달려온 오토바이들도 뒤엉켜 맞버틴다. 강 대 강이다. 힘들이 교착된다. 힘의 진공상태를 먼저 뚫어낸 한 오토바이 뒤로 거대한 오토바이 행렬이 들이치고, 뚫어내지 못한 오토바이들은 꼼짝없이 멈춰 선다. 마치 멸치 떼 같은 거대한 하나가 꿈틀대는 듯 하다. 버드 뷰로 보면 긴 뱀처럼 움직인다. 앞 오토바이 뒷바퀴에 자신의 앞바퀴를 밀착하고 굴러가는 장대한 오토바이 집단의 힘겨루기는 장관이다. 매일 벌어진다.


사이공은 걷기 어려운 도시다. 3분을 걷고 나면 이유를 알 수 있다. 사람이 걸어 다녀야 할 인도 人道엔 사람 대신 오토바이가 다닌다. 인도 人道는 없어도 오토바이 전용 도로는 차고 넘친다. 세계에서 가장 오토바이 친화적인 도시라 하겠다. 시민 모두가 모터바이크 전문가다. 바야흐로 오토바이의 도시다. 사이공에 놀러 오는 지인들에게 택시나 차를 두고 오토바이를 타보라 늘 권한다. 사이공을 가장 빨리 이해하는 방법 중 하나다. 차를 타고 다니면 결코 볼 수 없는 장면을 목격하게 될 것이고,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겪을 수 없는 일을 겪게 될 테니까. 그러면서 자연, 사이공의 일원이 된다. 물론 거리의 매연, 소음은 견뎌야 하고 무시로 달려드는 옆 오토바이의 위협을 이겨내야 하지만 말이다.


한 쌍의 남녀가 오토바이에서 서로의 체온을 찾아 헤매는 모습에 나는 밝아진다. 그 많은 오토바이 중에 아는 사람을 만나 나란히 달리며 안부를 묻고 일상 잡담을 나누는 장면은 차라리 서커스다. 세 자녀와 부부, 일가족 다섯이 조그만 오토바이에 앉아 옹기종기 타고 가는, 세상에서 가장 밀접한 가족을 볼 수 있다. 사이공에서 오토바이를 탄다는 것은 내 눈높이를 사이공에 맞추는 일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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