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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0일 12시 23분 등록


저는 2000년대 초반에 유럽의 땅끝 마을, 지브롤터(Gibraltar)에서 살았습니다. 이베리아 반도의 가장 아래쪽 끝에 위치한 지브롤터는 지리적으로는 스페인 안에 있지만, 300여년 전부터 영국의 지배를 받고 있는 영국령 도시 국가입니다. 1997년 중국으로 반환되기 이전의 홍콩 같은 곳이라고 보면 되겠네요. 이곳에서 일하면서 다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대학원 진학 준비를 했는데요. 미국에 있는 경영대학원에 지원하려면 TOEFL, GMAT 등의 시험 성적이 필요했습니다. 지원 마감일을 앞두고 급히 점수가 필요했는데, 지브롤터에는 이런 시험을 볼 수 있는 곳이 없었습니다. 그나마 가까운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이웃나라 포르투갈의 리스본 등에 가야 시험을 보는 곳이 있었는데요. 하필 그 도시들의 시험 센터에서는 점수가 필요한 날짜에 맞춰 시험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일정에 맞는 곳을 찾아 보니 가장 빨리 볼 수 있는 곳이 이탈리아의 로마였네요. 영어 시험 보러 비행기 타고 다른 나라를 가야하다니우리나라에서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유럽은 그랬습니다. 그때만 해도 인터넷으로 시험 접수도 할 수 없어서 이탈리아 동료의 도움을 받아 팩스로 시험을 접수하고 여행을 준비했지요. 그는 비행기표 예약 뿐만 아니라 로마에 있는 부모님의 집에서 지내라며 숙소까지 해결해 주었습니다. 5일간이나 머물 집에 빈손으로 갈 수는 없지요. 친구 아버지가 와인을 좋아한다는 정보를 듣고, 비싼 프랑스 와인을 들고 갔습니다. 공항까지 마중 나온 부모님께 감사드리며 와인을 건넸습니다. 고급 프랑스와인이라는 설명과 함께와인을 좋아하는 분이라니 당연히 아주 기뻐하실 줄 알았는데요. 그분의 반응은 한마디로 ‘X 씹은 표정이었습니다. 그러고는 강력한 어투로 말씀하셨습니다.

프랑스 와인은 마케팅의 힘일 뿐이야. 진짜 좋은 와인은 이탈리아와인이지!”  

 

와인 종주국의 자부심

그때만 해도 와인 무식자였던 저는 와인 하면 먼저 프랑스가 떠올랐고, 프랑스 와인이 최고의 와인인 줄 알았습니다. 고마운 마음에 무리해서 비싼 프랑스 와인을 선물했는데 그런 반응을 보니 좀 섭섭했는데요. 와인을 공부하고 나서야 이탈리아인들의 와인에 대한 자부심, 특히 프랑스 와인에 대한 와인 부심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와인의 전파는 서양 문물의 이동과 궤를 함께 합니다. 소아시아 지역에서 처음 만들어진 와인은 메소포타미아, 이집트를 거쳐 그리스를 통해 로마로 전파되었지요.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보다 훨씬 많은 양의 포도가 필요합니다. 와인이 비쌀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당연히 귀족이나 부유한 사람만이 일상적으로 즐길 수 있는 음료였고요. 그런데 로마시대에는 와인이 누구나 마시는 일상 음료가 됩니다. 가장 큰 이유는 지배자들의 정책 때문인데요. 로마는 주권이 인민에게 있었고 지배자는 그들의 환심을 사야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사는데 음식만큼 좋은 게 있을까요. 그 중에서도 와인은 마음을 살 뿐 아니라 취해서 정치에 관심이 멀어지게 하는 효과도 있었습니다. 로마시민들은 공짜로 곡물, 와인, 돼지고기 등을 받아서 먹고 마시며 즐겼고, 정치에는 점점 관심이 멀어졌습니다. 로마인들이 얼마나 와인을 즐겨 마셨는지는 폼페이 유적에서도 확인됩니다. 당시 인구 2만 명 정도였던 폼페이에 와인 가게가 100개나 있었다고 하니 알만하지요.

pompeii_wineshop_small.png

* 폼페이 유적에서 발굴된 와인 가게 흔적. 출처: https://www.pinterest.co.kr/pin/60587557463912126/?lp=true


통치자는 대중은 물론 군인에게도 와인을 지급했습니다. 특히 고향을 떠나 국경 근처에서 복무하는 수비부대에게 와인을 많이 공급했습니다. 그 때는 위 그림에 보이는 암포라라는 항아리에 와인을 보관했는데요. 항아리에 넣은 와인을 알프스를 넘어 국경 지역까지 옮기는 일은 매우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로마인들이 생각해낸 해결책은 두가지 였습니다. 하나는 암포라 대신에 참나무통을 이용해서 와인을 운반한 것이었습니다. 참나무통은 중세를 거쳐 현재까지 와인 숙성 및 보관에 이용되고 있지요. 또 하나는 알프스 이북 지역에서 포도를 재배해서 와인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어렵게 보관할 필요 없이 와인 소비지역에서 바로 만들어서 공급하자는 것이었는데요. 그 때 로마 군인을 위해서 포도를 재배한 지역이 지금의 프랑스와 독일입니다. 그런데 프랑스 지역에 살던 당시 갈리아인이 포도를 아주 잘 재배했고, 뛰어난 와인을 만들었습니다. 청출어람이라고 했나요. 얼마 지나지 않아 갈리아인들이 만드는 와인은 거꾸로 로마로 수출되었습니다. 이 때부터 프랑스 와인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프랑스 와인은 유럽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카를로스 대제의 비호를 받고 더욱 발전했고요. 와인 산업이 거의 죽어가던 중세시대에도 보르도 공국을 영국으로 가져갔던 엘레아노르 왕비 덕에 영국 왕가의 인정을 받으며 승승장구합니다.

근세에는 어떤가요. 프랑스 사람들은 드디어 와인을 하나의 예술이라 부르며 온갖 포장을 합니다. 덕분에 예전의 저처럼 많은 사람들이 와인 하면 프랑스를 떠올리는 데요. 그러는 동안 이탈리아는 어땠을까요? 이탈리아에서는 와인을 마신다고 하지 않고 '먹는다'는 표현을 씁니다. 그만큼 와인은 빵, 치즈와 함께 매일 먹는 일상의 음식이었던 거지요. 이탈리아 사람들은 와인을 특별한 걸로 만들 생각도 특히 상품으로 마케팅을 할 생각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프랑스를 비난하고 무시했지요. 하지만 전세계가 프랑스를 와인 종주국으로 여기게 되자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이탈리아도 드디어 양조법을 개선하고 와인에 등급을 부여하는 등 와인을 상품으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탈리아 와인의 특징 등 본격적인 이탈리아 와인 이야기는 다음주로 넘겨야겠네요. 또 다른 한주가 시작됩니다. 이번주도 건강하고 맛있는 한 주 보내세요~^^

 

참고문헌

<역사학자 정기문의 식사> 정기문, 도서출판 책과함께, 2017

<와인> 김준철, 백산출판사, 2003

 

--- 변경연에서 알립니다 ---

 

1. [팟캐스트] 먹는 단식 FMD - 정양수 작가 1

81번째 팟캐스트 정양수 선생님의 <먹는 단식 FMD > 첫번째 이야기입니다. 법정 스님은 '풀뿌리만 먹으면 1만가지 일을 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변화는 먼 곳이 아니라 식습관을 바꾸는 것처럼 가까운 것부터 시작합니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단식, 어렵지 않습니다. 김사장, , 묙이 함께하는 방송은 아래 링크를 클릭하셔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5849?e=23225132

2. 2회 에코라이후 릴레이 강연&토크에 초대합니다!

10월의 마지막주 토요일인 26일 낮 12시부터 경제, 경영, 인문에 대해 공부하는 모임인 <에코라이후>에서 두번째 릴레이 강연 및 토크 모임을 엽니다. 4명의 강사가 자신만의 콘텐츠에 대해 이야기를 한 후, 질의응답을 하는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목마른 어른들의 배움터이자 놀이터의 숨은 무림고수들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 누구나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별도의 회비 대신 포트럭 파티 형식으로 진행된다고 하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bhgoo.com/2011/857184


3. 치유와 코칭 백일쓰기 39기 지원안내

함께성장인문학연구원 정예서 원장이 진행하는 <치유와 코칭 백일쓰기> 39기를 모집합니다. 2019년을 에게 던지는 100개의 질문으로 시작하여 자신의 지도를 완성하는 해로 기억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좋은 습관 하나가 큰 자산이 됨을 알고 있지만 습관 만들기가 어려우셨던 분, 나의 과거는 어떠했고, 현재 위치는 어디인지, 미래 비전은 어떻게 완성할 것인지에 이어 사회적 글쓰기까지, 자신의 신화를 완성하고자 하시는 분들의 참여 기다립니다:

http://www.bhgoo.com/2011/857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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