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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9일 01시 28분 등록
이상형이 누구냐고 물으면 ‘사연 많은 사람’이라 대답하곤 했습니다. 초등학생 이후로 줄곧 ‘사연’을 수집했고, 스스로를 ‘사연수집가’라 불렀습니다. 내밀한 사연일수록 좋았는데, 은밀한 사연일수록 ‘단둘이서’ 대화를 나누어야 했으므로 저는 이성이든 동성이든 ‘단짝’의 관계를 선호했습니다. 속 깊은 대화를 나누다보면 여럿이 함께 있을 때 알 수 없던 그 사람의 매력에 훅 빠지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감정은 ‘사랑’과는 결이 달랐는데,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사연’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면서 사연을 수집하는 일이 어려워졌습니다. 단 한 사람에게 시간을 내고 그 사람의 두 눈을 바라보며 그 사람의 사연에 마음의 한 귀퉁이를 내어주는 일을 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여러 사람과 적당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유의 대화에서는 기쁨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아무튼’ 시리즈를 만난 건 참으로 다행이었습니다. 일생에 걸쳐 무언가를 열렬히 사랑한 사람의 이야기에 빠져들었습니다. ‘아무튼 기타’를 쓴 저자 이기용을 만나기 위해 북콘서트에 참석했습니다. 금요일 밤 연희동 엔트러사이트에서 활자로만 보았던 그의 특별한 기타들을 실제로 만나보았습니다. 기타에 얽힌 사연을 들었습니다. 세상에 단 한 대뿐인 그만의 기타로 연주할 때는 기타와 저자가 한 몸이 되어, 뭐랄까 소울이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내가 깨달은 것은 기타를 치기 위해서는 기타를 몸으로 안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두께가 약 10센티미터의 헤드부터 바디 끝까지의 길이가 1미터가 넘는 기타를 치기 위해서는 기타의 바디 부분을 가슴에 밀착시키고 양팔을 벌려 기타를 안아야 했다. 병원과 학교를 오가며 힘들어하던 내게 기타를 안았을 때 물리적으로 느꼈던 안도감과 포근함은 분명히 위로가 됐다. 거기에 더해 나도 언젠가는 어릴 적 삼촌이 내게 들려주었던 소리를 낼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도 생겼다. 기타를 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나는 차츰 마음의 안정을 되찾게 되었다. 밤마다 나를 괴롭히던 호흡도 조금씩 진정되어갔다. 정신적으로 괴로운 나날을 보내던 내게 어쿠스틱 기타는 거의 유일한 안식이었던 것이다. (아무튼 기타, 19쪽)

‘아무튼 기타’ 북콘서트장에서 ‘아무튼 문구’를 샀습니다. 마음에 드는 문구(文句)를 옮깁니다.

문구인(文具人), 이 단어를 보는 순간 암실에 빛 한 줄기가 쨍 하고 들어와 온 방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마치 평생을 찾아 헤맨 단 하나의 단어를 먼 길을 돌고 돌아 이제야 조우한 느낌! 아아, 정말이지 나는 이 단어와 단숨에 사랑에 빠져버렸다.
문구를 너무나 사랑한다. 이상하리만큼 집착한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월급의 반 이상을 문구 구입에 탕진한 적도 있고, 문구점에서 하루를 꼬박 보낸 날들도 있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물건 중 8할은 문구류다. 필기구나 사무용품은 물론 문구점에서 파는 물건이라면 지류나 소품류까지 가리지 않고 모두 좋아한다. 말하자면 아가페적 사랑이랄까. (아무튼 문구, 8~9쪽)

미술평론가 박영택 교수님의 칼럼을 좋아합니다. 교수님의 칼럼을 읽으며 ‘아무튼 수집’을 떠올려봅니다.
[문화와 삶]수집, 자기 감각의 결정체

이상형이 누구냐고 물어보신다면, 이제는 ‘아무튼’ 무언가를 좋아하는 사람, 일생을 관통하는 자기만의 취향이 있는 사람이라 대답할 것 같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시나요? 당신의 ‘아무튼’은 무엇인가요?

*

명절에 시댁에 가지 않습니다 시리즈를 좋아하는 분만 초대합니다.
명절에 시댁에 가지 않습니다, 스물세 번째 이야기

김정은 (toniek@naver.com) 드림
IP *.224.128.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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