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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19일 06시 24분 등록


 

칠레로 교환학생을 같이 갔던 미국 학생 중에는 와인을 무척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줄리아(Julia)라는 이름의 친구는 20대 후반의 어린 나이였는데도 와인에 대한 식견이 뛰어난 와인 애호가 였습니다. 칠레를 가기 전에 알았던 줄리아는 철인삼종 경기, 즉 수영과 사이클, 마라톤을 즐기는 건장한 체격의 씩씩한 미국여자 였습니다. 과 휴게실 냉장고에 넣어둔 자신의 점심이 몇 번 사라지자 한번 더 훔쳐 먹으면 공개적으로 개망신을 주겠다. 이 쓰레기 같은 놈(scumbag)라며 전체 메일을 보낼 정도로 거침 없는 성격이기도 했지요. 저와는 외모부터 취미, 관심 영역 등이 전혀 달라서 친해질 일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거침 없는 성격이 살짝 부담스럽기도 해서 일부로라도 친해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람과 한 학기 동안 대부분의 수업을 같이 듣고 생활해야 한다니좀 걱정이 됐습니다.

 

산티아고에서 찾은 사촌  

아니나 다를까 우리는 산티아고에서 같이 간 학생들끼리 어울려 다니면서 저녁도 자주 먹었는데요. 그 때마다 줄리아는 나서서 와인을 고르고 주문했습니다. 포도의 품종 별로 맛과 향의 차이를 알고 음식에 맞게 와인을 고르는 그녀는 미국에서 알던 줄리아와는 좀 달라 보였습니다. 당시에 저는 빨간 것은 레드 와인이요, 노르스름 투명한 것은 화이트 와인정도 밖에 몰랐기에, 줄리아가 주문하는 대로 먹을 수 밖에 없었지요. 다른 아이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지 언제나 와인 선택은 줄리아의 몫이었습니다. 그녀의 일은 주문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와인이 나오면 맛을 확인하고, 테이스팅을 마친 후에는 자신만의 언어로 맛과 향을 표현하곤 했습니다. 시인의 나라에 오더니 시인이 된 걸까요? 그녀가 많이 달라 보이긴 했지만, 언제 또 거침 없는 성격이 나올까 두려워 여전히 친해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칠레에서 들었던 수업 중에는 칠레의 경제에 관한 수업도 있었습니다. 주요 산업인 구리와 와인을 배우며 현장학습을 가기로 했습니다. 예전에는 큰 탄광이었지만 지금은 관광객 체험용으로 바뀐 탄광을 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칠레에서 가장 큰 와이너리를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맞습니다. 바로 지난주에 말씀드렸던 악마의 와인, 디아블로(Casillero del Diablo)를 생산하는 콘차이 토로(Concha y Toro ) 와이너리 입니다. 가장 큰 와인답게 저렴한 비용에 관광객용 와이너리 투어를 즐길 수 있는 곳이었지요. 이때 줄리아가 반대를 했습니다. 아무나 갈 수 있는 1시간짜리 와이너리 투어가 아니라, 진짜로 와인 시음을 하고 와이너리를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와이너리를 방문하자는 거였습니다. 자신의 사촌이 산티아고 근교에서 와이너리를 하고 있다면서 말이지요. 그동안 칠레에 친척이 있다는 말을 안 했던지라 좀 놀랐는데요. 알고 보니 진짜 사촌이 아니라 자신의 엄마와 이름(family name)이 같은 사람이 운영하는 와이너리를 발견했던 거였습니다. 그런데 엄마의 엄마가 칠레 출신이라 친척일 수도 있을 거라며 연락을 했던 거지요. 다행히도 사촌(?)이 운영하는 와이너리의 방문이 성사되었고 우리는 규모는 작지만 특별한 와이너리를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도 처음보는 줄리아를 정말 사촌이라도 맞이하듯 반겨주었습니다. 사촌은 아니지만 실제로 먼 친척은 될 거라면서요. ^^ 덕분에 우리는 영화나 TV에서만 보던 와인 테이스팅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한 두 가지의 와인이 아니라 열 병쯤 되는 다양한 와인을 맛보는 것이지요. 많은 종류의 와인 테이스팅을 할 때는 테이블에 일반 와인 테이스팅에서는 볼 수 없는 물건이 하나 더 있습니다. 작은 스텐 양동이 같은 건데요. 저는 그런 자리가 처음이었던 지라 무엇에 쓰이는 물건인지 짐작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튼 와인을 받아서 천천히 마시고 있었는데요. 갑자기 옆 자리에 앉은 사람이 양동이에 와인을 뱉는 거였습니다. 놀랄 겨를도 없이 다른 사람들도 양동이에 와인을 뱉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양동이는 와인을 맛만 보고 뱉는 용도였습니다. 열 가지쯤 되는 와인을 모두 맛보면 취하겠지요. 술이 세서 안 취한다고 해도 뒤에 나오는 와인의 맛을 정확히 볼 수 없으니 맛을 정확히 느끼기 위해서 삼키지 않고 뱉어 버려야 합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사실 그리 아름답지는 않은 장면입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입에 들어 있던 음식을 뱉는 것이 내키지 않았기에 저는 그냥 다 마시기로 했습니다. “난 술이 세서 괜찮아. 난 한국 사람이잖아. 하하라고 변명하면서 말이지요.

와이너리_칠레.jpg

출처: https://www.lonelyplanet.com/argentina/mendoza/tours/7-day-mendoza-santiago-de-chile-wine-tour/a/pa-tou/v-3851P42/363014

 

몇 잔이나 마셨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시음하는 것마다 너무 맛있다고 떠들며 마셨던 것 같습니다. 저도 시인이라도 된 양 줄리아와 같이 맛과 향을 평가했던 것도 같습니다. 그러다가 차 안에서 눈을 떴던 것 같습니다. 머리가 아파서 다시 눈을 감았다가 떠보니 방안 침대 위였습니다. 누가 와인은 안 취한다고 했던가요. 원래도 술을 많이 못 마시는데, 더구나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 술을 마시다가 완전히 취했던 겁니다. 평소보다 말과 웃음이 많아진 걸 보고 제가 취한 걸 눈치챈 친구들이 차 안으로 데려갔다고 합니다. 집 근처에 도착해도 일어나지 않자 철인삼종으로 단련된 줄리아가 저를 업고 집까지 데려왔다고 하네요. 저의 몇 안 되는 필름이 끊긴 기억 중에 하나입니다.

 

졸업 후 결국 줄리아는 E&J Gallo라는 미국 최대 와인 생산업체에 취업했습니다. 경영대학원 졸업생이 와인회사에서 무슨 일을 할까 했는데, 줄리아의 업무는 해외 마케팅이었습니다. 와인회사에서도 당연히 마케팅을 할 사람은 필요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고 있으니 행복하겠지요. 학교를 떠난 뒤 연락을 하고 지내지는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그럴 겁니다. 생각난 김에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요즘은 SNS를 통해서 옛 친구를 찾는게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역시나 페이스북에서 한 단계를 건너니 바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직장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새크라멘토에 살고 있는 걸 보니 지금도 와인 업계에 있나 봅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됐지만 여전히 철인삼종을 즐기며 건강한 모습 그대로입니다. 아이들을 업고 안고 놀아주는 사진을 보니 진정 철인다워 보입니다. 역시 행복한 것 같습니다. 몰래 엿보는 짓은 그만두고 새해 인사라도 해야겠습니다.

 

다음주는 설입니다. 즐거운 명절 보내시고요. 저는 다음주 마음편지는 한 주 쉬고 2월에 다시 따뜻한 편지 띄우겠습니다.

이번주는 특별히 더 맛있는 한 주 보내세요~^^

 

 

--- 변경연에서 알립니다 ---

 

1. [출간소식] 『할 말을 라오스에 두고 왔어』 장재용 저.

변화경영연구소 8기 연구원 장재용 작가의 세번째 저서 『할 말을 라오스에 두고 왔어』가 출간되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누구나 한번쯤 갖는 의문이지만 답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방황하던 저자는 한국을 떠나 계획에 없던 라오스 행을 택하고 거기서 직장생활까지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펼쳐지는 낯설고도 신선한 일상들! 불안과 고민, 숱한 흔들림 속에서 만난 라오스의 황홀한 일상으로 초대합니다

http://www.bhgoo.com/2011/858426

 

2. [출간소식] 『습관의 완성』 이범용 저.

[SBS 스페셜]이 주목한 대한민국 습관멘토 이범용 작가의 『습관의 완성』 출간 소식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매번 좋은 습관 만들기를 시도하지만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는 의지 부족이 아닌 잘못된 습관 전략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500명이 넘는 참여자들이 직접 체험한 습관 실천 과정과 변화를 관찰하고 기록하며 보통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습관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고 하니 습관을 완성하고자 하는 분들의 일독을 권해드립니다

http://www.bhgoo.com/2011/858374

 

3. [모집] 경제/인문 공부! <에코라이후 기본과정> 8기 모집합니다

1인 지식기업 <에코라이후> 배움&놀이터의 주인장 차칸양 연구원이 2019년 진행된 <에코라이후 기본과정> 7기에 이어, 8기를 모집합니다. 실질적으로 경제와 더불어 경영 그리고 인문까지 함께 공부함으로써, 10개월이란 기간동안 경제, 경영, 인문의 균형점을 모색합니다. 경제공부를 토대로, 경영과 인문을 접목함으로써 스스로의 삶에 작지만, 그럼에도 크고 진솔하며 감동적인 변화를 원하시는 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http://www.bhgoo.com/2011/858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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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9 15:27:50 *.212.217.154

십년전쯤에

처음으로 찾았던

미션힐 와이너리가 생각나네요^^


와인을 뱃어내는 일을 없었지만,

생각만해도 유쾌하진 않을듯 합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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