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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11일 23시 33분 등록
말씀드렸던 대로 지난주에 나비앤파트너스 유재경 대표님을 만났습니다. 3시간에 걸친 커리어코칭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즈음 저는 완전 녹초가 되어 있었습니다. 최선을 다해 산 10년이었는데 막상 ‘그래서 뭐해서 먹고 살래?’ 하는 질문을 받으니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아픈 질문은 그녀의 존재 그 자체였습니다. 

과거의 삶에서 소진되어 새 삶을 찾기 위해 스승을 찾아온 것은 그녀나 저나 마찬가지였을텐데, 심신을 추스르고 새 일을 만들어 사회로 복귀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뭘까요? 물론 그 전에도 같은 질문을 받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그동안 제가 주로 하던 대답은 ‘일은 언제든 할 수 있지만 아이는 기다려주지 않으니까요. 적어도 10년은 아이들을 제 인생의 최우선 순위로 두고 싶어요. 아주 만족스럽구요.’ 거짓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100퍼센트 진실도 아니었던 것 역시 분명합니다. 연구원 과정을 마친 이후 정초면 어김없이 내 이야기를 담은 ‘책’을 내보겠다고 부산을 떨던 기억이 생생하니까요. 하지만 막상 쓰려고 자판 앞에 앉으면 머리가 하얘졌습니다. 그러면 ‘처음부터 진짜로 할 생각은 아니었어. 지금은 너무 바빠져도 곤란하잖아.’ 핑계를 대며 슬며시 좌판을 접곤 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속마음은 ‘지난 해 그렇게 열심히 준비했는데도 아직도 멀었구나.’였습니다. 

저는 그녀와 제가 출발점부터 다르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거죠. 이전 커리어를 살려 새 일의 기반으로 활용할 수 있었던 그녀와 달리 저는 완전히 제로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어떤 일을 하게 되는지도 모른 채 그저 평생 안정적으로 다닐 수 있다는 이유로 선택한 일터였으니, 적성이나 기질, 가치 등 진로결정을 위해 한번쯤은 점검해봤을 사항에 대한 이해도 전무한 상태였구요. 

아니 오히려 세상의 기준에 저를 억지로 맞춰 사느라 내적인 감각을 억압하던 것이 만성이 되어 정말로 원하는 게 뭔지 자신조차 알지 못하는 지경이었습니다. 그렇게 엉망으로 훼손된 센서를 복구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으니, 제로보다 훨씬 깊은 마이너스에서부터 출발한 셈이었습니다. 오래 방치된 가능성의 씨앗을 찾아내 세상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수준까지 키워내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았던 것이 연구원 과정을 시작하고 8개월쯤 지나던 시점이었습니다. 동기들이 이전 삶을 통해 이미 마련된 재료들을 어떻게 연결해서 세상에 나갈까를 고민하던 시기, 제 안에 쓸 만한 아무 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당혹스러움이란. 제게 주어진 옵션은 두 가지였습니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직장에 복귀해서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에 만족하면서 살 건지, 보장된 것은 아무 것도 없지만 가능성의 씨앗을 정성을 다해 가꿔볼 건지. 

전자를 선택하기엔 너무나 뜨거운 가슴을 가졌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당연히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10년을 기약했습니다. 한 분야의 전문성을 얻는데 필요한 시간이 1만시간이라고 한다면 휴일과 공휴일을 뺀 평일(연평균 250일)에 하루에 4시간씩 투자할 수 있다면 걸리는 시간이 딱 10년이었습니다. 무슨 일을 하며 살더라도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육아라면 제대로 해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빨간 날 다 쉬고 평일에 하루 4시간씩만 집중할 수 있다면 훨씬 여유로운 육아가 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갈 때까지 종일육아로 시간확보가 어렵다고 해도, 평균적으로 4시간 정도 시간을 확보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했습니다.) 

계획대로 되어 준다면 10년 후에는 새로운 전문성으로 본격적인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는 시나리오였습니다. 큰 아이가 16살, 작은 아이가 12살이니 되는 그때쯤엔 아이들에게 필요한 엄마 역할도 절대 시간이 필요한 물리적 돌봄에서 자기 삶에 충실한 본보기가 되는 것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니 그야말로 완벽한 타이밍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물론 모두가 남편이 성실히 자기 자리를 지켜준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플랜이었습니다. 조금 미안하기는 했지만, 대신 맘편히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충분히 배려하고 집에서 편히 쉴 수 있게 해주기로 했습니다. 이로써 한 인간으로서,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욕망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플랜이 탄생한 것이었습니다. 

10년이 흘렀습니다. 아이들은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습니다. 제가 잘 키워서라고 주장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이들이 스스로 가진 힘 덕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집에 있긴 했지만 저는 늘 아이보다 제가 먼저인 엄마였습니다. 제가 아이들을 위해 한 것이 있다면 그들의 힘을 믿으며, 저 자신의 삶에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 제가 아이들을 키우느라 제 경력을 희생했다고 한다면 그건 진실이 아닙니다. 

만약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계획했던 전문성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면 그건 순전히 제 책임입니다. 하지만 저처럼 아무런 기반도 없이 아이를 낳고 나서야 발견한 재능을 아이와 함께 길러 자신의 세계를 열 수 있게 되었다면 정말 괜찮은 모델이지 않습니까? ^^

다음 주엔 엄마로서의 역할을 싹 걷어내고 오로지 저 자신의 새로운 인생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해왔는지, 그리고 그것들을 어떻게 세상에 내놓으려고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

--- 변경연에서 알립니다 ---

1. [출간소식] 김글리 모험 에세이 '인생모험' 
그녀의 맵짠 글을 다시 볼 수 있어서 기쁩니다. 동태눈을 한 사람에겐 두 눈을 반짝거리게 하고 번아웃에 지친 삶을 길바닥에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사람에겐 빛나는 딴짓으로 인도하는 붉은 책이 드디어 나왔습니다. 출간 과정 또한 신선해서 일반 독자들의 펀딩이 진가를 확인하게 했습니다. 이대로 살아도 괜찮을 걸까? 5개의 질문과 20년의 방황, 마침내 찾아내고야 만 진정한 나.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김글리 연구원의 진짜 나를 만나는 특별한 여정으로 초대합니다. 


2. [모집] 1인회사연구소 8기 연구원 모집
1인회사 연구소 & 유로 에니어그램 연구소 수희향 대표가 <1인회사 연구소 8기 연구원>을 모집합니다. 지난 7년간 연구소를 운영한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실질적인 프로그램으로 거듭난 <8기 연구원 과정>은 자신의 뿌리 기질을 찾아 1인 지식기업가로의 전환을 모색합니다. 콘텐츠 생산자가 되기 위한 책읽기를 마스터하여 진짜 1인 지식기업가로 전환을 이루고자 하시는 분들의 참여 기다립니다. book@bookcinema.net 으로 프로그램 참여 및 문의 주시기 바랍니다: http://www.bhgoo.com/2011/858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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