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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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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4일 09시 45분 등록

니체가 월급쟁이에게


먼 우주의 변방에 은하가 있고 은하의 변방에 다시 태양이 있고 태양의 변방에 있는 둥그런 지구에 너는 산다. 얼마나 살지 모르지만 너는 산다. 사는 동안 특별하고자 노력했으나 특별하진 않았고 그저 평범한 월급쟁이로 살고 있다. 이뤄냈다 라고도 할 수 없는 작고 변변찮은 성취들은 삶의 곳곳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한다. 밥과 꿈 사이, 굴종과 해방, 억압과 자유 사이를 늘 떠돌고 그것들의 중간 어디쯤 편안한 자리, 사납지 않은 곳,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지점 어딘가에 거처를 두고 삶이 거칠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산다. 인간은 보통 70에서 80살 언저리를 살다 간다면 그래서 너에게도 큰 변수가 생기지 않는다면 30년 또는 40년을 조금 더 살다 죽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는가, 마흔도 일찌감치 지나갔고 나이 먹어 돌아보니 지나간 삶은 움켜쥔 손의 바람처럼 빠져나가고 없다. 아마 남은 삶도 그러할 것이다. 너는 딱 반이 지났다. 인생 반 고비에 이르러 생각건대 약간의 사회적 책임과 가족을 건사해야 하는 일종의 남성적 또는 여성적 의무로 무장되어 있어서 이제껏 살아왔던 삶의 관성이 지속될 터, 획기적인 새로운 삶으로의 전환은 어려울 것이다. 나만은 특별한 삶을 누릴 거라 생각하고 사는 동안 약간의 몸부림을 치겠지만 네 과거와 삶의 고비마다 보여왔던 배포로 미루어보건대 삶을 통째로 바꾸어버리는 일은 쉽진 않겠다. 그렇게 살다가 마침내 아무도 용서하지 않겠다는 뾰로퉁한 얼굴로 관 속에 처박힐 테지.


그렇지 않던가, 삶은 후회라는 것을 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그저 사는 것이다. 투쟁하는 전사도 항거하는 열사도 평범했던 회사원도 돈 못 벌어 환장하는 사장님도 늘 후회라는 걸 달고 살겠지만 사람이 살고 죽는 곳에서 후회를 해 본들 죽은 삶이 살아나고 살아있는 삶이 죽게 되더냐. 당당하지 않을 이유가 없고 늘 당당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리하여 사는 대로 살지 않을 이유가 없고 주어진 대로 살아야 할 이유도 없는 법이다. 어려운 역설이겠거니 여길 테지만 생각해 보아라, 태어났을 때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삶이니, 죽기 위해 살아야 하는 역설이 역설 중에 역설이다. 이보다 더한 역설은 세상에 없다. 그러나,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너는 너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인간과 인간 사이, 네가 속한 집단들 사이, 의무와 책임의 사이, 관계와 인연의 사이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너를 너는 언젠가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에 나는 사로잡힌다. 너의 원형. 잡혀지지 않고 짐작할 수 없고 대면할 수도 없지만 끊임 없이 네 자신과 대화하기를 멈추지 않는 너의 원형 말이다.


네 자신은 너를 기다리고 있지만 너는 네 자신을 만날 수 있는 조건이 되지 않았을 뿐, 너를 기다리고 있는 너의 원형을 너는 언젠가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아마도 그것은 네가 위험해질 때, 그러니까 더 이상 밥, 굴종, 억압 같은 것들을 위해 네 삶을 허비하는 봉사를 중단할 때, 사회적 책임과 여성적 또는 남성적 의무에서 벗어날 때, ‘임을 비로소 포기할 때 만날 수 있다. 너를 에워싼 가면에서 툭하고 떨어져 나온 네 자신을 온전히 대면할 수 있을 때, 두려움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용기를 가질 때 마침내 너는 너를 기다려온 너와 함께 황금 식탁에서 마주할 수 있을지 모른다. 단 한 순간도 허송하지 않고 너는 네 자신을 기다려야 한다. 기다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랑은 창조하는 것이다. 이 사회를 사랑하는 것은 네가 사랑할 수 있는 사회 하나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를 사랑하는 일은 내 스스로 보기에 근사한 나를 창조하는 것이다. 나를 창조한다는 말은 내가 기꺼이 사랑할 수 있는 대상으로 나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네가 너 자신을 사랑할 수 있으려면 너를 네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 지금 너는 네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너는 어떻게 너를 만들어야 가야 하는가? 닿을 수 없는 아름다운 나를 상정해라. 만들어진 결과의 나가 아니라 만들어가는 과정이 창조하는 일이자 네 스스로를 사랑하는 일이다.


네가 자랑스러워 하는 너는 도대체 누구여야 하는가? 그것은 조그만 성취의 누적으로 만들어질까? 인격의 완성을 위해 매일을 도야에 매달려야 할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자유를 위해 지금을 헌납해야 할까? 그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나는 내적 가치가 세워진 의젓한 인간일까? 돈을 많이 버는 인간일까? 스스로 답하여라. 내가 나를 혐오하는 지금에서 사랑하는 나로 옮아가기 위해 네가 해야 할 당장의 일들은 무엇인가? 상상해라. 생각하면 통쾌한 장면 하나를 상상해라. 그 장면은 네가 스스로 상상하고 창조한 그대일 테니 그 장면을 위해 사는 것, 가꾸어 가는 것,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나는 나를 기다린다는 의미의 진위다. 나를 끊임없이 나로 만들어 가는 것, 두려워하지 마라. ‘는 이미 너 안에 있다.


참고한 책)

- '서광’, ‘선악의 저편’,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도덕의 계보’, ‘이 사람을 보라이상 니체 지음.

- ‘다이너마이트 니체고병권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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