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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9일 00시 16분 등록

강남순 제4강 <21세기 페미니즘 : 코즈모폴리턴 페미니즘과 평등세계를 향한 나/우리의 과제>


지난 주 월요일 마음편지에 이어 강남순 교수의 페미니즘 제 4강의 강의록을 띄웁니다. 


강남순의 <페미니즘 앞에 선 그대에게 : 페미니즘에 관한 7가지 질문>(한길사)이 지난 2월 20일에 출간되었습니다. 강의록보다 자세한 내용은 이 책을 보시면 됩니다. 이 강의록이 시대의 흐름속에서 자신을 찾으려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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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강. 21세기 페미니즘: 코즈모폴리턴 페미니즘과 평등 세계를 향한 나/우리의 과제> 

일자 : 2020년 2월 22일 (토) 

장소 : 페미니즘 멀티 카페 ‘두잉’

강연자 : 강남순 교수 


나는 몇 개의 ‘결’(layer)을 가졌습니까? 


나는 교사이다. 

나는 여교사이다. 

나는 아시안 페미니스트 신학자이다. 


그냥 교사이면 충분한 것을 여교사라고 호칭하고, 아시안이라고 호칭하고, 페미니스트라고 호칭하는 것인 사회적 주변부라는 의미합니다. 중심부 사람은 필요 없는 사회적 표시를 주변부 사람들은 붙입니다. 특수한 정황에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사회적 표시이며, 이런 사회적 표시가 붙으면 붙을수록 주변부 사람입니다. 사회적 표시가 없을 때 헤게모니가 유지됩니다.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이다’는 문장은 누가 주장하는가에 따라 기능이 다릅니다. 인간을 존중하는 것이 휴머니즘이지만 이런 주장을 ‘누가 주장하느냐?’, ‘누구에게 기능하느냐?’를 질문해야 합니다. 


서구문명의 2가지 근본은 아리스토텔레스와 기독교입니다. 이제 서구는 무소부재합니다. 여기까지가 서구이고 여기서부터는 서구가 아니라고 선을 그을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아시아적인 것은 유교주의라는 주장이 있습니다만, 이런 시각은 유교낭만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대단히 높습니다) 


성서 이야기는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서구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젝은 ‘미국 시민을 제외한 전 세계인이 미국 대통령 투표권을 가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미국 정치가 세계에 주는 영향력은 막대합니다. 이런 미국에서 대통령 선서를 할 때 성서에 손을 얹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인구는 세계인구의 30%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지금의 기독교는 사람을 비성찰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모든 질문에 ‘기도하라’는 대답만 합니다. 전세계 10대 메가처치 중에서 5개가 한국에 있습니다. 서울에 있는 아주 유명한 초대형 교회에 외국인 친구와 가본 적이 있습니다. 어느 사장님의 간증이 있었습니다. ‘제가 기도 중에 하나님 음성을 들었습니다. 마르크화를 사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회사에 가서 지금 당장 모든 회사 돈을 들여서 마르크화를 사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큰 이익을 거뒀습니다!’ 라고 간증하자 교회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할렐루야!’를 외쳤습니다. 외국인 친구에게 통역을 해주다가 한마디로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친구와 함께 교회를 빠져나왔습니다. 돈을 벌게 해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게 한국 메가처치의 현주소입니다. 


최근 신천지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클럽에 가입하여 구원티켓을 확보하라’는 수사학(rhetoric)인데, 대형교회는 교단에 상관없이 맹목적인 모습이 모두 비슷합니다. 나는 없고 누군가 끌어주는 데로 사는 삶을 살아갑니다. 


칸트는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을 책으로 냈습니다. 칸트에 따르면 계몽이란 타인에 의존하는 미성년 상태에서 벗어나 스스로 지성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쉽게 말해 감히 스스로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생물학적 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다른 성을 가진 이들이 페미니즘에 연대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또한 많은 여성들이 페미니즘을 반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은 본질(essence)이 아니라 입장(political position)입니다. 당사자 성이 없다면 그 문제에 개입할 수 없습니까? 비장애인은 장애인 이슈에 개입할 수 없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데리다는 언급에 대한 범죄를 이야기했습니다. 데리다에 따르면, 동물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것은 이 세상 수많은 생물들을 단 한 개의 단어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범죄입니다. 그러나 동물을 동물이라고 하지 않고 달리 표현할 방법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동물에 따옴표(quotation marks)를 불여서 ‘동물’이라고 표현하면서 ‘동물’이라고 흔히 표현하는 .. 정도로 이야기하는 것이 그나마 범죄를 완화시킵니다. 요컨대 따옴표(quotation marks)를 붙이는 것은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그것에 관해 그것이 가진 문제점을 문제제기 한다는 의미입니다. 


페미니즘은 세상 모든 개념에 따옴표를 붙이는 것입니다. 연민을 compassion이라고 합니다. com-passion은 with-suffer, ‘함께 고통 받다’는 뜻입니다. 함께 고통을 받으면서 질문합니다. 왜 저들은 고통 받은 그곳에 있는가? 사회구조를 고민합니다. 그러나 따옴표를 붙이지 않으면 윤리적 위계주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어쨌거나 윤리적으로 우월합니다. 거지에게 1달러를 주는 것과 같습니다. 


코즈모폴리터니즘은 인간의 두 가지 소속을 이야기 합니다. 

1. 자신이 태어난 나라와 사회

2. 태양 아래 인류 공동체


그러므로 코즈모폴리터니즘은 미지정황과 거시정황의 상호연관성을 강조하고, 한 개인의 특수한 상황이나 배경이 어떠하든 모든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가졌다고 보는 사상입니다. 


코즈모폴리터니즘과 보편주의(universalism)은 서로 다릅니다. 코즈모폴리터니즘은 개별성의 윤리(ethics of singularity)에서 출발합니다. 개별자들은 대체불가능하며 반복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보편주의는 개별인들의 정황이 아닌 ‘인간-일반’이라는 추상적 개념에서 출발합니다. 보편주의는 횡포를 부립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누구나 다 죽는다’라고 말하는 게 일종의 보편주의 횡포입니다. 


사회정치적 차별에 쓰이는 모토는 ‘평등하지만 다르다’(equality but difference)입니다. 이때 사용하는 ‘다르다’(difference)는 ‘차별’(discrimination)의 근거가 됩니다. 가톨릭에서 여성사제를 인정하지 않는 논리이기도 합니다. 1976년 교황청은 여성 사제직을 인정하지 않는 입장으로 ‘자연적 유사성’(natural resemblance)를 이야기했습니다. 예수는 남성이었다는 겁니다. 그러나 유사성은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인종적 유사성, 연령적 유사성, 성별적 유사성입니다. 이 모든 조건을 갖추려면 서른 전후의 유태인 남성만이 사제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보편주의는 사람을 기능적으로만 보면서 개별성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코즈모폴리터니즘은 ‘우리는 누구나 하느님의 자녀’라는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global)와 지방(local)을 구별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세계와 지역을 함께 보는 세방화 또는 글로컬리제이션(glocalization = globalization +localization)이라는 합성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때는 전 세계적으로 생각하고 현지에서 행동하라고 했습니다. (Think globally, act locally) 그러나 저는 생각도 행동도 모두 세계와 지방을 모두 아울러야 한다고 봅니다. (Think glocally, act glocally) 


예수는 종교에 관해 이야기 하지 않고 최후의 심판을 이야기 했습니다. (마태오복음 25장 31절-456절) 

1.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2.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3.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4.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5.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6.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요즘 한국 교회들은 ‘Jesus is the answer'이라는 문구를 강조하던데, 이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answer이라고 하지만 무엇이 질문인지 말하지 않습니다. 


신천지 같은 구원클럽에 가입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예수가 말한 여섯 가지를 실천하는 게 영생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이 시대의 기독교는 예수 초기 공동체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최후의 심판에서 이야기하는 굶주님의 21세기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감옥에 갇혔다는 의미도 21세기 적으로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열등감에 사로잡히거나 차별을 받는 것도 일종의 감옥에 갇힌 것입니다. 


데리다는 ‘종교란 책임성이며 그렇지 않다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나 사랑 - 타자 사장 - 원수 사랑 - 신 사랑’ 


한나 아렌트는 ‘나를 사랑하지 못하면 타자 사랑도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나 사랑’은 무엇인가요? 아무것도 자명한 것은 없습니다. 질문은 대답보다 훨씬 심오합니다. 데리다는 ‘종교는 불가능성에 대한 열정이다’고 했습니다. 다시 한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나 사랑 - 타자 사장 - 원수 사랑 - 신 사랑’


현실세계의 ‘나’와 아직 오지 않은 세계의 ‘나’가 있습니다. 아직 오지 않은 ‘나’를 꿈꾸고 행동하십시오. 낮꿈을 꾸십시오. 성 어거스틴이 ‘나는 나 자신에게 질문이 되었다’(I have become a question to myself)라고 한 것처럼 내 자신과 대화하십시오. 


코즈모폴리턴 페미니즘은 얼굴 하나 하나에서 시작합니다. 레비나스는 타자에 대한 무한한 책임성을 강조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대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대의는 누가 결정합니까? 거대담론은 폭력성을 띕니다. 이제 포스트모던은 억눌린 자들의 외침입니다. 육체적 운동처럼 지적 운동도 매우 중요합니다. 


알랭 바우디의 ‘사랑 예찬’을 추천합니다. 사랑에 관한 35개의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관계의 정원을 만들어라. 공동의 언어를 만들어라. 뭐 이런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평등사회를 위한 5가지 과제로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책 pp285-295 참조)


1. 침묵하지 말고 문제제기를 하자. 

- 영국 해리왕자와 결혼한 메건 마클은 11살 때, TV 식기세척제 광고에 문제제기를 했습니다. ‘미국의 모든 여성은 기름 낀 냄비와 프라이펜과 전쟁을 한다’는 카피가 ‘설거지는 여성의 일’이라는 생각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모든 여성’을 ‘모든 사람’으로 바꿔야 한다는 편지를 썼습니다. 한 달 뒤 카피를 바꿨습니다. 

- 2019년 부산사직여중은 성차별적 교훈과 교가를 바꿨습니다. ‘슬기롭고 알뜰한 참여성’이란 문구는 ‘현모양처’가 초점을 맞춘 것이므로 ‘슬기롭고 따뜻한 참사람’으로 수정했습니다. 

물론 아쉬움이 남습니다. 만일 남자중학교였으면 슬기와 따뜻함을 강조했을까요? 남성을 이성에, 여성을 감성에 결부시키는 가부장적 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했지만 그래도 변화를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2. 혐오와 차별의 문제는 피해 당사자만이 아닌 ‘모두의 문제’라고 생각하자. 데리다는 ‘무관심은 인류에 대한 범죄의 시작이다’고 했습니다. 


3. 다양한 형태의 차별과 혐오에 저항하는 운동에 연대하자. 자신의 이득과 권력을 확장하기 위한 운동이 아니라 보다 나은 사회가 되기 위한, 차별과 혐오를 개선하기 위한 운동에 참여해야 합니다. 소수와 함께 하는 연대에서 인류 역사의 모든 발전들이 시작됐습니다. 


4. 자기 자신의 인식론적 사각지대를 마주하는 성찰적 용기를 키우자.우리는 모두 인식론적 사각지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인지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성찰하고, 성찰한 결과를 인정하고, 바꿀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자동적으로 되지 않습니다. 지속적인 학습과 인식론적 겸허성과 연습이 필요합니다. 


5. 혐오를 조장하고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모든 것(잡지, 비디오, 영화, 음악, 행위 등)에 ‘페미니스트 보이콧’ 하자. 


사실 인류의 지성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긴 사람들은 양면성을 지녔습니다. 어거스틴은 여성혐오주의자였고 칸트는 인종차별주의자 이었습니다. 루터가 말한 만인사제주의에서 ‘만인’에 여성은 없었습니다. 인류에 남겨진 위대한 사상에 머물지 말고 더욱 급진적으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뿌리로 들어가 누가 포함되고 배제되는지를 보다 분명하게 봐야 합니다. (root question) 단순하게 보지 말고 복잡하게 보아야 합니다. (complexify)


강의를 마칩니다. 


Q. 데리다에 관한 책을 추천해 주십시오. 

A. 한국에 나온 데리다 책을 몇 권 보았는데 제 마음에 흡족한 책이 없었습니다. 유튜브에 ‘강남순 데리다’ 검색하면 제 강의 4편이 나옵니다. 일단 그것을 보시고 추후 제가 데라다에 관한 책을 낼 예정이니 그것을 보십시오. 


유형선 드림 (morningstar.yo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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