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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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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11일 11시 04분 등록

내가 묻고 한나 아렌트가 답한다.


질문: 월급쟁이에게 자유란 무엇인가?


노예제 사회에서 노예의 삶은 너는 노예다라는 사실을 매일 입증해준다. 때문에 노예의 존재는 의심할 여지 없이 실존했다. 지금은 그때와는 다르다.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가 노예인지 주인인지 기억하고 알아차리기가 더욱 어렵게 되었다. 문제는 여기에서 출발한다. 자신이 예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고서는 인간은 자유로워질 수 없다. ‘월급쟁이에게 자유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그러므로 나는 노예인가? 주인인가? 를 따져 묻는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노예로의 전락은 운명이며, 죽음보다 못한 운명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을 길들여진 동물과 비슷한 존재로 변형시키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노예가 갖지 못하는 두 가지 자질이 있다. 첫째, 노예는 스스로 숙고해서 결정하는 능력이 없다. 둘째, 노예는 앞날을 예견하며 선택하는 능력이 없다. 당시 가난한 자유인은 먹고 사는 일이 불안정하더라도 정규적인 일보다 비정규적인 일을 선호했다. 왜냐하면 정규적으로 보장된 일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제한하는 까닭에 이미 노예적인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자유인은 가혹하고 고통스런 노동을 가내노예들의 안일한 생활보다 선호했다. 이와 같다면 외로움, 불안은 자유의 조건이다. 집단에 속한 소속감으로 외로움은 사라진다. 소비로 인해 얻어진 소유가 불안을 줄여 준다. 그대신 자유로부터 멀어진다. 자신의 생각을 지우면 편안하다. 집단의 생각을 자기 생각인양 할 수 있어서다. 굳이 힘들게 자신의 생각을 쥐어짤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내 감정, 나의 사유, 나의 취향은 사라진다.



자유는 힘들고 외롭고 불안한 것이다. 내 생각을 지우고 집단의 생각에 가까워진 만큼 자유는 멀어진다. 멀어진 자유는 인간을 굴종하게 만든다. 이 세상은 한 인간을 굴종하게 만드는 다양한 방식을 작동시키고 있다. 매일, 곳곳에. 내 결정이 나로 비롯된 것이 아닐 때 나를 둘러싼 것들은 굴종이 된다. 굴종은 약탈적이고 몰염치한 지배집단을 양성한다. 시시한 양심으로 무장한 주눅든 피지배집단을 마찬가지로 양산하는 것이 굴종이다. 그것은 야만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나누고 구분하고 차별하고 억압한다. 야만이 일상화 되는 것이다. 그곳이 여기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인류를 위험에 빠뜨렸던 전체주의는 어느 날 갑작스럽게 찾아오지 않았다. 모든 개인이 집단의 취향에 동조하며 생겨난 불운이다. ‘전체주의적 과정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인간이 필요 없는 유토피아를 건설하겠다는 목표 아래 궁극적으로는 인간을 쓸모 없게 만드는 모던적 태도다. 유토피아는 천상의 논리다. 천상의 것을 사랑하기 위해 지상의 것을 경멸해선 안 되는 것이다.


굴종, 억압, 속박에서 벗어나는 일은 가장 낮은 단계의 자유다. 자신을 훼손시키지 않기 위해 세상의 가치를 차단하는 것이 그 다음이다. 가장 높은 수준의 자유는 내가 스스로 마련한 가치로 나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자유란, 경제적 자유를 운운하며 부가적으로 얻어지는 천박하고 사소한 행복(이라 여겨지는)의 잔여 파장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주종을 뒤바뀌게 만들어 소소한 행복을 위해 경제적 자유를 성취해야 하는 것처럼 여겨져 자유를 곡해한다. 자유는 오로지 내적 발심에서 출발한다. 외부의 어떤 요인도 자유라는 것에 영향을 주어선 안 된다. 자유는 자신으로부터 출발하여 자신에게 이르는 거대한 여정이다. 여정 속에 자유는 스스로 말미암아 생겨난다. 자유로운 자들은 누구인가?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극복의 기술을 습득한 자들이며, 새로운 삶으로 탄생하는 데 성공한 인물들이다.’


어제 어질러 놓은 것을 매일 다시 정돈하기 위해서 필요한 인내는 용기가 아니다. 그리고 이 노력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이 아니라 늘 반복해야 한다는 지겨움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우리는 생산적 노예와 비생산적 자유 사이에서 대안을 찾아야 하는 매우 고통스런 처지에 놓여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우리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일해야 한다. 이것이 근대 사회가 내린 판결문이다. 그러나 어떤 누구도 지금껏 살았고 현재 살고 있으며 앞으로 살게 될 다른 누구와 동일하지 않다는 방식으로만 우리 인간은 동일하다. 월급쟁이에게 자유는 나는 다른 누구와도 같지 않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그때, 외로움에 걸려 넘어지지 마라. 홀로 있다는 것은 자기 자신과 함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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