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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 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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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12일 03시 25분 등록

눈을 뜬다. 베개 위를 더듬거려 휴대폰을 확인한다. 58, 알람이 울리기 12분전. 뭔지 모를 뿌듯함이 밀려온다. 조금 더 이불의 포근함을 즐길 수 있겠구나. 블로그 앱을 켜고 어제 올려놓은 포스팅의 댓글을 확인한다. 너나 할 것 없이 정신없이 바쁜 세상에서 내 이야기에 귀기울여주는 존재들에 대한 고마움에 마음을 다해 답글을 달다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상체를 반쯤 일으켜 세운 상태가 되어있다. 일어나기 딱 좋은 자세다.

 

이불을 개서 장에 넣어놓고 바로 욕실로. 본격적인 하루 일과의 시작이다. 썬크림에 간단한 피부톤 정돈까지. 언제든 나갈 수 있는 상태로 단장을 마치고, 깨끗한 요가복을 꺼내 입는다. 몸을 닦은 수건으로 욕실과 화장대의 거울을 닦아내고 나면 마음까지 반짝반짝 빛나는 듯한 느낌이다. 빛나야 할 것들을 빛나도록 돕는 일은 늘 나 자신을 먼저 싱그럽게 한다.      

 

일상.JPG



온 집안의 창문을 열고 내 방으로 돌아와 책상에 앉는다. 노트북을 켜고 마치 바디스캔 명상을 하듯 천직수련, 몸챙김, 마음챙김, 가족사랑, 가사 등 일상의 각 영역을 하나씩 훑으며 내 안에서 올라오는 느낌과 생각들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혼자 쓰는 노트북 안의 파일에 굳이 비번을 걸어놓은 것은 비번 자판을 치는 동안 습관적인 검열시스템을 무장해제하라는 주술이다. 오늘 분을 쓰기 바빠 이전 내용을 읽어보거나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쓴 날과 안 쓴 날간의 삶의 감도 차가 너무나 분명해 웬만하면 거르지 않는다. 이 과정을 통해 얻은 통찰은 고스란히 삶이 된다.

 

7시 즈음부터는 살림명상이다. ‘아난다의 기쁨공방자수가 세겨진 앞치마를 두르고 고무장갑을 끼면 준비완료.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 전에 세탁기를 돌려놓으면 설거지가 끝날 즈음 세탁이 끝나 있다. 탈탈 털어 건조대에 걸어두면 나머지는 햇살과 바람과 시간의 몫이다. 빨래는 우주가 나의 조력자임을 조용히 일깨워 준다. 잘 마른 빨래는 '걱정마, 내가 도와줄테니까'하는 우주의 다정한 메시지가 담긴 단정한 손편지같다. 

 

공간정리는 또 다른 기쁨이다. 특히 ‘13비움프로젝트를 시작한 이후 정리는 노동이 아니라 놀이가 되었다. 다 쓴 화장품 용기부터 지난 3년간 한 번도 입지 않은 옷가지까지 집안 구석구석에서 인연이 다한 물건들을 찾아내어 인증샷을 찍고 재활용 수거함에 넣은 게임. 블로그에서 모인 동료들과 함께 으샤으샤 응원하고 격려하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그렇게 공간과의 교감이 조금씩 더 깊어만 간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작은 변화가 쌓여곱고 우아한 잔근육으로 삶의 곳곳에 자리잡아간다.  

 

이 모든 일을 다 끝내도 겨우 9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 블로그 포스팅을 하는 시간이다. 블로그에 매일 글을 올리기 시작한 것은 3개월 전이었다. 블로그계의 정설처럼 회자되는 11포스팅은 남의 얘기인 줄만 알았다. 누군지도 모를 사람이 읽을 글을 쓰기 위해 낭비할 시간도 에너지도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던 내가 벌써 3개월째 11포스팅을 지속하고 있다. 심지어는 하루에 두세 꼭지의 글을 올리기도 한다. 물론 모두 새 글은 아니다. 연구원 현역 때부터 지난 10년간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글이 대부분이다.

 

여기서 재미의 포인트가 밝혀진다. 옛글을 나누는 작업을 하면서는 글쓰는 사람이 아니라 독자이자 편집자로 글을 대하게 된다. 바로 이게 그동안 귀가 닳도록 들었지만 도무지 어찌해야할지 감이 안 오던 바로 그 객관적 시점이었나 보다. 그걸 확보해선지, 규칙적인 포스팅 덕분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꾸준히 찾아주시는 분들이 생겼다


드디어 내 글을 매개로 연결된 관계가 시작된 것이다.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어쩌면 나는 그 분들과 사랑을 시작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읽고 쓰고 나누는 에너지를 가진 이를 작가라고 부른다면 나는 작가로 살고, 아니 작가로 죽고 싶은 것이 틀림없다. ‘나로 살아가는 기쁨을 나누는 작가라니! 이게 지금 여기에 있는 나의 현실이라니! 정말 꿈만 같다.

 

꿈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쓴 글을 나누고, 책을 읽고, 마음을 끄는 배움들에 참여하는 등 하고 싶은 일들로 분주한 시간을 보내다 보면 문득 해묵은 물음표들이 밀려온다. ‘난 왜 늘 이렇게 미친 듯 열심히 살고 있는 걸까? 결국 24시간을 쉴틈 없이 종종거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모든 선택들 하나하나가 전부 꿈을 이루는 조각들이라지만, 아무리 좋은 것도 과하면 독이 된다. 몸은 정직하다. 도를 넘기면 어김없이 더 이상은 안 돼!’ 신호를 보낸다. 이전과 분명히 달라진 것 하나는 신호를 받으면 망설임없이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밖으로 나간다는 것이다. 

 

요가는 내게 휴식의 다른 이름이다. 매트 위에서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습관처럼 저기 먼 미래로 내달리는 마음이 멋적은 듯 다시 몸으로 돌아온다. 의식이 제 자리를 찾으면 몸과 마음의 틈으로 쉴 새 없이 빠져나가던 에너지가 차오르기 시작한다. 자연에서의 요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피로감이 느껴지면 매트를 메고 무작정 자연으로 나가곤 한다.

 

매트의 적당한 무게감을 느끼며 걷는 것만으로도 이미 훌륭한데, 오늘처럼 운이 좋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호젓한 풀밭이라도 발견하는 날엔 그야말로 대박이 아닐 수 없다. 매트를 깔고 오로지 몸의 안내에 따라 움직이다 보면 말할 수 없는 환희가 온 몸으로 퍼져나간다. 바로 이 순간, 여기가 아니면 재현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고유하고 유일한 희열의 무늬가 경이롭기만 하다.  


모든 아사나가 끝나고 맞이하는 완전한 이완의 맛은 또 어떻고! 솜털 구름 위에 누워 하늘을 떠다니는 듯한 평화로움의 끝자락에 맺히는 언어 아닌 언어의 메시지. 치열한 활주도 비행의 일부란다. 아하! 이러니 어찌 설레지 않을 수 있을까? 자연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깨달음의 씨앗을 내 몸에 숨겨놓은 걸까? 



날개.JPG



숲에서 돌아오니 이쁜 아가야들이 나를 맞는다. 바로 이 순간의 충만함으로 음식을 하면 그게 바로 소울푸드 일거야! 아이들에게 엄마표 소울푸드를 먹일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지. 어느새 열여섯, 열두 살. 녀석들을 품에 끼고 살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생각하니 음식을 준비하는 손놀림에 정성이 실린다


! 멈추어라! 순간이여! 여기서 무엇을 더 바란단 말인가?


누군가는 묻고 싶을 수도 있다.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일상을 갖고 무슨 그리 호들갑이냐고?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싶다더니 그건 어떻게 할 거냐고? 그러게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걸로 충분하다. 도무지 걱정이 안 된다.

 

 

나는 그녀의 행동거지에서 우러나는 확신과 자부심이 거의 대부분

그녀의 분명한 전체성과의 동일시에 근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전체성은

아이 , , 작은 가축 , 농장 ,

그리고 무시할 수 없는 나머지 요소인 그녀의 매력적인 몸매 로 이루어져 있었다.


카를 융의 <기억 꿈 사상>

 

이 원인을 알 수 없는 평화로움은 융이 아프리카에서 발견했다던 아름다운 전체성의 현대적 구현, 그러니까 10년 전에 스스로 삶의 의미임을 직감했던 바로 그 궤도 안으로 진입했다는 신호인지도 모르겠다고 조심스레 짐작할 뿐이다.

 

 

이전글 : 하고 싶은 대로 하면 그게 네 길일 것이니

블로그 : 내 삶에 변화가 찾아올 때

※ 이미지 출처 : http://www.lupiart.com



--- 변경연에서 알립니다 ---

 

1. [출간소식『어느날 갑자기 가해자 엄마가 되었습니다』 정승훈 저

2015중학교 3학년 아들이 학교폭력 가해자로 지목되면서 소년재판까지 받았던 경험을 계기로 상담사로 활동하게 된 저자 정승훈의 수기입니다학교폭력 가해자 부모가 쓴 이 책은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특수폭행(집단폭행가해자가 되고아이와 함께 학교폭력위원회경찰서검찰청법원까지 거치며 겪은 경험과 그 이후 학교폭력 상담사로서 학교폭력 당사자와 그 부모들과 상담을 하면서 깨달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학교폭력 피해자들과 목격자들을 위한 정보도 자세히 담고 있습니다

http://www.bhgoo.com/2011/859878#6

 

2. [모집치유와 코칭 백일쓰기 41기 지원 안내

함께 성장인문학연구원 정예서 원장이 <치유와 코칭의 백일쓰기 41기를 모집합니다‘나’ 를 글로 쓰기나를 향한 백 개의 질문나아가 책쓰기를 통해 나를 찾아 가는 치유와 코칭의 백일쓰기로 ‘나의 신화 완성하기’ 과정입니다삶을 전망하는 방향성이 선명해집니다혼자 습관 만들기가 어려운 분이나 한 가지 일을 시작해 마무리 짓지 못하던 분글쓰기를 통해 꿈을 키우는 여정에 함께 갈 분들의 도전 기다립니다:

http://www.bhgoo.com/2011/859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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