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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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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26일 19시 11분 등록

스피노자가 보우하는 월급쟁이

 

부인하고 싶지만, 월급쟁이 삶 전체를 놓고 버드 뷰로 보면 그저 일하다 늙어가는 삶의 양태일 뿐이다. 그런 중에 더러는 까닭 모를 의지도 끓어오르고 가끔 행복을 느끼기도 하지만, 더 많게는 이룬 게 없다는 자괴감과 일상의 지루함에 벗어나려 안달하는 날들이 전부다. 꼬박꼬박 출근해서 어렵사리 받는 월급으로 인생의 팔 할을 견딘 삶의 나이테, 그 안에 가 있었냐고 물어보면 무참해진다. 생각건대 는 기백 번을 받았던 월급에도 없었고 그렇다고 무시로 나누던 일상의 대화 속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단세포 동물의 무성생식처럼 맹목을 한 채 내 앞에 밥만 먹으려 달려들던 아귀 같은 삶에 지나지 않은 것 같다. 인생은 갑작스레 작아진다. 우주의 부피로부터 순식간에 하수구 구멍만큼 쪼그라들던 때 나는 오래전 죽은 한 사내를 만났다.

 

지금으로부터 390년 전, 스피노자가 파문을 불사하며 지켜내려 했던 건 이름 없는 자들 속에 숨어 있는 범신汎神 이었다. 평범한 모든 것들은 비범을 품고 있다는 신념, 그것은 자신의 삶과도 같았다. 그는 당시 사회적 관념으로 뿌리 박힌 기독교적 유일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대신 모든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신을 기하학적 방법론(증명, 설명, 해석)을 차용해 논리적으로 증명했다(에티카, 기하학적 질서에 따라 증명된 윤리학). 신과 인간의 매개를 독점하는 교회 권력을 비판했던 것이다. 제단 위에 우러러보는 신에서 누구에게나 현현할 수 있다는 이른바 민주적 신으로 공평한 삶의 자리로 내려서게 했다. 당시 그러니까 17세기에 여전히 서슬 퍼랬던 절대 왕권의 군주 앞에서 죽음과 파문을 무릅쓰고 당당하게 자신의 신념을 지키던 한 인간을 만났다.

 

에티카를 월급쟁이 관점에서 읽어 내리면 불편하다. 월급쟁이는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지 않는(또는 못하는) 정체성의 한 형태라면 스피노자는 이를 두고 용기 없는 비겁한 수동의 인간이라 호통친다. 한 인간의 용기는 어디에서 오는가에 관해 불편한 진실을 죄다 까발린다. 스피노자는 코나투스 Conatus 개념으로 월급쟁이에게 조곤조곤 말한다. 우선, 스피노자 에티카의 핵심은 우리는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어떤 의지가 있다면 거기엔 일종의 정서적 (코나투스)’이 존재하고 그 힘은 우리를 의지하는 그곳으로 데려다준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그것이 무엇이든 힘껏 구하라고 다그친다.  

 

스피노자의 신은 수동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수동이란 소심한 마음으로 삶의 안전만을 추구하려 드는 삶의 태도다. 소심함은 사회가 강요한 외적 작용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수동의 삶은 진정한 자신의 삶이 아니다. 하지만 월급쟁이들은 수동의 삶에 빠져있다. 가기 싫은 직장엘 매일 나가야 하고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야 하며 원하지 않는 음식을 먹어야 할 때가 많다. 이럴 때 우리의 내적 성향은 고통을 받게 되고 코나투스는 감소하게 되어 슬픔이 삶을 지배한다. 스피노자는 이 지점에서 그 삶을 빠져나오라고 소리치는데 이때 우리를 설득하며 말하는 개념이 바로 코나투스다.

 

니체의 힘에의 의지는 스피노자의 코나투스로부터 빌려온 것 같다. 니체의 힘에의 의지는 스피노자의 삶에의 의지. 삶의 의지는 우리가 기쁠 때 생겨난다. 우리가 기쁠 때 코나투스는 증가한다. 우리가 슬플 때 코나투스는 감소한다. 그러므로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들을 욕망하고 자신을 슬프게 하는 것들을 거부하는 해야 한다. 기쁨은 우리를 의지로 충만하게 하고, 살고 싶게 하고, 높아지게 한다. 슬픔은 우리를 우울하게 하고, 낮아지게 하고, 작아지게 만든다. Conatus, 우리 삶의 의지 안에는 원래 소심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스스로에게 귀 기울이지 않고 외적 작용에 일희일비하여 우리 안에 서식하는의 씨앗을 말살하고야 말았으니 우리는 소심함으로 뒤덮여 존재가 멈추게 됐다.

 

사람의 욕망은 정신의 본질이다. 사람의 정신은 그 사람 안에 있는 신의 코나투스다. 우리의 욕망을 내 안의 신이 노래하는 주술과 리듬에 맞추고 코나투스를 내뿜어 최대치로 끌어올릴 때 영혼은 자유로워진다. 자유로운 영혼은 흔들리지 않는다. 외적 작용의 허접한 꼬임에 넘어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누가 어떤 말을 하든, 어떤 위협을 하든, 어떤 책임감으로 들씌워 눌러 앉히든, 의무를 강요하든 흔들리지 않는다. 자유롭기 때문에 자신의 정신에 고귀함을 부여한다. 그 누구도 자신을 권위로써 짓누를 수 없는 자유로운 정신 말이다. 한 사내가 세상에 권력과 맞짱 뜰 수 있었던 근거는 바로 이것이다.

 

스피노자는 위험하다. ‘에티카는 인간의 갖가지 감정들을 과학적으로 풀어내려 애썼으므로 읽기가 만만치 않다. 그렇지만 한번 읽고 나면 가슴이 따뜻해지며 저 밑에서 끓어오르는 먹먹함을 또한 견디기 어려운 책이다. 그 먹먹함은 삶의 위험으로 인도한다. 월급쟁이의 삶에 분노를 느껴 지금이 슬프다고 느끼면 과감하게 자신의 길로 따라나서게 할 수도 있다. 알게 모르게 우리를 옥죄는 억압과 사회적인 제약에 속박되기를 거부하게 한다. 결국 떨치고 일어나게 만든다. 그러나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박하고 가벼운 분기탱천은 차갑게 식기 마련이다. 그것을 실행으로 옮기기에는 우리를 둘러싼 현실의 힘이 만만치가 않기 때문이다. 스피노자는 이렇게 소심하고 우유 부단한 우리의 마음을 정확하게 간파하여 책의 말미에 용기 없는 자들의 부자유를 조롱한다.


 무지한 자는 외적 원인에 따라 여러 가지 방식으로 동요되어 결코 영혼의 참다운 만족을 갖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과 신과 사물을 거의 의식하지 않고 살며, 작용 받는 것을 멈추자마자 존재하는 것도 멈추기 때문이다. 이에 반하여 자유로운 자는 현재로서 고찰되는 한에서 거의 영혼이 흔들리지 않고 자신과 신과 사물을 어떤 영원한 필연성에 의해서 인식하며 존재하는 것을 결코 멈추지 않고 언제나 영혼의 참다운 만족을 소유한다. 이제 여기에 이르는 것으로서 내가 제시한 길은 매우 어렵게 보일지라도 발견될 수는 있다. 또한 이처럼 드물게 발견되는 것은 물론 험준한 일임이 분명하다. 만일 행복이 눈 앞에 있다면 그리고 큰 노력 없이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서 등한시되는 일이 도대체 어떻게 있을 수 있을까? 그러나 모든 고귀한 것은 힘들 뿐만 아니라 드물다. Sed Omnia praeclara tam difficilia, quam rara sunt.”

 

월급쟁이 삶을 마냥 벗어난다고 단번에 기뻐지는 것도 아닐 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삶의 사면초가에 우리는 빠져 있다. 언젠가 꽃 피울 줄 알았던 인생은 점점 꽃 피울 확률이 줄어든다는 걸 자각한다. 세월은 간다, 어쩌면 꽃 피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을 체념과 맞바꾼다. 그래서 삶의 관조, 생각의 성숙, 행동의 신중함 같은 그럴싸한 말들로 섞어버리는 것이다. 말을 못 알아들으니 죽여도 좋다던 어느 백인 장교의 말처럼 월급쟁이의 삶은 꽃 피지 못한 채 잊혀져도 좋은 그저 죽어도 좋은 세월인가? 그 세월의 보상으로 월급을 받았지 않았느냐 말로 위안이 될 리 없다. 열심히 살면 꿈을 이룰 거란 희망은 삶을 논리의 문제로 교묘하게 바꾼다. 삶은 논리도 아니고 수학도 아니다.

 

월급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이다. 이 환난 통에 우리는 목도한다. 단 한 번 거른 월급에도 사니마니 한다. 이래서 월급은 파괴력을 가진 구체성이다. 먹으려면 벌어야 하고 살려면 일해야 하는데 그 안에 월급이 있다. 월급은 우아하지 않다. 배고프기 전 오로지 밥만 생각나더니 먹고 나면 언제 뭘 먹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끼니 같은 게 월급이다. 끼니처럼 돌아오고 끼니처럼 지나가는 것, 그것이 월급의 본령이다. 우리는 지금 모든 지나가는 것에 목숨 걸고 있는 것이다. 어제 받았던 모든 월급은 지금 내 앞에 남아 있는 게 없다. 조금 더 근사하게 먹고 살 방도는 없는가? 스피노자를 소환하자. 그는 월급쟁이를 끝까지 지키려 한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지금은 무덤조차 없지만 그가 죽은 자리를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우리 안에 여전히 살아있는지 모른다. 그는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조금씩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조금씩 조금씩 그러나 쉬지 않고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서서히, 부드럽게, 천천히 그리고는 때가 왔다 생각되면 가차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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