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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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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23일 19시 17분 등록

월급쟁이의 욕망

 

우리는 모두 다르지만, 취향, 행동, 언어, 습관까지 모두 같은 게 하나도 없지만, 직장에서 월급쟁이 정체성이 삶을 지배하는 한 우리는 의도치 않게 같아진다. 월급쟁이에게 회사는 일말의 인간적 감각을 요구하지 않는다. 파란 하늘, 흰 눈, 들판의 냄새, 산정 풍경 등에 관한 개인의 서정은 철저하게 배척한다. 물론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그런 것들은 회사에서 요구되지 않고 요청할 수 없는 것들이다. 대리는 대리가 해야 할 일이 있고 과장은 과장으로서 도달해야 할 성과가 따로 있다. 부장과 임원은 각자 나름의 역할이 분명하게 있고 업무분장과 위임에 따라 정해진다. 사람이 아니라 직책이 한다. 직급이 해야 하고 직위가 해야 할 일들이다.

 

물론 선진적이라 말하는 기업들은 호칭까지 바꿔가며 직급파괴와 공고한 수직의 벽들을 허문다고 하지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회사는 개인성과 다양성, 인간적 욕망이 용인되는 곳이 아니다. 직장에서는 인간의 많은 감각과 통찰 중에 오로지 기계적 논리 작동만을 원한다. 확장해보자. 회사와 직장에서만 그런가, 사회와 국가는 어떤가. 그들이 부추기는 욕망으로 다양한 개성을 표현하지만, 그 욕망이 누구의 욕망인지 우리는 모른다. 광고의 욕망인가, 기업의 욕망인가, 부모의 욕망인가, 사회의 욕망인가, 욕망의 욕망인가? 기후변화의 속도로 우리는 같아지고 있다.

 

취업이 일생일대의 꿈이었던 사람조차 일하기 시작하면 행복하지 않다. 그토록 바랐던 꿈이 이루어진 순간인데 그들은 왜 행복하지 않은가. 우리가 월급에 목이 매이면 매일수록 결여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결핍이 커질수록 그들의 지배는 커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월급날 왜 어깨를 축 늘어뜨려야 하는지, 허탈한 뒷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는지, 터덜터덜 걸어가는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털렸고 어디서 기진하고 무엇 때문에 맥진했는지 알 수 없다.

 

자기 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취업해서 번듯한 어른으로 거듭나는 건 남들이 원하는 욕망이었기 때문이다. 부모의 욕망이었고, 선생님의 욕망이었고 이 사회의 욕망이었다. 우리는 육감적으로 안다. 남들이 원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노예다. 그러나 수많은 경쟁을 물리치고 들어온 회사를 나갈 수 없다. 어떻게든 붙잡고 있어야 한다. 꿈이니 딴짓이니 개소리를 해대도 남 일처럼 귀를 닫고 야만적인 일상에 자신을 구겨 넣는다. 우리의 고민, 혼자 늦은 밤 테레비조차 꺼야 하는 시간, 밀려오는 삶의 공허함, 자기도 모르게 떠밀려온 삶이 측은하다. 개돼지와 다를 바 없는 나 자신이 초라하다. 회사원이 나일 수 없다는 명징한 사실로부터 모든 글과 사유는 시작된다.

 

프랑스 철학자 라깡은 내 욕망에 접속한 그 순간 즉 내 이상과 꿈이 실제계와 맞닥뜨린 그 찰나를 쥬이상스’ Jouissance라 했다. 내 욕망을 찾아낸 열반 같은 쾌락의 순간은 언제 찾아올 것인가. 꿈을 이루기로 마음먹는 순간은 세상이 달라 보인다. 자유로운 결정의 순간에는 일종의 쾌감 같은 게 있어서 주위를 온통 감싸는 희열이 느껴진다. 그것은 시간을 지배하는 무시간적 공간에 있는 것 같다. 앞으로 닥칠 일들을 장악하며 이끌어가는 주체적 자아가 된 느낌, 두려움이 순간 사라지고 사위가 자신감으로 둘러싸이는 느낌이다. 지구를 통째로 들고 흔들고 있다는 착각 같은 것. 그런 게 느껴진다. 비록 곧 그 톡톡한 대가가 기다리고 있지만 말이다. 나는 내가 하고 싶다는 이유 하나를 위해 내 발 밑으로 내 욕망이 아닌 모든 욕망들을 밟아버린 적이 있다.

 

한계가 명확한 유한자임을 자각하는 순간 무한을 인식할 수 있다. 직장에 몸담을 수밖에 없고 월급 없이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연약한 유한자이므로 월급쟁이는 월급쟁이 너머의 삶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욕망하는 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 그 욕망에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길 말고는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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