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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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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5일 19시 24분 등록

넌 누구냐?’ 


낯선 중년의 남자가 거울 속에 나타났다. 오늘따라 유독 내 모습이 지저분해 보였다. 머리가 많이 자랐고 새치도 보여 동네 미용실을 방문했다. 염색 약을 바르기 전에 미용실 헤어 디자이너가 내게 이런 말을 미리 해준다. “염색 약 바를 건대 조금 차가우세요얼마나 차갑길래 이런 말까지 하지? 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 차가움의 정도는 크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상상을 해 보았다. ‘만약 내가 커피를 마시려는 순간이었고 헤어 디자이너가 염색 약을 바르기 전에 차갑다는 말을 미리 해 주지 않았다면 난 예상하지 못한 차가움에 놀라 커피 잔을 떨어뜨릴 수도 있었겠다라고 말이다


염색 약을 다 바른 후 그녀는 40분정도 지나면 샴푸를 해 준다고 또 미리 그녀의 계획을 내게 알려 준다. 그리고 30분정도 지난 뒤 다시 내 머리를 살펴보고 염색 상태를 점검하고 그녀의 계획을 다시 내게 말해준다. "10분 정도 뒤에 샴푸 해 드릴게요~" 아주 사소한 정보 공유다. 그렇지만 난 그 사소함 속에서 친절함과 편안함을 느꼈다. 굳이 내게 말 안 해주고 시간되면 알아서 염색이란 서비스를 제공한다 해도 난 내가 지불한 비용에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소한 정보지만 미리 공유해 주니 난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 가능한 미래 속에서 편안함을 느꼈고 내가 지불한 돈 그 이상의 가치를 받고 있다고 여기게 되었다


아내는 나에게 사소한 정보를 공유해 주길 부탁한다. 예를 들면, 회사에서 퇴근 버스를 탈 때 미리 문자 남겨 주길 원한다. 근데 난 이런 사소한 문자가 왜 중요한지 공감이 되질 않아 종종 까먹는다. 가끔 생각나는 날에도 버스에서 내려서 연락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내는 이런 사소한 정보 공유를 통해서 내가 아내를 배려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엔 버스 타기 전에 '지금 7시 분당 가는 버스 탔어' 라고 카톡을 남긴다. 이 사소한 정보가 아내를 기쁘게 만들고 있고 아내의 기쁨은 곧 나의 행복으로 되돌아 오고 있다


회사 동료들 간에도 사소한 정보라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단 사실을 난 최근에 깨닫게 되었다. 내가 맡은 업무 중 하나는 CEO 보고 자료를 작성하는 일이다. 이 보고 자료에는 많은 정보가 들어간다. 그래서 많은 팀 동료들이 초안 작업에 참여한다. 그리고 임원과 주요 간부들은 작성된 초안을 수 차례 검토하는 회의를 거쳐 최종 보고할 내용을 엄선하고 보고 내용을 한 줄 한 줄 다듬는다. 그렇다 보니 보고서도 수 십 차례 버전(Version)이 바뀐다. Ver.1, Ver.2 이렇게 시작된 파일 제목은 어떤 달에는 Ver.20까지 도달할 때도 있다. 나는 보고서 담당자로 굳이 최종 버전이 아닌 중간 단계의 버전은 팀 동료들에게 공유하지 않고 최종 버전만 공유해 왔다


그런데 몇몇 친한 동료들로부터 정보 공유가 되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같은 부서 사람들끼리도 정보가 회람되지 않는다며 소통이 안 되는 조직이라고 볼멘 소리를 해댄다. 질책보다는 아쉬움의 소리란 것을 잘 안다. 처음엔 왜 굳이 중간 버전의 파일 공유가 필요하지? 라고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팀 동료들은 자신이 맡고 있는 프로젝트의 내용이 어떻게 CEO에게 보고 되는지 알고 싶어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왜냐하면 프로젝트의 이슈와 대책은 수시로 바뀌기도 하기 때문에 최신 버전의 정확한 내용을 보고해야 할 책임은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중간 버전의 보고 자료도 팀 동료들과 공유해 오고 있다


그랬더니 오히려 도움을 받는 것은 나였다. 팀 동료들이 오타도 알려 주고 숫자의 오류도 먼저 발견해서 피드백 해주고 있다. 이처럼 회사에서 팀 동료뿐만 아니라 상사와도 사소한 정보라도 자주 공유하고 소통하는 문화를 만드는 가장 큰 장점은 리스크를 사전에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리스크와 이슈의 차이를 간략히 설명하면, 리스크는 아직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발생할 소지가 있어 보이는 상황을 말하고, 이슈는 그 리스크가 현실로 나타나서 문제를 일으킨 상황을 말한다. 미리 리스크를 관리 한다면 이슈는 발생할 확률이 낮아질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리스크 관리라는 것이 쉽지는 않다. 왜냐하면 직장인 대부분은 문제가 터지고 나서야 부랴부랴 상사에게 보고하는 경향이 있다. 나도 그 중 한 명이었다. 분명히 문제가 터질 것이란 사전 징조는 담당자라면 여러 차례 감지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상사에게 사소한 정보라도 미리 보고하는 문화가 아직은 낯설다. 상사에게 괜히 먼저 보고했다가 이것저것 별도의 보고서를 작성하라는 지시를 받을까 두려워한다


직장상사.PNG


무엇보다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한다



뭐 조금 지나면 이 문제는 잘 해결 될 거야, 상사에게 보고할 만큼 중요하지도 않고’ 


이런 우리에게 정신과 의사이며 베스트 셀러 작가인 M.스캇 펙은 그의 저서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서른 살의 총각 영업 사원의 사례를 들면서 조언해 주고 있다


이 영업 사원은 남편이 은행가였던 부인을 알게 되었다. 비록 은행가인 남편과 그의 부인은 헤어진 상태였지만 은행가는 그의 부인이 떠난 것에 대해 분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영업 사원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 영업 사원은 이 부인과 데이트를 시작했고 친밀한 관계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조만간 그 은행가가 그의 아내와 자신의 관계를 알게 될 것이 분명하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영업 사원은 이 문제를 푸는 유일한 해결책은 그와 그녀의 관계를 은행가에게 고백하고 은행가의 분노를 감당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영업 사원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결국 3개월 후에 그 은행가는 영업 사원과 자기 부인 사이의 친밀한 관계를 알게 되었고 예상했던 대로 분개하였다. 주변 사람들이 영업 사원의 행동에 대해 문제를 삼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혹시 내가 가만히 있으면 아무런 일도 일으키지 않고 그냥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으면 언젠가는 문제가 그대로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 영업 사원의 변명에 M.스캇 팩은 문제란 그대로 사라져 버리지 않는다. 문제는 직면해서 해결하지 않으면 그대로 남는 것이며, 영원히 정신적인 성장과 발전의 장애가 되고 만다라고 단호하게 주장하고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는 이 영업 사원과 비슷한 행동을 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문제가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란 낙관적 희망을 갖고 일 처리를 했던 경험들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근무하고 있는 회사의 CEO께서 최근 임직원들에게 전달한 다음의 메시지가 묵직하게 마음 속에 울려 퍼진다


임직원들이 자신이 처한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고 드러내 놓을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문제는 드러내는 순간 절반은 해결된 것이다. 당장의 질책을 피하려다 골든 타임을 놓치는 사례가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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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7 23:25:32 *.133.149.24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경우라고 그러던가 ...   사실에 충실하지 않고 기대나 희망에 의존하다 벌어지는 아주 흔하디 흔한 실수 그리고 그래서 더 자주 일어나는 현상  그럼 대안은 ?   ' 5 초 법칙의 응용 ?'  ^^ ' 밥먹을 때 밥먹고 잠잘 때 잠 자는 것' 처럼' 비장한 각오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행동이 필요한 것아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비장한 각오로 밥먹고 비장한 각오로 잠자고 비장한 각오로 일하는 사람은 비장한 각오라고 말하지 않기 때문에... 요행을 기대하지 않는 일상같은 평범한 태도가 문제를 해결하는 ...  그래서 그랬을까?  言者不知, 知者不言 知人者智, 智人者明, 爲而無不爲 (말하는 자는 모르고, 아는자는 말이 없다.  아는자는 지혜롭고 지혜로운 자는 현명하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노자랑 장자의 이야기로 기억한디요...) ^^ ㅡ 한마디로 있어야  할 곳에서 해야 할 일을 할 때,가장 평범하고 자연스럽고 문제도 안 생긴다 그말이지요.  곧 공유는 공감을 부른다는 ....  동의함니다. 많이 많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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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2 19:51:57 *.37.90.49

에킴백산님, 제 글에 많이 공감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비장한 각오로 밥먹고 잠자면 안되겠죠? ㅎㅎ 우리의 하루 의지력 총량은 정해져있기 때문에 우리 일상들을 최대한 습관화 하여 에너지를 저축해야만 그만큼 창의적이고 중요한 일에 더 많은 집중과 에너지를 투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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