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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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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7일 16시 01분 등록

마흔, 다시 시작하려는 그대에게

 

때론, 어쩌지 못하는 삶의 관성이 미워진다.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느껴질 때 여기까지 굴러먹은 인생 곡절이 무참하다. 어쩌자고 여기까지 왔을까. 젠체하는 인간들의 경박한 얘기들을 경청해야 하는 삶은 어리석은 인생이다. 그렇고 그런 인간 군상들과 그렇고 그런 일을 해야 하고 시시한 말들과 더는 흥미롭지 않은 주제로 흥미로운 듯 말을 섞어야 한다. 기다리던 삶인가? 원하던 삶이었던가? 아직 헤매는 모양이 그리 좋아 보이진 않는다. 고쳐 앉자. 밥벌이하며 가족을 부양하는 자는 자신의 고민을 끝까지 밀고 가 인생과 마주하는 희열을 느껴선 안 되는가. 나 자신을 과소평가해선 안 되고 마찬가지로 과대평가하지 말 일이다. 그대 마흔, 우리 냉정하게 균형을 잡아보자.

 

지난 15, 그대는 대학에서 배우고 회사에서 익힌 지식과 경험으로 그런대로 밥을 벌어 살았다. 묻는다. 앞으로의 10년도 지금의 지식과 경험으로 밥벌이할 수 있는가? 그렇다. 그러나 순탄치만은 않을 테다. 이리저리 일자리를 찾아다녀야 하고 거친 밥과 사람들을 만나게 될 테고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점점 줄어들며 선처를 바라다가 처분에 맡겨지게 될 것이다. 이런 삶으로 10년 더 버텨볼 만한 인생인가? 그렇지 않다. 내 등을 보고 자랄 아이에게도 서서히 무너지는 등뼈를 지켜볼 아내에게도 자랑스럽지 않은 삶이다. 다시 묻는다. 그러면 무엇으로 다음 10년을 걸어갈 생각인가. 다음 10년을 의젓하게 살 수 있는 비책은 가지고 있는가?

 

좁아터진 사무실에 앉아 엑셀 화면을 보며 울고 웃고 회사놀이에 지나지 않는 일들을 해내며 성취라 말하기조차 민망한 초라한 성취감을 느끼고 가기 싫은 술자리에 부어지는 술을 억지로 마시며 맥없는 사내들의 낮고 낮은 가십들을, 듣고 날아가 버릴 그저 그런 얘기들을 경청하듯 들어야 하는 불편함은 이제 그대에겐 지겹디지겨울 뿐이다. 라캉이 그랬던가, 이 사회는 거대한 감옥이라고, 카뮈가 그랬던가, 우리는 모두 잠재적 사형수라고. 꼼짝없이 노동해야 하는 커다란 부비트랩에 걸려든 것 같다. 갑갑한 지금을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인가? 모험처럼 과거로 가라. 잘못 꿴 단추, 엇나간 퍼즐의 그 처음으로 가라. 그러나 엉클어진 실타래에 성급하게 다가가선 안 된다. 가만히, 조용한 가운데 아주 가만히 들여다보아라. 그대가 원하는 얘기들이 매직아이처럼 떠오른다.

 

그때 내가 이 길을 가지 않았더라면할 때가 있다. 2004년 여름이었다. 첫 입사를 하고 신입사원 교육을 받는 중에 월급이 들어왔다. 월급은 커다랬고 묵직했다. 일하지 않고도 돈이 들어왔다. 그때 나는 월급에 얻어맞았다는 걸 알지 못했다. 모르고 얻어맞을 때 휘청거리는 법이다. 방심하다 일격을 당하면 무너진다. 나는 일하지 않았는데도 통장에 꽂혔던 단 한방의 월급에 무릎 꿇었다. 눈을 뜨고 맞으면 맞아도 다시 일어설 수 있지만 눈 뜰 생각이 애초에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암울함에 둘러싸인 사무실을 벗어나지 못했다. 일은 둘째치고 매일 출근하고 매일 퇴근하는, 숨이 막혀버릴 것 같은 답답한 월급쟁이 삶을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휴가 직전, 여름 휴가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온 나를 상상하니 몸서리가 쳐졌다.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마음먹었지만, 나는 눈을 감고 말았다. 떠나지 못했다. 입사 후 보름 남짓 지났던 그때가 내 첫 번째 전환의 기회였다. 잡지 못한.

 

그것은 순전히 외로움 때문이었다. 2016 10월의 마지막 날, 외로움과 복받치는 서러움으로 이국의 카페에서 눈물을 쏟았다.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봐도 나는 꿋꿋하게 울었다. 다시는 월급쟁이 삶으로 돌아오지 않으리라 맹세했다. 보기 좋게 깨졌지만, 여전히 그 맹세는 유효하다. 내가 자빠진 자리를 봤기 때문이다. 내가 어디까지 비겁해질 수 있는지, 나는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돌아보니 그때가 또 한 번의 전환의 기회가 아니었을까 한다. ‘사건을 두려워한 나머지 행동으로 옮기진 못했지만 내가 어디서, 어떻게 자빠졌는지 정확하게 알게 됐으므로 훗날 다시 일어서는 지점으로 삼을 수 있을지 모른다.

 

운명을 바꿀 수 있었던 잗다란 전환의 기회들이 많았지만 나는 두 번의 결정적 기회를 놓쳤다. 그렇다고 바뀔 수 있었던 운명, 벗어날 수 있었던 시시한 삶, 잡지 못한 기회에 대한 아쉬움을 긍정하지는 않는다. 지금을 운명이라는 말로 긍정하는 당위를 들이대고 싶진 않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사건에 빨려들어 회오리칠 준비가 되지 않았고 더 솔직하게는 사건이 겁났다. 나는 나를 감당해 낼 자신이 없었다. 기회는 언제든 다시 올 거라 믿는다. 그러나 기회는 자기가 기회라고 소리치며 오진 않을 테다. 누군가 옜다 던져주는 선물이 아니므로 남은 한 번의 기회는 영혼의 촉수를 동원해야 잡을 수 있을 거다. 그것이 아마 마지막 전환의 기회일 가능성이 높다. 폭풍처럼 내 삶을 뒤 덮을 것이다.

 

전환에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흥미롭지 않다. 옹졸한 마음이 그들의 이야기를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없게 만든다. 그럼에도 그대는 보기 좋게 전환해야 한다. 사람은 두 번 태어난다지. 두 번째 탄생, 지금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나. 그대 보아라. 그대도 다르지 않을 것이므로 나는 말한다. 느닷없이 기회라는 것이 찾아오면 그때 가서 뒷걸음질 치지 않기를 바란다. 슬그머니 발을 빼며 안온한 삶에, 노예적 당위를 장황하게 떠벌리지 않기를 바란다. 전환의 기회는 메시아처럼 출현해서 그걸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서는 수동적 전환이어선 안 된다. 그렇게 안 되려면 전환을 넋 놓고 기다릴 게 아니라 찾아 나서야 하는 게 맞다. 지겨울 때까지, 토가 나올 때까지, 마누라 자식새끼들 내팽개칠 만큼 그대를 욕망하는 그 무엇을 말이다. 삶의 파괴력 앞에 무력하게 무릎 꿇는 일이 없도록 눈을 뜨고 그 펀치를 맞아야 한다. 펀치 한 방에 나가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비록 그것이 불행을 자초할지라도 그 불행을 견디는 것, 그대 스스로를 견디고 말겠노라, 나는 나 자신을 견딜 수 있다는 마흔의 정신으로. 서서히, 신중하고 부드럽게 그러나 가차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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