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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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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30일 22시 35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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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리's 용기충전소

인생 각본을 다시 쓴다면


'인간은 이야기보따리'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인간은 태어나 자라면서 수 많은 경험을 하고, 그를 고스란히 이야기로 자기 안에 쌓아간다는 겁니다. 어떤 이야기는 서로 연결이 되고, 어떤 이야기는 사실과 다르게 각색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이야기는 네버엔딩으로 끝없이 내 안에서 반복재생되기도 합니다. '배우지 못한 경험은 배울 때까지 반복된다'는 말이 있는데, 언젠가부터 저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야기 안에는 어떤 의도가 숨어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반복되는 이야기 안에는 내가 풀어야 할 어떤 것이 있기 마련이라고.

어렸을 때,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슬쩍 가져오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동네 슈퍼마켓에 가서 마음에 드는 게 보이면 그냥 주머니에 넣고 나왔습니다. 몇 번을 시도했는데,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그 재미에 맛들린 저는 친척집에 가서도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먹을 거든, 장난감이든 모두 주머니 한 가득 담아 오곤 했습니다. 그때가 예닐곱살 즈음으로 기억하는데, 그러니까 저는 소(小)도둑이었던 셈입니다.ㅎㅎ

한 번은 큰언니의 생일이 다가왔습니다.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었는데, 선물로 뭘 줄까 고민하며  문방구를 지나다 '제도 샤프'를 보게 됐습니다. 반짝 거리는 제도 샤프는 당시 학생들에게 큰 인기였고, 언니의 선물로도 안성맞춤이었습니다. 하지만 돈이 없었기 때문에, 저는 샤프를 그냥 가져오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슬쩍, 주머니에 넣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만 문방구 주인 할아버지에게 들키고 말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앞으로는 이러지 말라'며 좋은 말로 훈계하고 보냈습니다. 그런데 일이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를 지켜본 몇몇 아이가 있었는데, 그 중 한 학년 선배였던 손 모양도 있었습니다. 성격이 앙칼지고 못됐기로 소문한 선배였는데, 그 일을 계기로 저를 엄청나게 갈구기 시작했습니다. 볼 때마다 '도둑년이라며 네 행태를 사람들에게 다 까발려버리겠다'고 협박했습니다. 그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4년 내내 그런 협박에 시달렸는데, 너무 수치스러운 일이라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혼자 끙끙 앓았습니다. 누군가 내가 한 일을 알아차리지 않을끼, 늘 조마조마하며 초등학교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남의 물건에 손대는 버릇은 싹 고쳤지만, 몇 년간 괴롭힘을 당했던 일은 제 어린시절에 큰 상흔을 남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TV 뉴스에서 생리때마다 도벽을 저지르다 붙집한 어떤 여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를 보면서 무심결에 어쩌면 내가 저렇게 되었을 수도 있겠다,란 생각을 하게 됐는데.... 예전의 그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이전과는 다른 차원으로 머릿속에서 이야기가 전개됐습니다. 원래대로라면 당시 사건이 떠오르고 손 모양에 대한 원망이 뒤따랐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원망 대신, 다른 생각으로 연결되었습니다.

'만약 그때 손모양이 주었던 그런 강한 충격이 없었더라도, 나의 도벽 버릇이 고쳐졌을까?'


생각해보니, 안 고쳐졌을 것 같았습니다. 왜냐면 훔치는 것에 대해 별 죄의식도 없었고 오히려 즐기는 편이었거든요. 재미로, 심심해서, 갖고 싶어서 다양한 이유로 남의 물건에 손댔는데... 그 버릇을 싹 버린 건, 다름아닌 손 모양의 괴롭힘 때문이었습니다. 그러자 나를 괴롭힌 손 모양이 오히려 고마워졌습니다. 그가 아니었다면, 나의 버릇때문에 더 큰 일을 당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 때를 계기로, 제 머리 속에서 손 모양의 역할이 바뀌었습니다. '나를 괴롭히던 악당'에서 '나의 버릇을 고쳐준 사람'으로 말이죠. 그리고 저에게 상처로 남았던 '어린 시절 소도둑 이야기'도 그 때를 기점으로 영영 저를 떠났고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사실'보다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이 힘이 훨씬 셉니다. 결국 중요한 건 관점입니다. 같은 문이라도 나가는 중이면 출구고 들어오는 중이면 입구가 됩니다. 같은 돌이라도 디딤돌이라고 생각하면 밟고 지나갈 수 있고 걸림돌이라고 보면 주저앉고 맙니다. 사실은 하나인데 해석이 다릅니다. 해석이 다르면 쓰임도 달라집니다. 마치 같은 이야기를 두고도, 내 머릿속에선 상처가 되기도 하고 배움이 되기도 하는 것처럼요.  

인간은 살아가면서 수 만가지 이야기를 만들고, 또 그를 끌어안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야기에 몰두하다보면, 자신이 그 이야기의 창작자라는 걸 종종 잊어버리고 삽니다. 그래서 자신의 이야기에 붙잡혀, 현실 속에 사는 대신 과거에 머무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인생의 각본을 다시 쓴다는 건, 기존의 나의 이야기를 다른 차원에서 바라보는 겁니다. 그러면 기존과는 다른 해석이 생겨나고, 새로운 생각이 올라오고, 거기에서 다른 해법이 보입니다. 그러면 벗어날 길 또한 보입니다.

바로 내 인생이 각색되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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