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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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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25일 19시 24분 등록

월급쟁이, 그 처지를 규정하는 것들

 

얼떨결에 얻어진 체제와 수준 낮은 위정자의 패악에 분노하며 정의(Justice)를 얘기하는 사람이 많다. 최악은 차악을 가린다. 사람들은 최악을 욕하는 일로 스스로 정의로운 인간임을 자처한다. 쉬운 정의다. 쉬운 정의는 차악과 다르지 않다. 차악은 오히려 세상을 기획하는 자들에게 주인의 자리를 넘겨줄 공산이 크다는 점에서 이 시대는 정의롭지 않은 게 최선인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누가 되었든 세상을 지배하는 또 지배하려는 자들이 우리들의 처지를 바꾸는 데 관심이 없고 바꿀 수도 없다는 데 있다. 쉬운 정의와 배설적 분노로는 우리가 처한 처지를 바꾸지 못한다.

 

처지는 투쟁을 부른다. 그것은 피냄새 나는 노력과 밥벌이의 위협이 동반되는데 왜냐하면 처지를 바꾸기 위해 자신의 처지를 규정하는 사람들과의 싸움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처지를 규정하는 자는 또 그들만의 처지에 봉사함으로 필연적으로 처지 대 처지의 싸움을 부른다. 이 싸움은 권력이든 권위든 물리적인 파괴력에서 우위를 가진 자가 승리할 수밖에 없고 이 싸움의 패배는 아무런 사회 안전망이 없는 상황에서는 자신의 밥숟갈이 위태로워지는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쉬운 정의를 얘기하고 자신의 처지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월급쟁이는 늘 초라한 시민성에 머무는 것이다.

 

그렇지만 월급쟁이, 이들에게도 빛 볼 날이 있으니 자신의 온 삶을 통째로 갈아 넣는 베팅을 통해 얻어지는 임원이라는 자리를 쟁취하는 것이다. 사회 초년생이던 지난날, 나도 이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시간이 한참 흐른 뒤 그 생각이 완전히 잘못됐다는 걸 알게 됐다. 어째서인가, 모든 국가는 자본의 이윤과 임금의 반비례 관계를 떠받치는 제도적 보루다. 기업의 직급 체계와 명운은 기업 고유의 것으로 알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고 국가적 그러니까 체제의 강력한 뒷받침을 받는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일 잘하는 사람(은 아니다. 일만 잘해서 임원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월급쟁이는 없다.)을 선별적으로 선택해 확실한 지위 개선과 파격적인 고임금을 선사하는 전략은 뛰어난 마름의 소량생산과 유사하다.

 

오버인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그것이 선택적 계급이동으로 경쟁을 부추기고 임원이라는 고결하고 복리후생에 둘러싸인 월급쟁이의 미래를 만들어 놓고 집단적 경쟁에 놓이게 하는 잔인한 의자 놀이처럼 보인다. 일생을 소모시키고 살아남은 자들에게만 시혜를 베풀겠다는 잔인한 자본의 의자 놀이 말이다. 언뜻 사회생활 전반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한 월급쟁이 패배자의 한숨 같은 하소연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에게 세 번의 냉정한 질문만으로도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비정상적인 인간상이라는 걸 알게 된다.

 

다시 처지로 돌아와 앉는다.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두 가지가 있다. 질문 이전의 삶과 질문 이후의 삶이다. 우리는 그저 선택의 연속이고 눈앞의 일을 처리할 수밖에 없는 일상을 살다 일시적 판단 중지 버튼을 누른 뒤 질문이라는 강제적 삼인칭 세계로 들어간다. 어떤 질문이건 대답이 준비되었다면 그것은 역사적으로 꾀어진 서사적이고 자발적 해답일 테고 곧 자신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답일 테다. 따라서 질문은 삶 속에서 삶의 방향, 이른바 가치관을 만드는 데 일조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가치관은 꿈과 현실 사이에 서식하는 일종의 중간계적 사유로 작용하고 그 사유가 일상적인 현실과 꿈 사이를 넘나들며 조각해 나가는 게 바로 삶이라는 원초적 행위다. 따지고 보면 삶은 이미 우리가 질문하기도 전에 존재하지만, 삶의 의미 부여는 삶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 뒤에 오게 되므로 질문이 있기 때문에 삶이 존재한다는 말도 맞는 말이 된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삶, 그러니까 질문 전에 존재하는 것이 처지라면 질문 후에 존재하는 삶이 처지 극복이 잠재된 삶이라 할 수 있겠다.

 

가치관은 각자가 당면한 삶의 처지를 반영하지만, 처지와 가치관은 같지 않다. 가치관은 처지를 비웃으며 생겨날 수도 있고 동조하고 찬양하기도, 경멸하기도 하며 생겨난다. 뭉뚱그려 보면 자신의 가치관은 어쩔 수 없는 자기 경멸을 끌어안고 있다. 우리는 얼마간 스스로를 경멸하기 때문에 우리의 처지와 가치관이 생겨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 경멸의 대상은 가끔 정당화되기도 하는데 이 모든 건 삶이 질문보다 앞서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경멸하는 삶을 산 뒤 느닷없이 물어오는 질문에 미리 답을 마련하지 않을 경우 쇼펜하우어처럼 밑도 끝도 없는 의지에 기댈 수도 있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서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우연처럼 보이는 사건들이 이어져 마치 소설처럼 어떤 줄거리를 이루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줄거리는 누가 만드는 것일까? 소위 의지 will이라고 말한 것에 의해서,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자기에 의해서 움직인다.“

 

결국 삶은 처지를 규정한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거의 모든 월급쟁이의 괴로움은 바로 이 처지가 빌어먹을 처지가 마치 나를 비웃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에 일어난다. 그러나 그 경멸은 이미 우리가 본 것처럼 삶이 품고 있는 본질과도 같은 것, 질문하며 벗어나야 하는 스스로에게 던지는 수수께끼 같은 것이다. 그래서 모든 삶은 질문 직전에 처한다. 즉 질문 이전의 삶, 정당화되지 않았고 가치관이 손쓸 수 없는 상태, 그것이 처지다.

 

삶은 처지를 규정하고 처지는 다시 삶을 비웃으며 조롱한다. 처지에 조롱당하며 다시 꾸역꾸역 삶으로 들어가 우리는 산다. 자신의 꼬리를 물어 삼키는 뱀의 아가리, 고대 신화의 우로보로스(Ouroboros) 적 자기모순을 안고 무한으로 순환하는 세계의 비유는 사실 이런 인간의 삶, 콕 찍어 말하면 모순에 빠진 월급쟁이 삶을 정확하게 겨냥해 놀리는 것 같다. 배가 고파 자신을 먹는 괴물을 두고 삶의 폭력성에서 해방된 인간성의 최고원리로 추켜세우는 인도 신화를 보면 차라리 내가 나를 먹어 삶의 고통에서 영원히 벗어나는 법을 단호하게 선택한 열반과도 같은 경지에 이르러야 처지라는 것에서 해방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삶, 처지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질문으로도 알 수 없는 것이 되고야 만다.

 

삶은 인간의 가장 사적(私的)인 영역이다. 그 양태는 각각의 사람마다 모두 다르므로 삶을 묻는 질문은 마찬가지로 개인마다 달라야 한다. 혹 같은 질문을 하더라도 대답은 필연적으로 달라야만 한다. 삶이란 무엇인가?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라는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와 같고, 질문에 대한 답은 오로지 살아가는 주체 즉 자기 자신만이 가능한 답이다. 이때 다른 사람이 내린 답을 가져오거나 또는 내 처지에 관해 타인의 처지를 들씌우게 되면 자신이라는 수수께끼는 영원히 풀지 못한다. 나는 월급쟁이 처지에 관해 나에게 주어진 이 수수께끼를 풀고 싶을 따름이다. 그러려면 사는 걸 중단하고 먼저 물어야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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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5 21:04:05 *.133.149.24

나는 누구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나는 자연으로 부터 와서 자연의 일부로 있다가 자연으로 돌아간다.

나는 생각없이 와서 생각으로 살다가 생각없는 곳으로 돌아간다. 

몸은 자연으로 부터 마음은 그 몸으로 부터 생겨나지만 

그 근본은 모습만 바뀔 뿐 늘 낳지도 죽지도 않고 오지도 가지도 않는 것 같다

"그것이 그냥 거기에 있다." 그래서 누군가 그랬나 본디...

읽다보니 마음이 투사가 되서 몇글자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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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6 15:44:20 *.161.53.174

깊은 말씀입니다. 몇 번을 읽고 되내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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