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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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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1일 18시 35분 등록


얼마나 재미있으려고 그리 심각한가 


얼마나 재미있으려고 그리 심각한가. 공부하지 않는 아이가 신나게 땀 흘리며 놀고 들어와 환한 웃음을 짓는데도 그는 아이의 웃음은 보이지 않고 공부하지 않았다는 사실만 고집스레 마음에 남아 복수하듯 찡그린 표정으로 맞이한다. 세계 패권이 어떠니 경제가 어떠니,  알고 보면 하나 쓸데없는 가십을 읽으며 포털 뉴스에 눈을 고정하고 모니터로 기어들어 갈 것 같은 모습은 비커 모서리를 들고 흔들어 보는 영락없는 화학연구소의 연구원이다. 누군가 용기 있게 던진 농담에 회의 석상은 웃음으로 가득해졌지만 웃지 않는 한 사람으로 인해 분위기는 급격하게 냉각된다. 조그만 직사각형 발광체에 눈을 떼지 못하고 해지는 강, 오렌지빛으로 물든 숭고한 장면을 전철 소음처럼 시끄러운 잡음으로 여기고 뺨에 앉은 석양을 벌레 쫓듯 손사래로 막는다. 미간은 늘 내 천자().

 

반어와 풍자를 알지 못하고 늘 과잉된 진지함으로 무장된 사람이 있다. 사실 자기 고민이 아닌데도 반도체 기업의 흥망성쇠를 걱정하고 부정적인 포털 기사를 갈무리해가며 나라 걱정을 한다. 세계 시민인 양 아메리카의 코로나 걱정까지 달고 산다. 정작 집에선 아이가 학교에서 벌어졌던 일을 심각하게 말해도 세상 엄한 표정으로 ’, ‘하지마로 간단하게 끝맺고 단답이 오가다 조용해진 침묵의 공간엔 다시 내 천자가 그려지며 저희끼리 웃어 재끼는 테레비 프로그램을 시청자 옴부즈맨처럼 본다. 월급쟁이는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웃음을 잃어간다. , 그는 심각하다. 무엇이 그로부터 웃음을 빼앗아 갔는가.


웃음으로 벌어진 희대의 살인극이 있다. 이탈리아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는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웃음 하나로 촉발된 중세 수도원의 살인사건을 진리와 역사적 관점으로 풀어낸다. “공허한 말, 웃음을 유발하는 언사를 입에 올리지 말지어다”, 자신이 진리의 수호자로 여기는 소설 속 인물인 호르헤 수사는 자기가 옳다고 믿는 것을 지키기 위해 자신에게 반대하는 자들을 절멸시키는 파시스트적 사고를 가진 자다. 그는 웃음을 경멸한다. “악한 것을 보고 웃는다는 것은 악한 것과 싸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요, 선한 것을 보고 웃는다는 것은 선으로 말미암아 스스로를 드러내는 선의 권능을 부인한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자였으므로 권위를 무화시키는 데 웃음은 아주 좋은 무기가 될 수있다고 여기는 수도원의 수사들을 모조리 죽인다 


불필요하게 심각한 사람(나를 포함한다)들을 바라봐야 할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나는 그런 사람에게 호르헤 수사를 투사하게 되는데 대부분의 심각한 사람들은 정신적 스트레칭이 되어 있지 않아 반어와 풍자, 다름과 여유를 맞닥뜨리게 되면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들은 항상 자기 스스로 어떠한 결정도 내려 본 적 없었고 명령으로 둘러싸이도록 항상 극단적으로 조심했으며 자발적 제안조차 원하지 않아서 항상 지시해 주기를바라는 사람이므로 심각하지 않아도 될 상황에도 심각한 척을 하거나 실제로 심각하다. 눈치와 복종이 자연스레 몸에 들러붙었고 감시와 검열이 일상으로 이루어지는 월급쟁이는 웃을 수 없다. 마음에 여유를 잃게 만든 건 무엇인가. 어릴 적 단풍잎을 만지고 구슬치기하던 조막손을 잊게 만든 것은 무엇인가. 가난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욕심이 부끄러웠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할 수 없게 만든 것은 무엇인가 


호르헤 수사를 살인자로 밝혀냈던 윌리엄 수사의 말은 오늘도 내일도 월급쟁이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의미심장하다. “삶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좇아야 할 진리가 아니겠는가.” 우리는 삶에서 도망갈 순 없다. 삶을 넘어설 수도 없다. ‘이를테면 삶은 부처님 손바닥 같은 것이다. 삶으로부터 아무리 멀리 떠나도 여전히 삶이다.’ 삶에 달라붙어 있어도 삶이고 삶과 떨어져도 삶이다. 삶은 오직 죽는다는 사실만 알고 있는 긴 역사(歷史) 같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명멸할 과정이며 몰락이다. 만약 우리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웃을 것인가, 이마에 내 천자를 그릴 것인가. 더는 심각함이 우리 삶을 갉아먹지 않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던가, 별달리 기대할 것도 후회할 것도 없지 않던가. 달이 유난히 빛나는 화요일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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