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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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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24일 09시 07분 등록

내가 그렇게 좋아?”

 

 

얼마나 좋아?”

 

많이 좋아.”

 

왜 좋아?”

 

그냥 좋아.”

 

이쯤에서 멈출 수 있었더라면 달달한 로맨틱 코메디 장르를 유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더듬어 봐도 여기서 끝냈던 기억이 떠오르지가 않는다. 상대는 바뀌어도 대화는 어김없이 이어지고 만다.

 

그냥이 어디 있어? 바라는 것도 없이 어떻게 이렇게 잘해줄 수가 있냐구? 지금 대답하기 곤란하니까 꼼수쓰는 거지?”

 

아니야. 그런 게 아니라 진짜 그냥 좋은 거라구!”

 

뭐야? 그러니까 지금 나한테 짜증내는 거야?”

 

“.......”

 

돌이켜보면 나는 불안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누군가, 아니 내가 선택한 그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는 그 특별한 충만감을 잃어버릴까봐. 나를 좋아하는 그 이유만 정확히 알아낼 수 있다면 어떻게든 그가 나를 떠나지 못하도록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내게 그냥은 제비뽑기에서 뽑은 만큼이나 좌절스러운 대답이었다.

 

더군다나 스스로 납득할 만한 이유없이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어 본 경험이 없던 나로서는 그냥이란 대답은 너는 굳이 이유가 필요할 만큼 내게 중요한 존재는 아니야.’라는 의미로 자동 번역이 되었다. 그럼 나보다 더 중요한 대상이 나타나면 언제든지 나를 떠날 수도 있다는 얘기? 그렇게 속수무책 버림받게 된다면? 상상하는 것만으로 마음은 이미 지옥!

 

그쯤되면 대화는 자연스럽게 취조가 되고, 결국 나는 시달리다 못한 그의 자백을 받고야 그럴 줄 알았지!’하며 마치 범죄자를 단죄하듯 사랑을 거둬들이곤 했다. 함께하는 충만함을 잃는 것은 가슴이 아팠지만 미련은 없었다. 사랑에 실패하는 것은 용서할 수 있어도 어차피 결론이 뻔한 관계에 에너지를 허비하는 바보짓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요가를 만나기 전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요가가 내 삶으로 들어온 것은 15년간 다니던 직장에서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오랜 갈등 끝에 결정한 퇴직이었지만 막상 내일부터 출근을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니 안도감이 아닌 막막함이 밀려왔다. ‘아무리 지쳤다지만 이렇게 아무 대책이 없어도 되나? 이러다 정말 인생 끝나버리면 어쩌나?’ 그 중에서도 혼자있는 시간을 이런 걱정들로 다 채우게 될 것 같은 두려움에 이르자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였다. ‘뭐라도 해야하는데...하지만 뭘하지?’

 

그 때 문득 딸아이 발레수업 때문에 가끔 들락거리던 주민센터 홈페이지에서 언뜻 보았던 요가수업이 떠올랐다. 얼른 검색해보니 아이들 학교 보내놓고 난 시간에 주3회 수업에 한 달에 3만이 넘지 않는 수강료였다. 그 정도면 편하게 오가며 직장과 가정에 사이에서 부대끼느라 너덜너덜해진 심신을 추스를 때까지 대충걸쳐놓고 있기에 딱 좋겠다 싶었다. 그러니까 당시의 내게 요가는 부담없이 시간을 보내기 좋은 편안한 맨손 체조 이상의 의미는 아니었던 거다.

 

그렇게 시작한 요가와의 인연이 어느덧 5년을 꽉 채워간다. 만만한 시간 떼우기 아이템으로 시작한 것이 거의 매일 수련은 물론이고 지도자 과정을 마친 이후에도 짬짬이 특별수련까지 챙겨하게 되었으니 누가 봐도 상당히 끈끈한 사이가 맞다. 그러다 보니 가끔 요가가 왜 그렇게 좋으세요?’하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적당히 둘러대곤 했지만 속으론 그걸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어요? 그냥 함께 하는 시간이 너무 좋고, 그러니까 자꾸만 더 같이 있고 싶고 그런 거지.’ 하는 내가 있었다. ‘그냥이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낸 죄로 천하에 상종 못할 범죄자 취급을 받아야 했던 옛친구들에게는 참 미안하긴 하지만, 그 질문에 대한 내 진짜 대답은 한 마디로 그냥이었던 거다.


지도자 과정수업.jpg



우연히 찾아와 어느샌가 내 삶의 중심이 되어버린 요가’를 통해 눈치챌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그냥이야말로 사랑의 가장 순결한 이유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생을 다 걸만한 거창한이유가 없었기에 오히려 일희일비하느라 지레 지치지 않고 그 본질에 충실할 수가 있었다는 것을. 그렇게 사랑을 키워갈 수 있었기에 요가가 내 인생의 일부가 아닌, 내 인생이 요가의 일부라는 것을 온 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도 얻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한참 써놓고 보니 요가를 좋아하는 이유를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요가는 내게 새로운 차원의 사랑을 몸으로 가르쳐준 고마운 스승이자 연인으로 내게 왔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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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130.11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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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5 19:28:06 *.133.149.97

전 이 길에 들어 선지 45년인데,  그럼 저도 숙명이겠지요 ? 

하긴,사람들이 물어보는데  전 "아직도 재미있다. 아무 생각없이 한다." 하고 하니까,

사람들이 그러던데요 "미쳤군,"  "미쳤다"  " 제 정신이 아니네, 아직도 ... "  ㅎㅎ ㅎ 

어쨌거나 전 '그냥'을 지나 '마냥'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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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8 18:58:32 *.140.209.126

아하!! '그냥'이 '마냥'으로 이어지는 거군요. 


'그냥'을 너머 '마냥' 좋은 그 일, 아니 그 삶 속에 머물 수도 있는 게 인생이라는 거. 

깨우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니 마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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