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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17일 09시 46분 등록


마음편지 독자님 안녕하세요.

2주 연속 주말에 공휴일이 있어서 3주만에 편지를 띄웁니다. 마지막 편지는 저의 지적 허영심과 아이의 중이병(?)으로 인해 벌어진 갈등이었지요. 계속해서 이어가겠습니다.

출처: https://edu.glogster.com/glog/ernest-hemingway-the-old-man-and-the-sea/21uxw24irha

 

날씨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하필이면 그 해의 가장 더운 여름날, 아이도 저도 폭발했습니다. 반쯤 누워서 하품을 해대는 아이는 온 몸으로 하기 싫다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뱉었습니다.

똑바로 앉자.”

똑바로 앉은 건데요?”

다시 한번 제대로 읽어봐.”

모르겠어요. 하기 싫어요.”

날씨 탓이었을까요? 뚜껑이 열린다는 것이 이런 느낌이었나 봅니다. 그동안 억눌렀던 화가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그럼 하지마. 이제 그만 하자

라며 책을 덮고 수업을 끝냈습니다. 아이는 예상을 못 한 듯 잠시 머뭇거리다 나가더군요. ‘그만 하자<노인과 바다> 또는 이번 수업만을 말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지훈이와의 영어 읽기 수업을 그만, 적어도 잠시 쉬자는 의미였습니다. 엄마에게 털어놓았다는 지훈이의 속마음도 그런 듯 했습니다. 재미도 없고 너무 힘들어서 이제 그만하고 싶다네요. 어쩔 수 없지요. 그렇게 3년간의 수업을 마무리 지으려 했습니다.


1주일 후 지훈이 엄마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1주일간 쉬면서 생각해봤는데 이렇게 중간에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답니다. 힘들게 반이나 읽었는데 그만두는 게 너무나 아깝다며 <노인과 바다>는 끝내고 싶다고 합니다. 기특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재미없던 책이 갑자기 재미있어질 리는 없지요. 힘들었던 게 쉬워질리도 없고요. 끝을 보고 싶다는 욕심만으로는 아이도 저도 둘 다 힘들 것이 뻔했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결심은 단호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그때까지 <노인과 바다>를 끝까지 읽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번이 아니라면 평생 <노인과 바다>는 완독을 못하는 책으로 남을 지도 모릅니다. 마음을 돌려 다시 읽기로 했습니다. 저도 한번은 <노인과 바다>를 끝까지 까지 읽고 싶었습니다.


다시 시작한 책은 여전히 지루했지만 조금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마침 노인이 배보다 큰 청새치와 사투를 벌이는 장면들을 읽었는데요. 불가능할 것처럼 어려운 일을 이겨내는 노인의 의지가 어려운 책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읽으려는 자신의 노력과 겹쳐 보였나 봅니다. 손에 피가 흐르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노인의 힘겨움과 비할 수야 없겠지만,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지 만큼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지훈이는 노인의 고난과 투쟁을 읽으며 더욱 힘을 얻는 것 같았습니다.

상어 때문에 고생이 헛수고가 되었을 때, 혹시 아이가 실망하지 않을까 걱정되었습니다. 자신의 노력도 헛되다 생각할 것이 걱정스러웠는데요. 쓸데 없는 걱정이었습니다. 아이는 노인이 결과를 받아들이며 평안하게 잠자리에 드는 부분을 읽으며 좋아했습니다. 최선을 다한 후에는 결과가 어떻든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달은 듯 했는데요.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인간은 파멸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는다)

<노인과 바다>를 통해 헤밍웨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텍스트가 아니라 몸으로 실천하며 배운 것입니다. 이 경험은 앞으로 아이가 어려운 일에 부딪힐 때 마다 큰 힘이 되겠지요. 끝까지 가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격을 이미 겪었으니까요.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습니다. 이번주도 건강한 날들 보내세요. ^^

 


IP *.226.157.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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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24 06:48:24 *.169.176.51

책을 통해서 느끼던 이미지...

배에 누워있는 지쳐버린 노인의 대한 저의 아스라한 기억,


주어지는 상황을 극복하고 고기를 잡을 수 있는 재능과 끈질긴 노력 

그러면서도 그 모든 것의 배경에 깔려있는 운이라는 것의 존재, 

나름 삶을 살아가는 힘을 만드는 능력과 주어진 상황속에서 

그것을 의미있게 실재화하는 끈질긴 노력 그리고 찾아 오는 뜻밖의 행운 

어쩌면 낭만주의 단편 문학을 좋아했던 저에게는 좀 새로웠지만 

운동을 하던 저의 뇌리에는 깊숙히 박혔던 ... 상징적인 의미들...   

그렇게 아스라히 떠오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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