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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3일 09시 36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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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편지 - 종종의 종종덕질

 

가족.

부부(夫婦)를 기초(基礎)로 하여 한 가정(家庭)을 이루는 사람들


5월을 푸르고 아이들은 자라지요. 그리고 따뜻한 봄바람과 함께 지갑엔 때아닌 겨울이 찾아옵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하여간 기념할 것이 넘쳐나는 이 계절의 여왕에는 특히 가족 간의 정을 물질적으로 확인하는 행사들이 줄줄이 사탕입니다. 


그런데 어젯밤 갑자기 막내 녀석이 올해도 어린이날 선물을 줄 생각이 있느냐고 묻더군요. 본인이 이젠 어른인 줄 아는지 대놓고 달라 하기에는 쑥스럽다 이거죠. 하지만 올해 열아홉,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고 3이 되어버린 녀석은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여전히 테디베어를 사랑하는 감성소년으로, 얼마전 인터넷 쇼핑몰에서 2미터가 넘는 거대 곰돌이를 봐둔 상태였던 것입니다. 평소 엄마와의 접촉을 용돈 줄 때와 밥 줄 때로 제한하고 있는 막내에게서 이런 다정한 눈길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몹시 흡족하긴 했으나, 유치원 시절부터 모아온 수십마리의 곰인형들과 좁은 집안을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능력이 있는 아들 둘, 고양이 둘로 저희 집은 이미 포화상태였기에 “하나를 사면 하나를 버린다”는 원칙으로 더 이상의 대형 곰돌이 입양은 불가함을 천명했습니다. 


여기서 다시,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되돌아가보죠. 제게는 아들 둘, 고양이 둘, 남편 하나로 이뤄진 가족이 있습니다. 한자 사전과 국어 사전을 뒤져보면 나오는 정의, ‘부부를 기초로 한 가정을 이루는 사람들’에 맞춰보면 여기서 고양이 두 마리는 빠져야 하죠. 사람이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삼색털이 어여쁜 5살 효미와 왕방울 눈이 매력적인 깜고는 제게 엄연한 가족입니다. 제 아들에게는 늘 함께 잠드는 곰인형에게도 가족의 개념이 연장되는 모양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희 집을 기준으로 할 때 가족의 정의는 ‘함께 살며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서 애착을 갖는 대상’입니다. 사실은 각자 일과 학교 공부 등으로 늘 바쁜 사람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과 애정을 나눈다는 생각도 들어요. 온 가족이 거실에 모이는 잠깐의 저녁 시간을 제외하면 한 집에서도 각자의 공간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 가족들과 달리, 고양이와 곰돌이는 한 방에서 같이 잠들고 일어나는 룸메이트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백마디 말보다 천금의 무게를 더한다는 침묵을 나누는 사이이기도 합니다. 혹시 최근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의 눈을 지긋이 바라보며 시간을 보낸 가족이 있으신가요? 저는 있습니다. 하하, 남편은 아닙니다. 그럴리가요. 근무를 마치고 헐레벌떡 퇴근해서도 끝나지 않는 집안일까지, 해야 할 일들을 모두 끝내고 방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는 시간 동안 어떤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한 상대이면서, 무슨 기분이든 어떤 일이 있었든 내 옆에 있어주고 내 말을 들어주는 듬직한 존재는 제 막내 고양이 효미입니다. 


평소에는 시크하게 제 말을 무시하는 도도한 녀석이지만, 제 기분이 처져 있거나 몸이 힘든 것을 알면 절대 혼자 두지 않아요. 끙끙 앓는 제 옆에 함께 누워 조그만 앞발을 제 팔에 올려 놓고 지켜보거나, 화장실까지 쫓아와 집사가 변기에 빠져 죽지 않도록 보초를 서는 귀여운 녀석입니다. 두 아들의 엄마로 정글과 같은 ‘양육강식’의 세계에서 말라버린 엄마 감성을 촉촉히 적셔주는, 새침하지만 속 깊은 딸내미 같은 존재죠. 


하여간 5월입니다. 어린이날이라 읽고 자식들한테 용돈 주는 날로, 어버이날이라 읽고 부모님께 상품권 드리는 날로 알고 의무처럼 행사처럼 지나가던 날들을 이번에는 어떻게 다르게 지내볼까 이런 저런 궁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오랜만에 부모님, 오빠와 동생 내외, 우리 가족까지 다 함께 밥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원래 저희 집은 무슨 일만 있으면 냅다 온 일가친척이 모이는 풍습이 있었는데, 그런 화목한 가족 행사 뒤엔 엄마의 병치레가 따라오는, 엄마집약적 노동의 현장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서 단위 별 쪼개기 모임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상태라 모인지가 한참 되었어요. 이번만은 엄마도 ‘내가 안 하면 누가 하리’라는 생각을 잠시 누르시고, 자식들이 차리는 밥상에 그냥 젓가락만 올리시면 좋겠습니다. 


‘같이 살고 애착을 갖는 상대’에 덧붙여 제가 또 하나 중히 여기는 가족의 조건은 바로, ‘식구’라는 개념이거든요. 먹는 입들. 한 솥의 밥을 남든 모자라든 나눠 먹어야 하는 사이, 지구 상에서 가장 많이 한 상을 놓고 함께 밥을 먹은 존재들이 곧 식구, 내 가족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가 자식들과 하루에 한 통 전화해서 묻는 질문의 팔할은 ‘밥 먹었니, 밥 먹자, 뭐 먹을까’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도 아마 그 때문이겠죠. 그건 제 엄마가 제게 어쩌다 한 번씩 전화해서 물으시는 질문도 마찬가지입니다. 밥은 곧 생존이고, 자식은 언제나 부모에게 생존을 빚진 존재로 시작하니 말입니다. 


이렇게 밥으로, 애정으로 서로에게 기대어 함께 사는 존재, 제게 가족의 의미는 그렇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제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듣고 싶은 노래는 스티븐 킹 원작의 영화 OST로 쓰인 동명의 곡, Ben E. King 버전의 ‘Stand by me’입니다. 


깜깜한 밤, 땅에도 어둠이 찾아올 때, 

when the night has come and the land is dark 

하늘이 무너지고, 산이 바다로 꺼진다 해도 

if the sky that we look upon should tumble and fall, or the mountains should tumble into sea 

나는 두렵지 않을꺼야. 당신만 내 옆에 있어 준다면, 그래준다면.

No, I won’t be afraid, as long as you stand by me. Stand by me.


- 'Stand by Me' 중


그 모든 순간 내 곁에 있어줄 존재,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이 곡을 바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TSjI-_Rw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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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05 15:35:55 *.169.227.25

멋진 가족이군요 !    종종님의,,,  그리고 우리 변경연 모든 가족들에게 기쁜 오월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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