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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16일 15시 41분 등록



연휴가 끝났습니다. 


지난 주는 천만 서울 시민들에게 100년 만에 처음이라는 대홍수의 날들이었지요. 사계절 변화무쌍한 날씨의 한반도에 살고 있다지만, 비 때문에 좀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출근이 아예 불가능했던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그간 큰 홍수가 났어도 수도권 전체가 이렇게 무방비로 물에 잠긴 적은 없었으니까요. 헤엄을 치던 스키를 타던 출근은 하고야 만다는 K직장인의 세계에서도, 지하철이 침수되고 강남사거리에 차들이 지붕만 남긴 채 침수되는 장면은 상상도 하기 힘든 재난 상황이었지요. 덕분에 한 주를 꼼짝없이 집에서 근무했고, 마침 월요일이 광복절인지라 근래 들어 가장 오랜 시간을 집에서 보냈습니다. 


코로나 시대 덕분에, 재택근무가 확실하게 자리잡은 상황이니만큼 일하는 데 큰 불편은 없었습니다. 하루 중 적어도 두 시간을 잡아먹는 출퇴근 시간을 제하니 확실하게 시간 절약이 되고, 피로도가 한층 덜해서 퇴근 후 소파에 뻗어 꼼짝달싹 못하던 날들과는 컨디션이 확연히 달랐고요. 그런데 딱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게 뭐냐면요. 얼굴 맞대고 하는 회의를 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회의를 좋아 하시나요? 사람이 여럿 모여서 함께 일을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피해갈 수 없는 회의. 직장인들에게 회의를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열이면 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겁니다. 회의 때문에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대로 받고, 일할 시간만 뺏긴다는 불평이 많죠. 하여간 직장 생활 2n년 차인 지금까지도 회의를 좋아한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근래에는 코로나 때문에 직접 한 자리에 모여서 하는 회의가 줄고, 화상회의가 일상화된 요즘이 좀 더 편하다는 분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사실… 회의를 좋아합니다. 과거 프리랜서로 자리잡을 뻔 하다가 회사로 유턴한 것도 실은 회의가 하고 싶어서였다…고 한다면 믿으시려나요?  

아이들이 아직 어릴 적, 남편의 전근 때문에 서울을 떠나 지방에서 프리랜서로 일했던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 가장 아쉬웠던 점, 회사 생활에 대해 그리웠던 기억을 꼽으라면 다양한 부서의 사람들과 난상토론을 벌이거나 아이디어를 도출하던 회의 장면이었답니다. 참 이상하지요? 저도 회사를 그만두기 전까지는 회의 때문에 일을 못 하겠다고 늘 툴툴댔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혼자 일해보니 알겠더라고요. 중요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전, 다양한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기회와 위험요소를 파악하고 일을 성공시키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고자 논의를 하는 그 과정이 얼마나 중요하고, 귀한 배움의 장인지 말입니다. 혼자서는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고 경험이 많다 해도 이게 나에게만 좋은 아이디어인지, 다른 사람들에게도 먹힐 아이디어인지 판단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더라고요. 


가령 정말 괜찮은 프로모션 아이디어를 생각해냈어도, 가용 예산 대비 효율성은 어떨지, 내부 영업 인력은 어떻게 동원해야 할 지, 이게 법적으로 문제가 될 부분은 없는지 등등 실제 업무를 진행시키기 위해 사전에 고려할 부분만 해도 나 혼자의 역량은 커녕 단일 부서의 영역 안에서도 해결되기 어렵지요. 


결국 3년간의 프리랜서 생활을 마치고 다시 서울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새로운 회사에 합류했는데요. 그러자 ‘회의’라는 장치가 아주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생각한 아이디어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비판하고 보완할 수 있는 다양한 Thinking Partner들이 모이는 장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전과 달리 회의를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이끌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절대 마다치 않았습니다.  


그렇게 날 것의 아이디어들이 만나 충돌하고 깨지고 다시 조립되어 새로운 그림을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게 되었고요. 오늘 이 회의에서는 또 어떤 새로운 발견이 있을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회의를 기다리게끔 되었지요. 외향적인 척하지만, 실은 마음 속 깊이 내향형 인간인 저로서는, 어마어마한 발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쨌거나 남이 주도하는 회의에 끌려다니면서 불평을 하기보다는, 나도 남들도 참여하고 싶은 회의를 내 손으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의 전환을 하게 됐달까요. 


회의의 주최자가 되면, 듣기의 중요성과 집단지성의 가치에 대해서도 절감하게 됩니다. 주최자는 가능하면 말을 줄이고 듣는 데 치중해야 다양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출할 수 있습니다. 내가 이 분야는 전문가인데, 내가 여기서 젤 상급자인데 등등의 자세로 회의를 진행하다 보면 어느새 나를 제외한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시계만 쳐다보고 있게 되죠. 여기에 대해선 지난 주 소개해드린 책 ‘재미있는 스타트업 이야기’에서 회의와 리더십의 관계를 설명한 한 구절을 인용하고자 합니다. 


“말하는 만큼 소속감을 느낀다. 그래서 모두가 말하는 분위기가 좋다. 회의라는 사회적 행위에서는 리더의 유연성과 포용성이 가장 필요하다. 그 사람의 사회성을 회의를 통해 간접적으로 평가해 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나의 아집을 내려놓고 상대의 최상을 끌어내는 것이 성공적인 회의’ 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내가 아는 것이 남들이 아는 모든 것을 다 합한 것보다 낫다고 자신할 수 없다면, 가능한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과 경험이 공유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야 하겠지요. 그렇게 다양한 각도에서 고려되고 협의된 내용은 한 사람의 독단적인 아이디어보다 성공할 확률이 당연히 높다고 생각해요. 충돌과 협의를 통해 조율된 아이디어 자체도 더 훌륭할 확률이 높지만, 논의의 과정에서 참여한 모든 이들이 한 자락씩 보탠 아이디어인만큼 다들 일정 지분을 갖고 참여하고, 성공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며 실행할 가능성도 크니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회의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을 되짚어 보고 싶어요. 유명한 자기계발전문가가 하신 말씀이었는데, ‘회의는 성인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고,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교육법’이라는 겁니다. 저는 그 말씀에 100% 공감합니다. 늘 그렇듯 넓고 얕고 무궁무진한 제 덕질 유니버스의 한 귀퉁이에는 요렇게 회의 덕후로서의 부캐도 한 자리 차지하고 있답니다. 그럼 오늘은 비오는 화요일마저 산뜻하게 바꿔줄 아이유의 노래, Rain drop을 들으며 인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Qzqq0LNl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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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20 13:48:41 *.166.200.71

홀로 있게 되면 의지나 집념은 강해지지만  

문제는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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