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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20일 10시 35분 등록
종종의 종종덕질
화요편지 – 오늘도 틀리고 내일도
2022.09.20

보기와 읽기와 듣기, 그리고 먹기. 숨쉬듯 하던 일들이 묘하게 버거운 요즘입니다. 분명 지금 이순간에도 하고 있는 일인데 어쩐지 다시 회고하기에도, 수다를 떨기에도 뭔가 힘이 달린다…는 느낌이 들어요. 환절기라, 갱년기라, 기운이 모자라서, 총기가 떨어져서…ㅜㅠ 이유는 어디에나 있을텐데 그 무엇도 아닌 것 같고 그 모든 게 이유인 것 같기도 합니다. 하여간 뭔지 모를 혼란과 피로의 시절을 보내고 있는 이 때, 습관처럼 사둔 책 한 권을 역시나 습관처럼 스르륵 읽어내다가 삐딱한 문장 하나에 꽂혔습니다.

“우리는 전에도 틀렸고, 앞으로도 틀리리라.” 
자못 암담한 문장인데, 이상하죠? 읽을 때마다 고개가 절로 끄덕 끄덕, 슬며시 안도감이 느껴진단 말이죠. 이 문장은 퓰리처상을 수상한 과학전문기자 룰루 밀러가 생물학자 데이빗 스타 조던의 생애와 논란을 전기와 탐사보도, 에세이, 회고록의 형태를 넘나들며 그려낸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한 구절입니다. 

이 책은 진짜 기묘해요. 성공한 생물학자의 전기인 줄 알고 읽다 보면 느닷없이 작가 본인의 내밀한 개인사가 튀어나오고, 영웅인 줄 알고 따라가던 주인공의 발자취가 수많은 이들의 삶을 짓밟은 악의 근원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한참 읽다 보면 내가 한 권의 책을 읽고 있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과학서와 전기, 탐사보도와 스릴러를 오가는 종잡을 수 없는 구성이에요.

애초에 저자 룰루 밀러는, 자신의 가장 암울하고 혼란스러운 시기에 한 줄기 빛이 되어줄 확신에 찬 영웅을 찾을 요량이었죠. 그래서 ‘어류’라는 대상을 분류하여 한 종의 질서를 찾고 부여한 위대한 생물학자 조던의 일생과 평생의 연구 업적을 쫓아가는 여정을 시작했어요. 조던은 남다른 재능과 끈기로 해양학자이자 분류학자로서 오늘날 세상에 알려진 어류의 대부분을 찾아내고 명명한 업적을 남겼을 뿐 아니라 명문 스탠포드 대학의 초대 총장을 지낸 입지전적 인물이거든요. 

책의 초반은, 조던이 남다른 재능과 성실함으로 학자로서 차곡차곡 명성을 쌓아 올리는 과정을 그려 나갑니다. 그 과정에서 생을 바쳐 수집해온 수천 개의 어류 표본들이 대지진으로 모조리 망가지는 비극을 겪고도, 수집한 어류의 몸체 하나하나에 직접 이름표를 꿰메어 붙이며 다시 일어서는 모습은 경탄과 감동을 자아냅니다. 

그런데요. 후일 학자로서 업적을 인정받아 스탠포드 대학의 총장이 된 조던은 어류의 제왕이 된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부여한 종의 질서를 인간에게 확장하려는 시도에 나섭니다. 그리고는 악명높은 우생학의 전도사가 되어, 미국에서 광범위하게 실시된 강제적인 우생학 프로그램 - 유전적으로 열등한 인간을 분류하고 자손을 남기지 못하도록 감금하고 강제 불임시술을 하는 것이 골자인 – 을 태동시켰습니다. 

이게 뭔가요. 혼돈의 세상에서 질서를 찾으려는 노력, 자연에는 엄연한 위계가 있고 질서가 있다는 확신이 결국 수많은 사람의 생명과 가정을 앗아가는 광기의 우생학으로 귀결되다니요. 저자는 자신의 영웅이 저지른 만행을 외면하지 못하고 강제 우생학 프로그램의 결과로 만들어진 캠프의 생존자들을 만나러 갑니다. 국가와 사회를 도태시키는 정신적, 신체적 결함의 부적격자들로 낙인찍혔던 그들은 과거의 끔찍한 상처를 딛고, 선량하고 따뜻한 이웃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었어요. 

그리고 책의 최종 장에 이르러, 저자 룰루 밀러는 조던이 필생에 걸쳐 확립해온 ‘어류’라는 질서가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과학적인 결론에 직면하게 됩니다. 1980년대의 분류학자들이 타당한 생물 범주로서 “어류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답니다. 저자는 캐럴 계숙 윤이라는 탁월한 학자와의 만남을 통해 우리가 아는 ‘물고기-어류’라는 분류는 실제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이 사실은 이미 분류학과 생물학계에서 널리 인정받는 내용이라는 것도 알게 되죠. 그러니까 조던이 평생을 매달렸던 어류라는 범주, 우생학으로 이어진 자연의 질서라는 개념은 존재하지도 않았던 겁니다. 

결국 저자는 조던의 일생을 통해 희망이 확신으로, 확신에서 집착에서 나아가 광기로 확장되었다가 그 확신의 기반이 혼돈 속에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게 된 셈입니다. 혼돈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의지할 수 있는 확고한 질서, 또는 그런 질서가 존재한다는 확신을 원했던 저자가 내린 고백 같은 결론이 바로 그 문장이었습니다. 

우리는 전에도 틀렸고, 앞으로도 틀리리라는 것. 진보로 나아가는 진정한 길은 확실성이 아니라 회의로, 수정 가능성이 열려있는 회의로 닦인다는 것. 
-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우리는, 전에도 틀렸고 앞으로도 틀릴 거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늘 상기해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확신의 무시무시한 칼날을 휘두르지 않고, 그 칼날에 당하지도 않고, 내가 틀렸음을 인정하고 함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요. 

그러니 지금 틀려도 된다고, 계속 틀리면서 한 발짝이라도 내딛다 보면 전보다는 조금 더 좋은 방향으로 가게 될 거라고 되뇌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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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0 21:43:27 *.166.200.71

두 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군요 ! 


'통섭' 이라는 책을 썻던 서울대의 최재천 교수는 그렇게 말합니다. 

'현장은 우리가 애써 구분해 놓은 학문의 영역을 존중해 주지 않는다' 라고 

연구자들은 객관성과 검증을 위해 영역과 범주를 구분하고 원리나 법칙을 만들려고 하지만,

현장 연구자 출신인 저는 늘 통합적인 관점을 주장하고 상보적인 통합이론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개똥철학이라고 말하는 그런..  ㅎ ㅎ ㅎ...   

요즈음엔 빅데이터가 가능해지면서 ' 통합'이 추세지만,,,, 


다른 하나는 

완벽한 검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객관적으로는 존재하지요,  완벽해 보이는 선수가 , 

모든 시합을 5:0, 15:0  (펜싱은 리그전은 5점 경기, 토너먼트 경기는 15점 경기를 합니다.)으로 이긴다면 완벽한 선수겠지만

그런 선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다만 완벽해 보이는 선수가 존재하는 것이지요, 자신의 능력으로는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없기때문에 말입니다. 

 그래서 이기고 있는 사람도 이기고 싶은 사람도 더 나은 방법의 학습과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연습 곧 숙련이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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