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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2022년 10월 30일 20시 51분 등록

지난 주 금요일은 회사에서 중요한 회의가 2개나 있었다. 오전에 회의를 하고 회의록을 정리하여 공유했다. 부랴부랴 점심을 먹고 오후엔 팀장님과 해외법인 간 회의를 진행했다. 회의는 영어로 진행되었다. 한국어로 회의해도 머리가 아프고 집중력이 떨어지는데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한국인과 유럽인들끼리 남의 나라 언어로 회의를 하다 보니 마음의 부담이 심하게 되는 회의였다. 심지어 문과 졸업생인 나에겐 전기적인 특성과 기계적인 작동 원리를 영어로 듣고 정리해서 회의록을 작성하는 것은 여간 고단하고 스트레스 받는 일이 아니었다.





시계를 본다. 오후 5 50분이다. 회의 참석자들에게 회의록 초안이라도 작성해서 사전 공유하려면 1시간은 더 야근을 해야 한다. 회사 식당이 문을 닫기 전에 급하게 저녁을 때운다. 다시 책상에 앉아서 회의록을 쓰려니 머리가 너무 아프다. A4용지에 급하게 휘갈겨 쓴 글자들을 멍하니 한참을 쳐다 본다. 아무 생각이 없다. 그냥 퇴근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월요일 아침에 출근했을 때도 종이에 뒤죽박죽 써 놓은 회의 내용이 복원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금요일 오후 7. 나는 회사 정문을 찜찜하게 통과했다. 보통의 직장인들은 퇴근하면 차를 몰고 집으로 향하지만 나는 다시 출근하러 매장으로 향한다. 매장의 청결상태, 다음날 판매할 식자재 재고를 파악하고 청소를 하고 마감을 한다. 매장이 위치한 대형마트 2층 주차장에 도착했다. 바로 매장이 위치한 1층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나는 잠시 나만의 시간을 갖기로 한다. 나와 함께 오랜 세월 고단한 인생을 버텨 온 낡은 자동차 안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오늘도 회사에서 아침부터 치열하고 바쁘게 살았지만 나의 업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해야 할 일이 수북이 쌓여 있는 매장으로 침투하기 전에 지친 마음을 정리하고 복잡한 머리를 쉬게 할 장소와 시간이 내겐 절실하게 필요했다. 낡은 자동차의 의자를 최대한 뒤로 젖힌다. 핸드폰을 열어 유튜브를 시청한다. 요즘 개그맨들이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짧은 드라마 형식으로 영상을 올린다. 너무 재미있다. 그리고 신발을 벗고 다리를 쭉 편 다음 10분 정도 꿀잠을 잔다. 이렇게 잠시 나만의 공간 속에서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 것이 나에게 큰 위로가 된다.






어디 인간뿐일까? 투우사와 숨을 헐떡거리며 이리저리 싸움을 하는 투우장의 소도 잠시 숨을 고르고 쉬어야 할 공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 공간은 정해진 곳이 아니라 소가 본능적으로 자신의 피난처로 삼는 곳이며 투우사는 이 이 공간 안에서 쉬고 있는 소를 공격해서는 안 된다. 이점이 너무 마음에 든다. 마치 내가 자동차 안에서 쉬고 있을 때는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전화도 받기 싫고 카톡도 확인하고 싶지 않다.






케렌시아는 스페인어로 애정, 귀소본능, 안식처란 뜻을 가진 말로 투우 경기에서 소가 투우사와 싸움 중에 잠시 쉬면서 숨을 고르는 영역을 일컫는다.






서울대 행복 연구소 센터장인 최인철 교수 강의를 들은 적 있다. 프레임이란 책으로 처음 교수님을 알게 되었는데 행복에 관한 그의 강의를 들으며 많은 공감을 했다





그 중에서 특히 많은 공감이 간 것이 바로 3의 공간을 갖고 있는 사람이 행복할 가능성이 높다는 대목이었다.






3의 공간은 미국의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Rah Oldenburg)가 그의 책 정말 좋은 공간에서 언급한 스트레스 해소, 에너지 충전을 위한 특별한 장소라고 한다 1의 공간은 가정, 2의 공간은 일터, 그리고 제 3의 공간이 바로 나만의 아지트 같은 역할을 하는 안식처다. 3의 공간의 특징이 있는데 격식이나 서열이 없어야 하고 소박하고 출입이 자유로우며 음식이 있는 곳이라고 한다. 나의 낡은 자동차 안도 제 3의 공간으로 손색이 없는 곳이다.






여러분은 어떤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마음 편히 두 다리 쭉 펴고 쉴만한 공간, 케렌시아가 있는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많은 사람들이 그런 공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예전에 회사 안에서도 제 3의 공간을 만든 적이 있었다. 바로 화장실이었다. 뭐 냄새가 좀 나고 비좁은 공간이긴 하지만 잠시 화를 멈추고 생각을 정리하기에 충분한 공간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 3의 공간이 아직 없는가? 괜찮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상상 속에서 그런 장소를 만들어도 된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살면서 안정감과 평화를 느낀 장소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호숫가 벤치에서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며 물 냄새 풀 냄새 새소리를 들었던 경험이 있을 수 있다. 골프를 좋아한다면 1번홀부터 18번 홀까지 멋진 샷을 날리며 걸었던 한 홀 한 홀을 복기하는 것도 좋다. 이렇게 일단 마음 속으로 케렌시아를 만들어 놓으면 바쁘고 힘들 때,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을 때 마음의 안식이 필요할 때 마음 속 케렌시아를 떠올려 보라. 그리고 3분 동안 그 당시 느꼈던 안정감과 평온함을 다시 느껴 보길 바란다.






아무에게도 간섭 받지 않고 쉴 수 있는 나만의 공간, 여러분만의 케렌시아는 어느 곳인가? 여러분의 케렌시아를 댓글로 남겨 주면 아직 케렌시아가 없는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IP *.37.9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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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05 15:54:04 *.169.230.150

습관의 완성님,  번아웃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적극적인 휴식이라고나 할까요 !

6학년이 되었지만 아직 에뻬검을 들고 선수들과 경기를 합니다.  게임을 할 때는 동시에 여러 생각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몰입이 가능하고 운동도 되서 큰 휴식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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