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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15일 18시 59분 등록

지난 주말은 날씨가 좋았습니다. 토요일 오전 가을의 한복판을 걸었습니다. 노랗고 빨간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푸른 하늘이 마음에 가득 담기는 하루였던 것 같습니다. 이제 다시 날씨가 많이 쌀살합니다. 찬 바람이 부는 11월에 접어든지 오래된 듯 합니다. 곧 겨울이 오겠지요. 사실 지난 10월은 좀 추웠습니다. 그래도 10월답게 좋은 날씨가 적지 않았지요. 저에게는 10월의 한가로운 공원에 앉아 나무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올려다 보는 것이 하나의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입니다. 제 생일은 7월인데, 가끔은 제가 10월에 태어난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10월을 좋아합니다. 만들어 놓은 시간 속에서 살다보니 조건반사처럼 10월 1일만 되면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제 가슴이 태어난 달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청명한 가을 하늘, 어우러진 나무와 풀을 보다보면 그냥 기분이 좋아집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번의 심호흡으로 현실을 살아갈 수 있는 작은 힘을 얻는 것 같습니다.

10월은 아름답지만 너무 짧습니다. 무려 31일이나 되는데 말이죠. 유독 10월이 짧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 모두 이 아름다움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곧 매서운 바람이 닥칠 것이고, 겨울을 준비해야 합니다. 전 항상 10월의 하늘, 그 곳에 머무르고 싶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가는 것을 안타까워했지요. 단지 그 시간이 좋아서만은 아니였습니다. 겨울을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계절을 온전히 즐기지 못한 채 안절부절하다가 겨울을 맞곤 했습니다. 힘들때 가끔 하늘을 올려다보며 힘을 내자고 스스로에게 되뇌였지만, 금새 바람은 차가워졌고 다시 한겨울속으로 내팽겨쳐지곤 했습니다. 항상 시간을 붙잡고 싶어서 함께 뒷걸음질쳤지만 단 한번도 그 시간을 붙잡지 못했습니다.

소확행은 허망할 정도로 짧았고, 나 자신을 지탱하기 위해 현실이 아닌 다른 시공에 기대야만 했습니다. 한해, 두해, 그렇게 많은 계절이 지났습니다.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조바심을 내도 시간이라는 것을 잡을 수 없다는 걸요. 좋은 날씨든 나쁜 날씨든 그냥 지나간다는 것을.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는 것을. 그리고 10월은 잊지 않고 다시 되돌아온다는 것을. 제가 올려다 본 하늘은 저마다 그 계절의 고유한 모습으로 다가와 모두 10월의 하늘처럼 빛날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하여 그것은 더이상 겨울이 가까이 왔음을 알려주는 신호가 아닌  내가 이 계절의 한복판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1차원적으로 10월의 하늘은 좋은 순간이라는 한 점에 머물렀다가 금새 지나가 버리는 직선의 시공을 상징합니다. 의미를 부여하고 붙잡고 있기에 그 시간은 너무 짧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의미를 부여받지 못한 시간들과  더 많은 삶을 함께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시간과 계절들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질 수 없습니다. 텅빈 도화지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파란색 도화지인지, 흰색 도화지인지만 다를 뿐입니다.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는 <알레프>에서 산다는 것은 경험하는 것이지,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앉아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죠. 날씨가 좋으면 기분이 좋고, 날씨가 우중충하면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있지만 날씨가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하게 놔둬서는 안되겠죠.

이제 의미부여같은 것은 집어치우고 삶의 한가운데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런, 또 그냥 앉아서 생각만 하고 있네요. 톨스토리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등장인물 레빈의 독백이 문득 떠오릅니다.

"나는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가, 이것을 생각하면 레빈은 그 해답을 찾을 수가 없어 절망에 빠지곤 했다. 그러나 이것에 대해 자문하는 것을 그쳤을때는 마치 자기가 무엇이고 무엇때문에 사는지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에 따라 삶의 의미를 찾아 명확히 만드는 능력이 다릅니다. 생각이 많고 비관적인 사람에게는 삶의 의미를 찾는 길이 녹록치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과 극단에 있는 것이 그리스인 조르바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행복한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는 명확하지만 불행한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는 불분명합니다. 행복한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찾기 쉽습니다.  의미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들은 이미 주어진 것, 가지고 있는 것, 해야 할 일들에서 너무도 명확하게 삶의 의미를 찾습니다. 단순하고 행동지향적인 부류중에는 물질적인 것에서만 삶의 의미를 찾아 죽을 때까지 이를 놓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좋다 나쁘다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죠.

삶의 의미같은 것이 필요없다는 게 아닙니다만, 너무 집착하지 않는게 어떨까요.  어느날 갑가지 삶의 의미 자체가 없어지면? 젊은 시절 '넌 내 삶의 의미이자 전부야'라며 말했던 이성간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우리는 잘만 살아갑니다. 삶의 의미를 찾아 아둥바둥거리는 것은 그만두어야겠습니다. 삶은 경험함으로써 저절로 완성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누군가  말했듯이 삶이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경험해야 할 신비가 아닐까요.

이 계절,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의 한가운데에서 경험으로 충만한 삶이 되기시를 기원하며 오늘 편지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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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3 20:53:54 *.169.230.150

하늘을 볼 줄 아는 동물을 영물이라고 하더군요...   세상에서 가장 크고 가장 가까이 느낄 수 있는 것을...  늘 잊고 사는 듯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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