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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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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4일 12시 26분 등록

마음 편지에서 여러 번 썼듯이 저는 본성이 내성적인 사람입니다. 낯선 사람을 만나거나 새로운 환경에 놓이면 마음속의 어색함을 다스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난 연휴에는 성당에 주말 봉사를 하러 갔다가 다른 봉사자분들과 어떤 말을 꺼내면 좋을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회사에서도 다른 사람들과 두루 잘 지내고, 개별로 티타임을 할 때는 말을 잘 하지만, 여러 사람이 모이면 저는 자연스럽게 입을 다물게 됩니다. 단체 대화는 배구나 배드민턴의 랠리처럼 말이 왔다 갔다 하면서 재미가 생성되는 느낌인데, 저는 잘 알고 있거나 관심 있는 주제가 아니라면 그런 가볍고 경쾌한 토스가 잘 안됩니다. 제가 뭔가 말하고 나면 뭔가 대화가 끝난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자주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랠리를 옆에서 구경하는 갤러리를 주로 자처합니다.


다행히 이런 성향의 사람이 저만 있는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작가 켄 리우의 <상태변화>라는 단편에는 아이가 태어나면 사물화된 영혼이 함께 세상에 태어나는 세계가 나오는데요. 주인공 리나의 영혼은 각얼음 속에 담겨 있었습니다. 그녀는 얼음처럼 서늘하고 사교성이 없는 사람으로, 리나가 사람들이 모인 곳에 다가가면 공기가 갑자기 서늘해지고, 오가던 대화도 잠잠해졌습니다. 재치 있는 말은 시들하고 바보 같은 소리로 들리고 언쟁은 가라앉았죠. 그래서 그녀는 주로 자기 자리에서 책을 읽습니다. 아마 그녀도 자신과 비슷한 친구들을 만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책에서 그녀를 만난 것처럼요.


사실 내성적인 사람이라도 쓸 수 있는 간단한 대화 도구들은 있습니다. 가장 유용한 건 주요 주제를 몇 가지 추려서 그에 대한 최신 동향을 파악하고 스몰토크에 활용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늘 통하는 건 아닙니다. 컨디션이 별로거나, 최신 기사를 놓치는 등 여러 변수가 생길 수 있습니다. 운 좋게 스몰토크를 훌륭히 해내더라도 언제나 다음 스몰토크에 대한 불안감, 스몰토크가 발생할 수 있는 공간(예를 들어 회사 엘리베이터 같은) 곳에서는 불안감을 느낍니다. 그래도 주변에 자신을 맞추기 위한, 상대에게 친밀함을 드러내기 위한 노력들을 끊임없이 합니다.


그러다 최근에 어떤 보컬 코치의 인터뷰 영상을 보았습니다. 그녀는 목소리를 사용하는 직업을 가지면서,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목소리에 자신을 맞추며 커리어를 쌓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점점 지치고 힘들어서 결국 자신의 원래 목소리를 제대로 사용하는 법을 익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나’라고 말할 때 가장 편안한 목소리가 나오며, 자신의 목소리는 매우 낮은 편에 속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도 ‘나’라고 조용히 말해보니 조금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개인이 가진 본연의 자연스러움. 내가 아무런 긴장 없이 말하는 상태. 말하자면, ‘제로(0)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제로의 목소리가 글을 쓸 때와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속에 있는 것을 꺼내 쓰는 과정이 가장 나다운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마음 편지만 해도 제가 ‘쓰고 싶다’고 생각한 것에 대해 주로 쓰게 되니 다른 누구의 목소리가 아니라 나의 목소리에 맞게 쓰게 될 것입니다.


날씨, 기분, 상태, 사람, 책같이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것들은 아주 많이 있습니다. 그 안에서도 자신의 영점을 찾아나가는 것은 자신의 중심을 찾아나가는 일입니다. 소모되는 에너지를 줄이고 순간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스몰토크에 관해 오히려 제가 고민해 봐야 했던 것은 능숙하게 타인과 대화를 하는 방법이 아니라 어색함을 받아들이고 거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법, 상대에 대한 선의만 남기고 대화를 이끌어가는 법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자 누군가와의 대화가 두렵다기보다는 그 사람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호기심에 더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제 안에는 상대에게 ‘괜찮은 사람으로 눈에 띄고 싶다’는 열망이 크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향은 반대로 자신의 내면을 향하고 있으니 이 소망은 달성되기 어려운 소망이겠지요. 결국 저는 제가 할 수 있으면서도 스스로가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교집합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첫걸음이 이 영점 찾기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최근 저희 팀의 구성에도 변화가 있습니다. 새로운 인원이 합류했고 저도 파트를 바꾸게 되어 새로운 사람들과 일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마다 열망과 압박의 길과 자연스러움과 어색함의 길, 이 갈림길에서 저는 늘 호흡을 고릅니다. ‘상대도 나와 함께 오랜 시간 회사에서 보내야 하니 느리더라도 의사소통을 할 때는 서로 편안한 관계를 형성하는 게 좋다’하고 생각합니다. 결과가 어떨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일단 제 마음은 좀 편안해진 것 같습니다. 불교에서는 속세의 일이 수행과 같다고 하는데 참으로 그렇습니다. 수행하듯이, 끈질기게 자신을 잃지 않는 노력을 계속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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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3 15:34:12 *.169.227.149

선수들의 고도로 숙련된 모든 기술적 전술적 행동들은  서툴고 어설픈 초기 행동의 학습과 반복의 숙련을 통해서 이루어 진 것입니다. 

  보통의 문을 타고 난 우리가 잘 하고 싶다면 방법은 단 하나 뿐입니다.  몇 번 이고 몇 번이고 잘 할 수 있을 때가지 반복해서 연습해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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