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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11일 11시 06분 등록


화요편지 - 종종의 종종덕질

2011.1.11


무취미한 당신에게 지금 필요한 그것, 오디션 프로그램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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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습니다. 추워요.


찬 바람이 쌩쌩 불고 푹푹 쌓이는 대설 소식이 예고된 오늘, ‘이불 밖은 위험해…’를 되뇌이다 제가 남겨둔 이불 동굴 속에서 고개만 들어 배웅을 하는 고냥이를 부러워하며 현관문을 박차고 출근길에 나섰습니다. 오늘 날이 이러려니까 어제부터 춥고 건조하고 쨍한 K-겨울 날씨가 아니라 축축한 습기가 뼈 속까지 파고드는 것 같은 요상스런 날씨, 그러니까 뭔가 샌프란시스코스러운(?) 겨울날이 도래하는 바람에 저는 진작부터 목과 어깨에 담과 관절염이 찾아오리라는 예감에 떨고 있습니다. 이런 날씨엔 그냥 아랫목에 누워 구운 가래떡이나 조청에 찍먹하면서 묵혀둔 은하영웅전설 애장판을 정독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이십N년차 직장인에게 그런 자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아직 해도 채 뜨지 않은 어스름 새벽 출근길에도 낭만은 있고, 아무도 없는 한적한 사무실을 완벽한 나의 세계로 만들어줄 방법은 있지요. 자 그럼 오랜만에 나홀로인 사무실을 음악다방으로 만들어 볼까요? ^^ 첫 선곡은 정승환의 눈사람입니다. 안 그래도 눈 소식이 예고되어 있다 보니 멜론에 가장 먼저 뜨는 그의 곡이예요. 언제 들어도 아련하고 처연한 목소리로 나직하게, “버거울 땐 언제든 나의 이름을 잊으라고 하네요, 승환군이. 하지만 촌티 작렬의 스웨터 차림으로 등장한 이 어린 가수지망생의 첫 등장을 저는 잊지 못합니다. 정승환은 지금은 종영된 S본부의 오디션 프로그램 ‘K팝스타출신이죠. 노래하겠다고 엄마 속 좀 썩였을 것 같은, 딱 옆집 고딩 아들래미 느낌의 그가 무대에 섰을 때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공기반 노래반 박진영 선생과 지금은 볼 수 없는 양선생, 그때까지만 해도 참 존재감 없었던 기획사 안테나의 유희열 선생이 그의 노래 첫 소절을 듣고 지었던 표정도 잊지 못합니다. 잊혀진 명곡 사랑에 빠지고 싶다는 이 고딩 가수지망생 덕분에 정말 십여년 만에 차트 역주행을 하게 되었죠.


저는 오디션 프로그램 덕후입니다. 오디션에선 어쩌면 자신도 몰랐을 반짝이는 재능이 발현되는 순간, 품어둔 재능을 두렵지만 세상에 펼쳐 보이는, 그래서 이제 이 재능이 다하는 순간까지 달릴 거라고 세상에 커밍아웃하는 순간들이 매번 등장합니다. 물론 오디션에 임하는 당사자들의 마음은 바싹바싹 타겠지만, 보는 제 입장에선 이런 멋진 재능의 향연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축복 같습니다. 나는 이제 내 세상을 구축할거야. 다시는 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 라는 출사표와도 같은 어린 가수 지망생 또는 무명 가수의 첫 등장을 보고 있노라면 제 맘까지 그 간절함이, 그 결연함이 도달해서 시종일관 궁서체로 무대를 지켜보게 됩니다. 그래서 보다가 잘 울어요. 갱년기라서가 아니고 그냥 그 맘이 너무 내 것 같아서 그래요. 내 아들 것 같기도 하고요. 제 아들도 혼자 음악을 만들고 노래하는 사람이거든요.


공중파 3사를 넘어 종편과 케이블을 휩쓸어버린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을 거의 하나도 빠지지 않고 시청해온 1인으로서, 오디션 프로그램 역사상 정말 손에 꼽는 순간이 정승환의 등장이었지요. 물론 그 외에도 목 늘어진 티셔츠 차림으로 등장한 에어컨 기사의 완벽한 대반전이었던 보컬 교과서 허각의 무대, 경상도 시골도 아니고 몽골 초원에서 날아온 무공해 남매 듀오 악동뮤지션의 무한 성장판을 확인한 다리 꼬지마무대도 제 나름 선정한 오디션 역사의 전당에 고이 모셔져 있습니다. 그렇게 오디션을 통해 발견한 가수는 그 첫 등장부터 레전드 가수가 될 때까지 성장과 굴곡의 역사를 죄다 지켜보게 되니까, 내가 키운 가수라는 즐거운 착각과 함께 남다른 애착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이제 시간이 있는데, 취미를 만들어 봐야 할 것 같은데, 뭐가 좋은 것인지 내가 뭘 좋아하는 지 모르겠다고 고민을 호소하는 지인들을 요즘 들어 종종 마주하게 됩니다. 제 주변인들이 대개 일중독자들인 것인지, 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것처럼 가열차게 살다가 이제 원하든 원치 않던 퇴직을 생각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또 그렇지 않더라도 일만 생각하는 삶에서 좀 벗어나야겠다는 깨달음은 얻었는데 정말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르겠데요. 음악 좋아해? 영화는 어때? 이런 저런 걸 물어보아도 그냥 딱히 재미도 없고 들어도 좋은 줄을 모르겠다고, ‘나는 취미도 못 만드는 인간인가라며 또 자조하기도 해요. 그런데 뭔가를 잘 하려면 일단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 공부, 살림, 뭐든지요. 거기에 즐기는 것, 취미도 해당된다고 봅니다. 들어봐도 그냥 낯설기만 한데 에스파가 아니라 방탄소년단인들 그 노래가 좋겠어요? 왜 공자님이 한 말씀 하셨잖아요.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 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고요. 알지도 못하는 데 즐길 수 있을 리가 만무하지요. 그 말은 뭐든 일단 알아야, 그러니까 낯설음을 줄여야 좋아하게 되고, 좋아해야 즐길 수 있게 된다는 말씀도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나름 음악 좀 들었던 시절이 어언 삼십여 년 전, 고딩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면 요즘 나오는 음악들이 죄다 외계어 같을 수 밖에 없겠지요


그럴 때 다시 음악으로 돌아가는 길을 발견하게 해 줄 멋진 입문식으로 저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추천합니다. 내 아들 같은, 내 조카 같은, 옆집 삼촌 같고 딸래미 같은 무명의 가수들이 나의 최애로, 만인의 가수로 성장하는 순간에 함께 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게다가 요즘은 시청률과 소비의 주역인 베이비부머들, 40-50대를 무시할 수 없는 지라 70-90년대의 선곡을 주로 하는 싱어게인같은 레트로스러운 프로그램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어서 오디션 프로그램 입문이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이런 프로그램들을 따라가다 보면 요즘 어떤 곡들이, 어떤 목소리가, 어떤 편곡이 트렌디한지 저절로 알게 되고, 난해하다는 요즘 곡들도 조금씩 귀에 들어오게 되거든요. 이건 또 이렇게 듣는 맛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즐길 수 있는 음악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은 나와 취향을 나눌 사람의 폭이 넓어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요즘 곡들 좀 아는 척 할만하다 싶으면, 자식들과의 대화는 물론 직장에서 나보다 스무살은 어린 팀원들과도 대화가 통하거든요. 그래서 또 적극 추천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질수록, 취향으로 친구 먹은 사람들과 손잡고 최애 가수 콘서트에도 가고 다 같이 방방 뛰는 뮤직페스티벌에도 가고 하면서 중년의 여가를 폼나고 알차게 함께 보낼 수 있으니 좀 좋습니까. 실은 그렇게 해서 말년에 같이 놀 동지들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 놓는 게 제가 이 편지쓰기를 시작한 사심 가득한 집필동기랍니다...^^; 


,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홀로 모닝 수다를  풀어내다 보니 어느새 사무실이 북적북적해졌네요. 이어폰을 꽂고 있으면 이렇게 시간이 가는 것도 모른다는 것이 하나 주의할 점이긴 합니다. 이제 가열차게 일터로 돌아갈 타임이지요. 오늘 여러분을 위한 제 추천곡은 정승환 군의 숨겨진 명곡, ‘네가 온다입니다. 아침부터 그의 노래가 찾아와 주어서 오늘 제 하루는 꽤 근사하게 시작되었답니다. 여러분의 하루도 그러하기를!


정승환 네가 온다

https://youtu.be/p3yeEpC_f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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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ood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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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13 20:46:52 *.169.227.25

세계화 되어 있는 요즈음,  전 선수들에게 그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10년 이상을 하루 평균 3~5시간 운동한 국가대표 선수가 재능 없고  노력하지 않는 선수가 있을까요?  모두 가지고 있으므로 그것들은 중요한 요인이 아닙니다. 

거기에 도달한 선수들은 거의 자신의 재능의 95 % 이상을 개발했으며 결과를 좌우하는 나머지 1 ~ 2%  의  의해 결정된다고 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작은 부분이 바로 세계적인 선수로 발돋움 할지 그냥 대표 선수로 마감할 지를 결정하는데  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지도자를 만나고 큰 시합을 뛸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심리적인 스케일을 키울 수 있느냐 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아주 잘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과 노력 이외의 조건과 기회라는 것이 주어져야 되는 것 같습니다. 

백지 한 장 차이인 그런 선수들을 바라보면,  자칫 영원히 극복할 수 없는 철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디션은 참 많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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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23 10:42:54 *.166.254.112

그렇겠네요. 재능과 피나는 노력으로 갈고 닦은 선수들에게 '오디션'이라는 '투명하고 수평적인 기회의 장' 이 갖는 의미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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