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장재용
  • 조회 수 720
  • 댓글 수 1
  • 추천 수 0
2019년 6월 5일 13시 53분 등록

자유의 공기 방비엥 Vang vieng’

 

성원에 힘입어 쏘다닌 곳을 엄선하여 한번 더 연재한다. 왕위양 Vang Vieng,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에서 북쪽으로 160km 지점에 위치한 마을이다. 옛 수도 루앙프라방 Luang Prabang과 지금의 수도 비엔티안의 중간에 있다. 비엔티안에서 13번 국도를 타고 가면 차로 3시간 반쯤 걸린다. 서양의 배낭 여행자들은 아름다운 마을을 잘도 찾는다. 그들이 홀딱 반해 입 소문을 타고 드나들다 왕위양은 방비엥 Vang Vieng이 됐다. 우리에겐 한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직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다. 한적한 강가, 작은 마을에 지나지 않았던 방비엥은 사람들이 많이 찾게 된 후로 어엿한 도시의 풍모를 갖추려 한다. 때문에 예전 같지 않다는 이유로 그곳을 안타까워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방비엥을 처음 만난 후로 울적하거나 불안해 질 땐 금단 증상에 손을 더듬듯 그곳을 찾았다.

 

방비엥은 자유다. 방비엥을 즐기는 멋진 방식은 이렇다. 우선 가자마자 취한다. 오해하지 마시라. 나는 술고래가 아니다. 그러나, 낮술 마신 날은 현실보다 강한 날이다. 생각보다 우리는 현실에 이긴 날이 많지 않다. 승리하며 시작하겠다는 굳은 결심의 리츄얼이다. 주위가 기뻐진다 싶을 때쯤 거리로 나선다. 길지도 넓지도 않은 흙 길엔 차 대신 진흙을 온 몸에 묻힌 사람들이 다닌다. 낮이나 밤이나 그렇다. 그 거리를 나사가 풀린 사람마냥 밝게 웃고 다니면 누군가를 꼭, 반드시 만나게 되어 있다. 그 또는 그녀는 여행자일수도 있고 물건을 파는 사람일수도 있고 토박이 마을 주민일수도, What a small world! 실제 자신과 아는 사람일수도 있다. 누구를 만나든 어떤 방식으로 만나든 오늘 남은 시간, 내가 해야 할 일과 내일 가야 할 곳이 정해지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방비엥에서는 계획을 한 것과 우연에 맞긴 결과가 같다. 그러므로 이 작은 마을에서 맛 집을 찾아 다니거나 더 나은 숙소를 얻으려 애쓰지 말자. 모두가 여행자요 모두가 한 마을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리니.

 

다음 날은 느지막이 일어나 아무 까페나 식당에 가 털썩 앉는다. 이곳에 모든 음식점들은 다리를 뻗고 걸터앉게 되어 있다. 그렇게 반나절 멍을 때리고 앉아 있으면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둥글다는 것을, 하루는 인정머리 없이 그어진 날짜변경선을 경계로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렇게 생겨먹은 것임을 알게 된다. 그것은 마치 유한하여 무한함을 알게 되듯 무한이어서 유한해지는 어떤 지점처럼 그저 있는 것. 나는 왜 없지 않고 있는 것인가, 하는 실존의 문제처럼 하루는 사라졌다 뿅하고 다시 있게 되는 것이다. 지나는 개가 짖는다. 어쨌든 나는 특별할 것 없는 지구별 탑승객, 방비엥에서 하루를 씹어 먹으리, 가장 맛나는 그 하루를. 친구나 일행이 없어도 상관없다. 방비엥을 떠날 땐 진흙과 함께 뒹굴며 전우애로 뭉쳐진 세계 각 국의 베프가 곁에 있을 테니. 이런 건 경험해 봐야 옳다.

 

꼭 이와 같이 거리를 거닐며 회사 동료들을 만났고 어리숙하게 지갑과 여권을 잃어버려 어쩔 줄 모르는 독일 청년을 만났고 이름 모를 자유들을 어깨 부딪히며 만났다. 라오스 첫 술 병을 방비엥에서 얻게 되어 영광이다. 픽업 트럭 트렁크에 누워 쏟아지는 별과 그렇게 하루가 둥그니 마니운운하며 대화하며 잤다, 고 한다. 다음 날 일어나 산에 오르려던 계획은 술병으로 인해 무산됐지만 여행자 코스프레에 즐겁기만 하다. 방비엥에서 얻은 술병과 두통은 이틀이 지나야 멎었다. 자유의 약발이라 여긴다.

 

다시 찾은 그곳에서 진경眞景을 보았다. 아침 나절 물안개가 카르스트 지형으로 우뚝 솟은 산과 산 사이에 휘돈다. 어제 내린 비로 강물이 불어, 흘러가는 모습이 늠름하다. 아침 맑은 숲 안에서 숨을 토한 뒤 입을 벌린다. ‘늑골 새새가 들뜨고 벌어지는 느낌이 들 만큼공기를 깊이 들어 마신다. 쓰읍, 지구가 주는 선물이다. 전날 방비엥 구석 구석을 돌며 암벽을 등반했다. 쏟아지는 빗줄기에도 비 한 방울 흐르지 않는 마른 석회암을 올랐다. 몸을 비비며 산과 산을 기어 올랐다. 우거진 정글에서 양손을 휘저으며 걸었고 바위와 바위 사이를 줄을 타고 오르며 저 멀리서 방비엥을 봤더랬다. 욱신 쑤시는 몸을 일으켜 어제 오른 산을 바라본다. 오래 전, 목숨을 걸고 히말라야를 함께 등반했던 악우岳友가 멀리서 와 내 옆에 있다. 앞은 진경산수화 같은 풍광, 바람이 한 줄기 지나갔고 머리가 엉클어졌다 가라 앉는다. 우리가 살아서 여기 있는 게 신기하다 말한다. 맞다, 잘 살고 못 살고 중요하지 않다. 명리도 실리도 산만큼 못하다. 살아있어 좋다. 한가한 아침이 얼마 만인가.

 

누군가 자신의 명리와도 바꾸고 싶은 것이 진경을 보는 한가함이라 했다. 문사가 부족해 이 아름다움을 놓고 해석하지 못하는 중에 문득 열하일기에서 연암이 읊었던 시가 떠오른다. 연암은 중국 연경에 다다라 시를 썼다. 아마도 방비엥과 같이 올록볼록 솟은 카르스트 지형과 산허리에 둘러진 구름을 보고 감탄하며 쓰지 않았나 싶은 것이다. “말을 촉도난을 읊었더니만 / 오늘 아침 이내 몸은 진관에 드네 / 저녁 구름 푸르스름 어부수를 막았고 / 아침 숲은 시뻘겋게 조서산을 이었네 / 글자를 배운 것이 평생 후회로구나 / 명리를 터이니 한가한 바꿀까” -열하일기, 길에서’ (路上) 일부-

IP *.161.53.174

프로필 이미지
2019.06.07 14:56:44 *.72.185.244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155 [월요편지 125] 팔굽혀 펴기 7년 동안 매일 했어도 이 모양인 이유 [2] 습관의 완성 2022.10.23 961
4154 [라이프충전소] 바뀐 건 없다, 단지 [6] 김글리 2022.10.21 671
4153 검은 끝에서 생명이 가득한 자산으로 [1] 어니언 2022.10.20 458
4152 [수요편지] 작은 습관에 대한 단상 [1] 불씨 2022.10.19 505
4151 [월요편지 124] 나의 버킷리스트, 죽기 전에 하지 않으면 후회 할 것들 [1] 습관의 완성 2022.10.16 746
4150 메달을 받다! [1] 어니언 2022.10.13 475
4149 [수요편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1] 불씨 2022.10.12 636
4148 화요편지 - 댄스 서바이벌? 리더십 서바이벌! 종종 2022.10.11 505
4147 [라이프충전소] 내 인생의 길잡이 찾기 [1] 김글리 2022.10.07 618
4146 숙제에서 ‘팔아야 할 비즈니스’로 [1] 어니언 2022.10.06 496
4145 절실함의 근원, 그리고 열정과 의지 [1] 불씨 2022.10.04 598
4144 화요편지 - 고양이는 고마웠어요 [1] 종종 2022.10.03 479
4143 [라이프충전소] 약점극복 스토리에 숨은 진짜 의미 [2] 김글리 2022.09.30 590
4142 기질과 강점을 목격하다 [1] 어니언 2022.09.29 462
4141 [수요편지] 나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1] 불씨 2022.09.28 510
4140 [월요편지 123] 최악의 물 마시는 습관 습관의 완성 2022.09.25 739
4139 [라이프충전소] 불안을 활용할 몇가지 방법 [1] 김글리 2022.09.24 595
4138 [수요편지] 오!늘! [3] 불씨 2022.09.21 542
4137 화요편지 - 오늘도 틀리고 내일도 [1] 종종 2022.09.20 574
4136 [월요편지 122] 아내와 유튜브를 시작한 이유 [6] 습관의 완성 2022.09.18 6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