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제산
  • 조회 수 747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9년 6월 9일 23시 24분 등록
안녕하세요.
이번주 편지는 '자유학년제, 인문독서를 해야하는 이유'에 대해 썼습니다. 

 

2016년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김정은·유형선 공저, 휴머니스트)을 펴내고 만 3년이 지났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이던 큰아이가 중학교 2학년이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책을 끼고 살던 아이였습니다. 그러나 중학생이 되고나서 고교입시 준비라는 현실과 마주하며 책과 멀어지는 듯 했습니다(저희가 사는 파주는 고교비평준화 지역입니다). 초등학생이었을 때 책읽기를 좋아했던 아이는 혼란스러워 했습니다. 책을 계속 읽을 것인지, 책읽기를 멈추고 입시준비를 할 것인지 갈등했습니다.  

 

부모세대가 학력고사와 수학능력시험을 치르고 대학에 진학했다면, 지금의 아이들은 학생부 종합전형을 준비합니다. 학교 시험은 물론 교과 외 활동도 잘 챙겨야 합니다. 내신과 생활기록부에 덧붙여, 한 편의 잘 쓰인 소설을 닮아 소위 자소설이라고도 불리는 자기소개서까지 써야 합니다. 요컨대 우리의 십대들은 학창시절 내내 입시제도라는 미로를 헤매며 끊임없이 자신이 어떤 인재인지를 ‘증명’ 해내야 합니다.  

 

입시위주의 교육제도와 직장생활은 점수와 등급에 따라 순위를 매긴다는 점에서 서로 닮았습니다. 점수와 등급은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돌아보지 않고 전체의 부속으로 살아가도록 조련하는 매우 효율적인 도구입니다. 반복적으로 점수와 등급이 매겨지는 시스템 속에서 개인은 시스템이 요구하는 부속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시스템 안에서 안락함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시스템 속에서 안식처를 찾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스템은 영원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이러한 변화의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는 추세입니다. 시스템이 변화할 때, 시스템의 부속들은 나아갈 길을 잃어버립니다. 지금껏 시스템이 부여했던 점수와 등급이라는 길만을 쫓아갔기에, 시스템이 알려주지 않는 길을 가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80~90년대에 중고등학교의 사지선다형 주입식 교육 속에서 경쟁하며 자랐고, 서열과 등급이 반복적으로 매겨지는 교육시스템 속에서 입신양명(立身揚名)을 가장 중요한 인생목표로 여겼습니다. 그 결과 명문대 졸업장을 손에 쥐었고 제법 괜찮은 기업에서 정규직으로 살았습니다. 온 힘을 다해 시스템에 길들여지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마흔을 넘기며 장기 파업과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음을 경험했습니다. 지난 40년 간 공들여 세운 모든 것들이 결국 ‘뿌리 없는 나무’였음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마흔이 되도록 ‘나’로 살아본 경험이 없었습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내가 과연 어떤 존재인지 깊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학생과 직장인으로 사는 동안 오직 나에게 매겨지는 점수와 등급만 바라보았습니다. 점수와 등급을 높이며 시스템이 원하는 인재상이 되기 위해 온 열정을 쏟았습니다.  


‘시스템의 일부로 살기보다 나 자신으로 살아야 한다.’
마흔의 위기를 겪으며, 내가 누구인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했습니다.  한 권 두 권 책을 찾아 읽으며 자연스레 인문고전에 빠져들었습니다. 인문고전이 보여주는 세계는 넓고도 깊었습니다.


 인문고전의 스펙트럼은 신화부터 철학, 역사, 문학, 과학 등 대단히 다양합니다. 인문고전을 읽으면 내 자신이 수많은 다양성을 지닌 하나의 거대한 우주라는 진실과 마주합니다. 점수와 등급으로 서열이 매겨지던 단순한 자아 정체성과는 비교할 수 없는, 광활할 우주처럼 경이로운 세계를 자신의 내면에서 발견합니다. 인문고전 읽기는 나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길을 비추어주었습니다. 그동안 시스템 속에서 점수와 등급을 부여받으며 주어진 길을 가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인문고전 읽기를 하면서 제가 깨달은 것입니다.
첫째, 인문고전 속 다양한 가치를 발견하면서 나의 정체성 또한 다양하며 나는 변화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자각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시스템이 규정할 수 없으며, 나를 변화시키는 힘은 나의 내부로부터 나옵니다. 나는 내가 될 수 있습니다.


둘째, 인문고전 읽기를 통해 나를 둘러싼 시스템을 통합적으로 인식하는 연습을 할 수 있습니다. 높고도 깊은 시선이 생깁니다. 긴 세월 동안 시스템이 변화해온 상황들을 거시적으로 바라보면서, 지금의 시스템을 총체적으로 바라보는 눈이 생깁니다.  


셋째, 현 시스템을 비판적으로 보기 시작합니다. 시스템에서 내가 취해할 바가 무엇이고 거부하거나 개선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사고하는 연습을 할 수 있습니다. 인문고전에는 저자들이 자기 시대의 시스템을 치열하게 고민하며 개입했던 흐름이 담겨 있습니다. 인문고전을 읽으면서 나를 둘러싼 시스템을 직시하며 시스템과 새로운 관계 맺기를 할 수 있습니다.


나의 성장기를 돌아봅니다. 입시위주의 교육제도는 나를 완성시키기보다 오히려 나의 정체성이 찢겨지고 해체되는 경험을 안겨주었습니다. 획일적인 평가 시스템 속에서 나만의 정체성은 드러내기보다는 깊숙이 숨겨야 했습니다. 그 시절 읽었던 <어린 왕자>와 <갈매기의 꿈>을 지금껏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는 이유는, 찢기고 상처받던 어린 영혼이 인문고전을 통해 치유 받았기 때문입니다.


마흔 중반을 지나가는 지금, 명문대 졸업장이나 입신양명과는 비교할 수 없이 소중한 가치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시 십대 청소년으로 돌아간다면, 평가와 입시 시스템에 흔들리기보다 삶의 소중한 가치들을 추구하며 살고 싶습니다. 자신을 탐구하고, 자연과 이웃을 살피며, 어떤 태도로 인생을 살아갈지 고민하는데 시간을 보낼 것입니다. 인류의 스승들이 남긴 인문고전을 차분히 읽으며 인생을 바라보는 높이와 깊이를 배울 것입니다.


점수와 등급이 매겨지는 현행 입시 제도에 자녀의 성장기를 통째로 맡길 수는 없었습니다. 자녀를 둔 부모로서 성장기 자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지 고민했습니다. 자녀를 입시 전문 사교육 시장에 맡기지 않고, 자녀가 자발적으로 ‘책 읽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자고 다짐했습니다. '독서와 토론‘을 1순위에 두기로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중학생이 책을 읽을까요? 십대 청소년이 책을 좋아하고 사랑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험과 평가에서 자유로운 중학교 1학년 자유학년제 기간 동안, 온가족이 인문고전 읽기와 가족 토론이라는 실험에 동참했습니다. 십대 성장기에 인문고전과 친구로 지내는 삶을 위해 온 가족이 동참한 세 가지 기준을 나열합니다.


첫째, 책 읽을 시간을 마련합니다. 당연히 사교육과 스마트폰 다이어트를 해야 합니다. 도움이 꼭 필요한 경우에만 사교육을 받습니다. 큰 아이는 수학 학원 한 곳만 다닙니다. 나머지 시간은 모두 자유시간입니다. 저녁 9시 이후에는 스마트폰 사용을 하지 않는 ‘스마트폰 셧다운제’를 가동합니다.


둘째, 진정한 배움을 실천할 수 있는 분위기를 가정에서 조성합니다. 성적에 대한 언급을 자제합니다. 점수와 등수는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배움은 평생토록 이어질 장기전입니다. 부모가 먼저 인문고전을 읽으며 깊게 생각합니다.


셋째, 책 읽는 재미를 느낍니다. 아이의 고민이나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책 선정도 아이의 선택에 맡깁니다. 아이가 선정한 책을 부모가 읽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아이의 이야기를 부모가 귀 기울여 듣습니다. 하루 한 시간, 책 읽는 시간과 주말 저녁 가족 독서 토론 시간을 가집니다.


자유학년제 기간을 ‘독서와 토론’으로 보내고 나서 계속 독서습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입시위주의 교육제도는 복잡한 미로 같습니다. 미로 속에 놓인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인문고전을 권합니다. 점수와 등급에 따라 갈려진 길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자신만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인문고전을 읽고 생각하기를 권합니다. 때로 길을 잘못 들 수도 있고 내 길이라고 생각했던 길이 사라질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내면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 낼 수 있도록 인문고전을 읽고 토론하기를 권합니다.  


입시위주의 현 교육제도에 우리 아이들을 온전히 맡길 수 없다는 의견에 동의하신다면, 이 길을 함께 가기를 제안합니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인문고전이라는 진리의 샘을 보여주는데 동참하기를 권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유형선, 김정은 드림   
IP *.224.128.197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156 [수요편지] 습관의 완성은 본성(本性) [1] 불씨 2022.10.25 530
4155 [월요편지 125] 팔굽혀 펴기 7년 동안 매일 했어도 이 모양인 이유 [2] 습관의 완성 2022.10.23 990
4154 [라이프충전소] 바뀐 건 없다, 단지 [6] 김글리 2022.10.21 684
4153 검은 끝에서 생명이 가득한 자산으로 [1] 어니언 2022.10.20 474
4152 [수요편지] 작은 습관에 대한 단상 [1] 불씨 2022.10.19 554
4151 [월요편지 124] 나의 버킷리스트, 죽기 전에 하지 않으면 후회 할 것들 [1] 습관의 완성 2022.10.16 778
4150 메달을 받다! [1] 어니언 2022.10.13 489
4149 [수요편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1] 불씨 2022.10.12 671
4148 화요편지 - 댄스 서바이벌? 리더십 서바이벌! 종종 2022.10.11 522
4147 [라이프충전소] 내 인생의 길잡이 찾기 [1] 김글리 2022.10.07 639
4146 숙제에서 ‘팔아야 할 비즈니스’로 [1] 어니언 2022.10.06 513
4145 절실함의 근원, 그리고 열정과 의지 [1] 불씨 2022.10.04 648
4144 화요편지 - 고양이는 고마웠어요 [1] 종종 2022.10.03 491
4143 [라이프충전소] 약점극복 스토리에 숨은 진짜 의미 [2] 김글리 2022.09.30 618
4142 기질과 강점을 목격하다 [1] 어니언 2022.09.29 478
4141 [수요편지] 나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1] 불씨 2022.09.28 525
4140 [월요편지 123] 최악의 물 마시는 습관 습관의 완성 2022.09.25 754
4139 [라이프충전소] 불안을 활용할 몇가지 방법 [1] 김글리 2022.09.24 613
4138 [수요편지] 오!늘! [3] 불씨 2022.09.21 559
4137 화요편지 - 오늘도 틀리고 내일도 [1] 종종 2022.09.20 5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