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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10일 03시 09분 등록




마음편지 독자님들 좋은 주말 보내셨나요?

주말에 보내야 할 '맛있는 편지'를 어쩌다 보니 주말이 다 지난 지금에야 보내고 있네요. 덕분에 월요 편지와도 꼬였구요. 죄송합니다. 지난 2 <마음을 나누는 편지>를 처음 보냈던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마음을 다해 쓰도록 하겠습니다


지난주에는 제가 빵을 만들기 시작했다가 금방 그만뒀다고 했었지요. 본격적으로 베이킹을 하게 된 건 10년 쯤 지난 후였습니다. 10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유럽에서 회사를 다니다가 미국으로 학교를 갔고, 졸업한 뒤 한국에 돌아와서 새로운 회사에 취업을 했습니다. 그 회사에서 6년 쯤 열심히 일을 하다 그만 두고 쉬고 있을 때 였지요. 심심할 때 보라며 친구가 권해준 <카모메 식당>이라는 영화를 보고 있을 때 였습니다 


"저기 식당 말인데요. 계속 이렇게 손님이 안 오면 헬싱키 안내서에 일식집으로 광고를 내면 어떨까요? 손님이라봐야 토미 밖에 없고... 사실 손님이라 할 수도 없죠. 늘 와서 공짜 커피만 마시고 가는데..."

"토미는 우리 식당 첫 손님이니까 커피는 계속 무료에요."

"일본 사람은 외국에 나가도 일본 음식을 제일 좋아하잖아요. 저도 그렇고요. 그래서 외국에 여러 날 있으면 일본 음식이 엄청 먹고 싶어질 거에요. 그런 사람들에게 이 가게를 알리면 손님이 많이 늘어날 것 같은데요."

"하지만 안내서를 보고 찾아오는 일본 사람이나 일식하면 초밥이나 정종 밖에 모르는 사람은 우리 가게 분위기하곤 안 맞는 것 같아요."

"분위기요?"

"여긴 레스토랑이 아니라 동네 식당이에요. 근처를 지나가다 가볍게 들어와 허기를 채우는 곳이죠. 열심히 하다 보면 손님도 차츰 늘 거에요. 그래도 안 되면 그때는 문 닫아야죠. 하지만 잘 될 거에요."

일본인 사치에는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서 작은 일본 가정식 식당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치에는 돈을 벌 생각이 없는 걸까요? 식당은 오픈한지 한달이 지났지만 파리만 날리고 있습니다. 아니 손님이라고 하나 있기는 한데, 와서 공짜 커피만 마시고 갈 뿐입니다. 시내 서점에서 우연히 만나 사치에의 집에 머물며 식당 일을 도와주게 된 미도리는 미안하고 답답한 마음에 일본 관광객을 겨냥해 광고라도 내보자고 하지만 사치에는 단호합니다. 그녀가 운영하는 식당은 관광객들이 한 번 왔다 가는 곳이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지나가다 들러서 밥 먹고 놀다 가는 그런 편한 장소이길 바랍니다. 그런데 동네 사람들은 낯선 외국인인 그녀를 보고 식당 밖에서 수군거리기만 할 뿐, 식당 문을 열고 들어오지는 않습니다. 정말 열심히만 한다고 잘 될까요?

 

"미도리상 내일 시나몬롤 만들어 볼까요?"

미도리와 운동을 하다가 사치에는 뜬금없이 시나몬롤을 만들자고 합니다. 갑자기 시나몬롤이 먹고 싶어진 걸까요? 아무래도 일본 가정식으로는 안 되겠다는 걸 깨달은 걸까요? 다음날 사치에와 미도리는 시나몬롤을 만듭니다. 손님이 오든 말든 자기들이 먹으려고 재료를 아끼지 않고 구운 시나몬롤은 먹음직스럽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강렬한 계피향은 식당 밖으로 퍼져 나갔고, 밖에서 구경만 하던 동네 사람들은 드디어 식당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옵니다. 빵과 커피를 맛있게 먹으며 사치에와 친구가 되는 동네 사람들. 맛있는 빵은 식당 문과 함께 냉랭했던 동네 사람들 마음의 문까지 열 수 있었지요

그런데 시나몬롤의 강렬한 유혹을 견딜 수 없었던 건 영화 속 동네 사람들만이 아니었습니다. 세 여인이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는 장면을 보면서 저도 따라 들어가고 싶어졌더랬지요. 그들과 함께 오븐에서 막 꺼낸 계피향이 폴폴 나는 시나몬롤이 먹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사는 동네에는 시나몬롤을 구워서 파는 빵집이 없었습니다. 별 수 없어 포기하려 했지만 잊으려 할 수록 점점 더 생각이 나더군요. 상사병에 걸리는 느낌이 이런 걸까요? 참을 수 없어서 결국 직접 만들어 먹기로 했습니다. 레시피를 찾아보니 시판 호떡 믹스로도 만들 수 있다고 했습니다. 믹스라면 10년 전에 많이 해봤는데 별로 어렵지 않았었지요. 당장 제일 싼 미니 오븐을 구입하고 호떡 믹스를 사서 시나몬롤을 만들었습니다. 모양은 좀 어설펐지만 딱 제가 생각했던 계피향 폴폴 나는 따뜻한 시나몬롤의 맛이었습니다. 맛있는 건 나눠 먹어야지요. DVD를 빌려줬던 친구와 시나몬롤을 나눠 먹으며 다시 한번 <카모메 식당>을 봤습니다

카모메 식당_시나몬롤.jpg

 


"좋아보여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거."

"하기 싫은 일을 안 할 뿐이에요."

항공사에서 짐을 잃어버려서 어쩔 수 없이 헬싱키에 머무르게 된 마사코. 그녀도 매일 카모메 식당에 놀러 옵니다. 20년 동안 병든 어머니와 아버지를 간호했는데, 1년 사이에 두 분이 모두 돌아가셨다네요. 유감을 표하는 미도리에게 20년 만에 족쇄가 풀린 것 같다고 말합니다. 20년 만에 자유의 몸이 된 마사코는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모릅니다. 다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즐겁게 사는 사치에가 부러울 뿐이었습니다

힘들게 일했던 직장을 그만둘 때 저는 몇 달 쉬었다가 다시 직장을 다닐 생각이었습니다. 6개월 동안 전에 같이 일했던 친구들이 사는 스페인과 프랑스에 놀러 갔다가 터키와 모로코를 여행하고 와서 전에 일했던 곳과 비슷한 회사에서 일하려고 했는데... 취업이 안 되었습니다. 당황스러웠지요. 학력이나 경력으로 봤을 때 당연히 전에 일했던 곳보다 좋은 조건으로 금방 일할 수 있게 될 줄 알았는데... 현실의 저는 그냥 일찍 퇴직한 뒤에 재취업이 안 되는 40대일 뿐이었습니다. 스스로 족쇄를 벗어 던지는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족쇄를 그리워하고 있었지요. 아니 그리워해도 다시 돌아갈 수도 없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뭔지도 모르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마사코와 같은 상태였지요. 그래도 하기 싫은 일을 안 하는 건 사치에와 같았습니다. 그런데 왜 저는 즐겁지도 좋아보이지도 않았을까요 아 시나몬롤을 만들 때는 즐거웠습니다. 나눠 먹을 때도 즐거웠고요. 다른 것들도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기왕에 오븐도 샀으니까요. 난이도 ""의 머핀, 쿠키 종류부터 시작했습니다. 30여년 전의 엄마처럼 "제대로" 배우고 싶어서 베이킹 수업도 들었습니다. 프리 믹스처럼 미리 준비된 재료가 아니라 밀가루와 다른 재료들을 계량하고 발효하는 귀찮고 까다로운 작업까지 배웠습니다. 이제 친구들과 가족의 생일에는 "당연히" 케이크를 만들어서 선물합니다. 말을 하지 않으면 제과점에서 산 걸로 알 정도로 모양도 그럴 듯 해졌습니다. 지금은 빵을 굽는 시간 자체가 즐겁고 행복합니다. 지난번에 망쳤던 빵을 이번에는 제대로 만들어 내며 한 단계 도약했다는 성취감도 느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만든 빵을 먹으며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보며 다시 한번 행복해집니다

그래서 이제 저는 사치에처럼 살고 있을까요? 아쉽게도 하기 싫은 일을 안 하지는 못 합니다. 영화와 현실을 다르지요. 어쩔 수 없이 하기 싫지만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네요.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이런 저의 모습 "좋아보이"지 않을까요?




--- 변경연에서 알립니다 ---

 

1. [출간소식엄마가 시작하고 아이가 끝내는 엄마표 영어

변화경영연구소 10기 김정은 연구원이 세번째 책 <엄마가 시작하고 아이가 끝내는 엄마표 영어>를 출간하였습니다엄마가 공부하는 모습을 보이면 굳이 ‘하라 하라’하지 않아도 아이는 따라하게 되나 봅니다아이가 다섯 살이었을 때부터 중학생이 되기까지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가족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찾아낸 집에서 할 수 있는 영어공부법을 담아냈다고 합니다듣고읽고놀다 보면 영어가 되는 실현 가능한 영어교육법이 궁금하신 분들의 일독 권해드립니다:

http://www.bhgoo.com/2011/854744

 

2. [팟캐스트] 교양인은 무엇을 공부하는가? 2부– 많이 헤매야 내 길이 보인다

64번째 팟캐스트 에피소드는 연지원 작가의 <교양인은 무엇을 공부하는가?> 2부가 이어집니다연지원 작가에게 여행와인의 의미와 글쓰기 모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그리고 인문학의 효용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인문학과 실용성은 쓸모 없음의 쓸모 있음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또한 이제 막 독서를 시작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좋은 책을 선택하여 읽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니 방송에서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http://www.podbbang.com/ch/15849?e=23004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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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0 19:32:53 *.212.217.154

그런 사연이 있으셨군요^^


최근 아는 지인이 천연발효빵을 만드셔서

빵의 세계를 잠깐 들여다본 적이 있습니다.

파리바게트 빵이 제일 맛난줄 알고있던 저에게는

신선한 세계였지요.

그런 건강한 빵을 만들어

사람들과 나누는 행복을 잠시 그려보았습니다.


다음편도 기대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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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5 07:06:15 *.180.157.29

천연발효빵은 베이킹 중에서도 또 다른 세계인 것 같아요. 까다롭고 정성이 많이 들어가야 해서 전 엄두도 못 내고 있답니다.

맛있는 빵 먹고 나면 일반 제과점 빵은 먹기 싫어지더라구요.

언젠가 마음편지 독자님들과도 맛있고 건강한 빵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네요.

늘 따뜻한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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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2 07:26:28 *.72.185.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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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5 07:11:50 *.180.157.29

소개해주신 단팥빵 영화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조만간 봐야겠네요.

연대님이 읽어주시는 걸 듣는게 그냥 읽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어요.  

수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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