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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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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12일 20시 23분 등록

내친김에 루앙프라방

 

색다른 여행을 하려던 게 화근이었다. 가족 모두 슬리핑 버스를 타고 밤을 도와 루앙프라방에 가기로 했다. 터미널에 도착해 버스가 출발하기를 기다린다. 여기까진 좋았다. 배낭여행객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때부터 낌새가 이상했다. 한 사람 정도는 있을 법한 그들 대신 오로지 라오 사람들만이 분주하다. 사람들은 커다란 봇짐과 계란판 묶음, 울어대는 닭을 그대로 버스 짐칸에 실었다. 미처 싣지 못한 짐은 버스 지붕 위에 얹어 밧줄로 묶었다. 뭔가 아니다 싶은 생각이 지나가던 찰나, 버스는 출발했다.

 

2층으로 된 침대 칸엔 끊임없이 라오 음악이 흘렀고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사람들은 지정된 좌석표를 무시하고 자체적인 좌석 재배치에 들어갔다. 이땐 이 분들이 왜 이랬는지 몰랐지만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알게 됐다. 중간 중간에 들리는 마을 마다, 휴게소 마다 사람들은 물밑 듯 타기 시작했고 어느덧 우리 침대는 모두 함께 앉아 가는 좌석이 됐다. 중간 지점인 방비엥에 이르러선 침대 한 칸에 여러 명이 무릎을 잡고 앉아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 볼일이 급한 아이와 화장실에 다녀오니 자리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없었다. 내 자리였다고 말하니 그저 웃는다. 사람들은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웃기도 하며 즐겁게 얘기하고 있었다. 그렇게 버스 안이 소란스러울수록 알 수 없는 음악의 볼륨도 높아졌다. 잠은커녕 혼을 빼놓는 상황에 환장할 노릇이다. 계속 탈수도, 내릴 수도 없다. 침대에 누워 느긋하게 눈 붙이며 가려던 계획은 날아갔다. 머리 위 말 풍선에 침대에 발 뻗고 노래 부르는 나는 뻥하고 터지고 병아리가 어지럽게 돌며 삐약삐약 약을 올린다. 7시간 정도 걸린다는 버스는 비엔티안에서 전날 오후 8시에 출발해 그 다음 날 루앙프라방 버스터미널에 오전 10시에 도착했다. 14시간이 걸렸다. 잠은 단 1초도 못 잤다. 지옥을 보려거든 추천한다. 그리하여 역설적으로 루앙프라방이 가장 기억에 남는 도시가 되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지옥을 맛보고도 루앙프라방을 사랑한다면 믿겠는가.

 

루앙프라방 Luangprabang, 라오스 옛 왕조 란쌍 (Lan Xang, 란은 백만 단위를 나타내는 숫자고 쌍은 코끼리라는 뜻이다) 왕국의 수도였다. 도도하게 흐르는 메콩강이 양팔로 품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다. 미합중국 전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그의 임기 말년에 마지막 여행지로 루앙프라방을 찾았다. 한국에 편의점만큼 절이 많다. 그것도 모두 5백년이 넘는 절들이다. 6 3천여명이 사는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유일한 도시다. 해발 700m에 위치해 있어 다른 도시가 뜨거울 때 이곳은 선선하다. 동남아 반도 북쪽에 위치해 서늘하고 습하지 않다. 우리나라의 겨울 그러니까 11월에서 2월 사이에 이 곳을 온다면 지구 최고의 날씨를 맛볼 수 있다. 더 많은 수식으로 루앙프라방을 설명할 수 있겠지만 수다를 그친다. 간 밤, ‘버스 사태 1년 전 일로 느껴지는 건 한 숨도 못 잔 탓에 혼미해진 정신 때문이겠다. 벌건 눈을 하고, 발을 헛디뎌 가며 루앙프라방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사위가 붉어진다 싶으면 푸시 Phu si 언덕에 올라야 한다. 석양이 도시 전체를 주황으로 물들이며 서서히 떨어지는 모습을 봐야 한다. 명심할 게 있다. 떨어지는 태양을 봐선 안 된다. 노을에 빠진 도시가 얼마나 아름다운 지를 봐야 한다. 산이 보듬고 강도 안아 주는 마을을 태양까지 마지막 사력을 다해 보우하는 그 모습을. 밤이 되면 언덕을 내려온다. 내려오자마자 보이는 건 야시장이다. 그냥 야시장이 아니다. 지구에서 가장 조용한 야시장이다. 호객행위도 없지만 흥정도 없는 기이한 시장이다. 혹여 나쁜 마음에 턱 없는 가격을 불러 보는 나 같은 사람이 있다. 그림을 파는 아주머니는 너 같은 인간은 처음 본다는 듯 기절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침묵의 시장은 모순이어서 마치 착한 자본주의가 그곳에 숨어 사나 싶을 정도다.

 

새벽 6시 즈음해서 숙소를 나서면 거리엔 보통 사람들보다 스님들이 더 많다. 서른 곳도 넘는 사원에서 쏟아져 나온 스님들이 탁발을 한다. 주황색 장삼을 걸친 스님들의 행렬은 장관이다. 맨발의 스님들이 줄을 지어 지나는 곳곳에는 무릎을 꿇고 그릇을 머리 위로 올려 음식을 공양하는 여인들(신기하게도 외국 여행자들을 제외하면 라오 남성들이 공양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여전히 나는 이것이 궁금하다) 이 있다. 스님보다 더 스님다운 그들은 탁발한 후에도 긴 치마를 곱게 여미고, 두 무릎을 곱게 꿇고 앉아 자신의 시야에서 공양한 스님들이 사라질 때까지 눈을 감고 합장한다. 그 모습이 아름다움을 안으로 머금고, 말을 함부로 뱉지 않고 두는 함장축언 含章蓄言의 순례자 같다. 신기한 것은 그들이 마치 루앙프라방 같고, 루앙프라방이 꼭 그들 같고, 흙을 잔뜩 머금고 흐르는 메콩이 꼭 같이 겹치고, 어젯밤 침묵의 야시장이 커다란 루앙프라방 사람같은 것이다. 물성이 엮여 들고 사람이 섞여 들어 하나의 큰 심상으로 동질화 되는 야릇한 느낌이 오는 길, 다시는 슬리핑 버스를 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부랴부랴 예매했던 비행기 안에서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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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7 17:55:03 *.33.16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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