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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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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10일 22시 39분 등록

철민아(저의 어린 시절 이름). 애비다. 세월이 참 빠르구나. 네가 벌써 두 딸의 아빠가 되다니. 그만큼 이 애비도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구나.

 

철민아. 이 애비는 말이다 물려 받은 재산이 없다 보니 내 새끼들 밥 굶길까 그게 무서웠다. 이 애비도 배운 게 없다 보니 농사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그래서 뼈 빠지게 내가 할 줄 아는 일에 온 젊음을 다 바쳤다. 따뜻한 밥 한 숟가락 내 새끼들 입으로 들어가게 해 주는 게 내 행복이자 무거운 짐이었지.

 

그런데 이 애비 혼자 힘으론 바깥 일도 챙기기 빠듯하여 집안 일은 돌 볼 겨를도 여유도 없었단다. 네 엄마도 바깥 일을 도와야 하는 처지니 장남인 철민이 네가 동생들을 잘 돌보면서 미리미리 소 여물도 주고 밥도 해 놓고 청소도 깔끔하게 해 놓았으면 하고 바랬다. 땡볕에 하루 종일 현기증 느끼며 쪼그리고 앉아 일한 내 피곤한 육체는 아무 일도 안 해 놓고 TV만 보는 너를 따뜻하게 대해 줄 수가 없었단다. 너는 유독 동생들보다 놀기를 좋아하고 이리 저리 핑계 대며 도망 다녔지.

 

기억나니? 하루는 네가 건너 마을 친구들과 놀기 위해 내 눈을 용케 피한 후 막 고개를 넘어가려던 찰나. 난 네 이름을 수 십 번도 넘게 불렀다. 넌 네 두 손으로 귀를 막고는 못 들은 척 고개를 후다닥 넘어갔지.

 

그뿐이더냐. 방과 후 너는 일부러 일손이 부족한 날만 골라 학교에서 축구를 하고 늦게 오거나 친구 집에 들러 일이 마무리 될 즈음 들어 오더구나. 혼날 각오로 일그러진 네 얼굴엔 이미 수심이 가득했다. 물론 너도 이 애비를 도와주긴 했다. 밭에 고추를 심고 밭 옆길을 따라 이어진 뚝방 길에 콩을 심고 논에 농약을 주는 고된 일도 했다. 그렇지만 넌 요령을 자주 피웠다. 우리 가족 모두 구름 한 점, 바람 한 오라기 없는 뙤약볕 아래에서 농사일을 했는데 넌 자주 몰래 구석진 곳을 찾아 쉬곤 했었지. 네 몸과 피부는 너무 소중했고 그만큼 넌 이기적이었다. 넌 장남이면서도 연약한 공주이고 싶었던 게지. 내가 그렇게 거칠게 널 다뤄도 미꾸라지처럼 잘 빠져 나가더구나.

 

근검절약에 대해 얘기 좀 해볼까? 우리는 가난했기 때문에 1원이라도 아껴 써야 했는데 넌 분수에 맞지 않게 작은 돈의 소중함을 모르고 주머니에 있는 돈은 바로 다 써버리곤 했었지. 물이나 전기를 절약할 줄 몰랐고, 연필이나 종이 등 학용품도 아껴 쓰지 못했다. 그 점 또한 이 애비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장남은 가족의 미래다. 그래서 네게 기대감이 컸었는데 용케 입사한 대기업도 일년도 안되어 그만둔다고 한 날. 하늘이 무너지는 듯 허무했다. 회사에서 나눠준 회사 로고가 박힌 체육복을 입고 운동장에 운동하러 가면 애비 친구가 부러운 눈으로 쳐다봤는데 이젠 그 기쁨도 사라져 운동마저 끊어 버렸었다. 남의 자식들은 잘도 판사도 되고 변호사도 되고 고위 공무원도 되는데, 내 자식들은 하나 같이 못 마땅했다. 난 돈이 없어 초등학교밖에 못 나왔지만 넌 해외에서 대학원까지 나온 놈이 못할게 뭐 있다고 계집애처럼 힘들다고 엄마 붙잡고 하소연 하는지 모르겠더구나. 돈 없어 배우고 싶어도 못 배운 한을 네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아 악착같이 뼈 으스러지게 일했건만 그 대가가 고작 나약한 변명이나 지껄이는 너를 보니 울화통이 터지더구나.


 

철민아. 애비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 해 살아왔다. 


배우지 못해 표현력이 부족했을 뿐이다. 그리고 사랑의 매 만큼 강력하게 자식 훈육에 도움이 되는 대안을 찾지 못했을 뿐이다. 애비도 그렇게 맞으며 커왔고 그 이외의 방법은 곁눈질할 여유도 시간도 없었을 뿐이다. 때리고 욕하며 애를 키우는 방법은 내가 아는 유일한 훈육 방법이었다. 이 애비도 아빠는 처음이었다. 누구 하나 나에게 보여준 적도 가르쳐 준 적도 없는 그럴싸한 가정 교육을 너에게 어찌 적용할 수 있겠느냐? 이 애비도 억울하구나. 내 억울함은 누구에게 하소연 해야 하는 것이냐? 사랑한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은 미국 말처럼 낯설고 혀가 꼬여 내뱉지 못하겠구나. 그런 말들은 네 엄마에게 실컷 듣거라.

 

대신 부탁 하나 하자꾸나. 내가 먼저 이 세상을 떠나거든 불쌍한 네 엄마, 내 대신 잘 보살피고 모시거라. 다음 생에서는 부자 아빠에게 태어나게 해 달라고 이 애비가 염라대왕에게 부탁해 놓으마. 그러니 이제 이 못난 애비를 용서해 주었으면 좋겠구나.

 

철민아. 이 애비의 첫 기쁨이었던 아들아. 그 동안 내 아들 노릇 하느라 고생 참 많았다, 내 새끼.  








- 변경연에서 알립니다 -


[출간소식『인문학으로 맛보다 와인치즈빵』 이수정 저 

"와인 마시고 치즈 먹을 때 무슨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이 책은 와인치즈빵에 대한 전문 서적이 아니다미식 테이블이 낯선 당신을 위한가벼운 마음으로 읽는 이야기 책읽고 나면 와인치즈빵이 조금 더 편안하게 다가오는 바로 그런 책이다이 책 한 권으로 당신은 식탁 위의 재미있는 이야기꾼이 될지도 모른다.   

http://www.bhgoo.com/2011/index.php?mid=notice&document_srl=864496


[출간소식] "서른 다섯출근하기 싫어졌습니다유재경 저 

서른다섯누구보다 열심히 일해온 직장생활 5~10년차이제 열심히만 하는 걸로는 나아지지 않는다회사생활 2라운드가 시작되는 시기때려치지 않고권태기에 빠지지 않고나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책에는 몸과 마음을 관리하며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처방이 가득하다일과 삶에서 원하는 것을 이루고 싶다면 저자의 처방을 따라가보자.  


http://www.bhgoo.com/2011/index.php?mid=notice&document_srl=864755

IP *.37.9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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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12 23:36:37 *.52.45.248

아버지 ...  자식을 사랑하는 그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지네요 ! 

저도 엄마라고 부르지만 감히 아빠라고 부르지 못했던 아버지가 보고 싶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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