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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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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13일 00시 13분 등록

수틀리면 터져버리는 그녀, ‘에트나처럼

 

소설가 김영하는 그의 저서 내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에서 시칠리아에 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시칠리아에는 어렸을 적부터 내가 생각해오던 이탈리아가 있었다. 따사로운 햇볕과 사이프러스 나무, 유쾌하고 친절한 사내들, 거대한 유적들과 그 사이를 돌아다니는 주인 없는 개들, 파랗고 잔잔한 지중해와 그것을 굽어보는 언덕 위의 올리브 나무, 싸고 신선한 와인과 맛있는 파스타, 검은 머리의 처녀들과 느긋하고 여유로운 삶. 예전에 로마와 피렌체, 베니스를 여행한 적이 있지만 내가 꿈꾸던 이탈리아는 발견하지 못했다. 그것은 그저 영화나 관광엽서, 여행사의 팜플릿이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아니, 그것들은 모두 시칠리아에 있었다.‘

 

에트나 산은 시칠리아의 심장이다. 우리는 오늘 그 심장의 홍심을 파고 들기로 했다. 에트나로 가기 위해 고속도로를 빠져나오자 엔나가 눈 앞에 펼쳐 진다. 엔나, 엔나는 시칠리아의 중심이다. 에트나가 시칠리아의 심장이라면 엔나는 음부다. 페르세포네가 뛰어 놀다 하데스에게 잡혀 갔던 그 곳. 낮은 구릉과 구릉이 끝없이 이어져 있고 그 사이에 밀이 움트는 은밀한 곳이다. 지하세계 하데스의 땅에서부터 양분을 빨아당기고 여인의 미소 같은 햇살로 대지가 통째로 광합성을 함에 틀림없다. 풍요로운 시칠리아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시칠리아는 죽은 신화가 아닌 아직 살아있는 신화를 만날 수 있는 지구상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다. 그 흔적을 잠시 얘기해 보자. 우리는 여기서 잠시 옆길로 샌다.

 

神話의 시칠리아

시칠리아는 하데스의 땅이다. 하데스는 지하세계의 신이다. 즉 시칠리아는 지하세계의 신이 지배하는 돌계집 같은 땅인 것이다. 생명이 움트지 못하고 사랑이 있을 법하지 않은 그런 땅이다. 그러나 이 황무지 같은 땅에도 단 한번의 신들의 사랑이 있었다. 하데스는 크로노스와 레아의 아들로 제우스를 도와 티탄족을 정복한 뒤 지하세계를 지배하게 된 죽음의 신이었다. 지하세계의 신이기 때문에 매우 가혹하고 냉정하지만 결코 사악하고 부정을 저지르는 악마적인 신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기피하는 두려운 존재였다.

 

죽은 영혼이 지하세계로 가려면 저승의 강 스튁스를 건너야 한다. 그 강에는 매우 늙고 고집 센 카론이라는 늙은 사공이 있어 죽은 자의 혼을 은전 한 닢을 받고 강 건너로 실어다 주었다. 강을 건너 저승 입구에 도착하면 문 앞에는 머리가 셋 달린 케르베로스라는 무서운 개가 지키고 있었으니 한번 들어간 영혼은 다시는 나올 수 없었다. 어두운 지하 세계의 왕답게 하데스는 지상 세계에는 두 번밖에 나타나지 않았다. 한번은 자신의 아내인 페르세포네를 납치하러 올라갔고 또 한 번은 포세이돈의 쌍둥이 아들을 도우러 퓔로스에 갔다가 헤라클레스의 화살을 어깨에 맞아 치료를 받으러 올라갔을 때였다.

 

에트나 화산의 분화구는 하데스가 생애 두 번, 지상으로 올라올 때 쓰던 통로 중의 하나였는데 어느 날 그는 시칠리아의 한 가운데쯤 있는 평원에서 꽃을 따며 놀고 있던 페르세포네를 보게 되고 반하게 된다. 그곳이 엔나다. 그리곤 하데스는 그녀를 단박 안아 지하세상으로 데리고 가서 왕비로 삼게 된다이것이 하데스의 유일한 사랑이었다. (‘구본형 칼럼에서 일부 내용 인용)

 

수틀리면 터져 버리는

신화를 해석하는 힘은 각자의 몫이다. 나에게 에트나는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세계의 답이다. 그녀는 아직 살아있다. 죽어 박제된 돌덩이가 아니라 그녀는 여전히 길길이 날뛰며 아직 살아있는 것이다. 하데스적 권능이 설 자리도 없이, 허무한 인간은 도무지 볼 수 없는 강인한 자의 삶이다. 오늘은 에트나로 간다.

 

에트나로 가는 길은 경이롭다. 에트나 남쪽 사면을 오르며 제 맘대로 흘러서 굳어진 시커먼 화산돌을 보며 생각한다. 산은 흐른 흔적이다. 아직 흐르고 있는 시간의 상징적 모습이다. 그 위에 엎어진 시간들이 숲이다. 자신의 안에서 뜨거움이 제 마음대로 흘러 넘친 열정의 무늬다. 그러므로 대중없다. 에트나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뿜어 냈고 뿜어낸 것들은 이내 굳었다. 골이 패여지고 마루금이 만들어진 자리를 지리학적 이유와 근거를 들이대지 말자. 우리 인생이 흐르는 것, 강이 흐르고 매미가 우는 것, 어미가 제 자식에게 젖을 빨리는 것과 그 젖을 흠뻑 마시고 무럭무럭 자라 다시 성교하고 자식을 낳는 사태를 물리와 생물학적 연구로 밝혀 본들 뭐하겠는가. 그것에는 이유라는 게 없다는 것만 알게 될 뿐이다.

 

에트나에서 시간이 사라진 자리를 보았고 나 또한 아득해진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앉아 여긴 2500년전 아테나가 지배하던 시칠리아 시라쿠사가 된다. 나는 긴 천을 두르고 끈으로 만들어진 신발을 신고 있다. 제법 더운 날씨에 아랍에서 막 건너와 사람들이 먹기 시작한 아렌치노를 점심으로 먹는다. 한가한 점심을 마치고 일어나 천을 한번 두른다.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다는 에트나 정상부에 홀로 앉아 눈을 감으니 여긴 그리스였다. , 와인이 필요하다. 시간을 넘어서 신화를 이야기할 땐 온 몸이 젖을 필요가 있다.

 

눈을 뜨니 에트나가 다시 연기를 뿜고 있다. 매캐한 유황 냄새가 바람에 날린다. 에트나는 아직 뜨겁다. 우리에게서도 에트나의 모습이 있다. 그것을 볼 수 있는 건 우리가 아직 뜨겁기 때문일 테다. 수틀리면 밑도 끝도 없이 제지 않고 터져 버릴 수 있는 뜨거움과 화끈함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겠다. 곳곳에 하데스의 서사와 유적이 이 산에 있다. 그러나 유적들은 말을 하지 않았다. 말을 할 수도 없다. 그저 자신의 흔적을 눈물겹게 보여줄 뿐이다. 그 눈물을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하는 건 우리의 몫이다. 죽은 것들은 터지지 않는다. 유적 같은 삶을 살 것이냐? 수 틀리면 터져 버리는 에트나의 삶을 살 것인가? 객기어린 질문이 여전히 나오는 걸 보면 아직 커야 하는 성장기일까 싶다.

 

보름간, 회사에 자리를 비웠지만 내가 없어져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 또한 에트나를 다녀온 이후에도 아무렇지 않게 일상에 묻힌다. 새벽에 일어났고 검은 양말을 신었고 덜 말린 머리를 하고 출근 버스를 탄다. 시칠리아는 어디에 있는가, 에트나는 기어코 터져버릴 것인가, 시칠리아도 에트나도 어쩌지 못하는 일상은 과연 나에게 무엇인가.

 

그때 시칠리아에 다다르기 전 이스탄불에 들렀었다. 이스탄불을 떠나며 보스포러스 해협을 똑똑히 보았다. 대륙도 어쩌지 못하는 바다의 명징한 길, 거대한 유럽과 아시아가 그 좁은 해협으로 갈리어지는 사태에 포세이돈도 가이아도 속수무책이었다. 아직 남아 있을 시차에 대한 관성과 피곤한 젯레그에도 출근하는 놀라움에 신화도 말장난에 그치는 일상의 잔인함을 느끼며 대륙을 나누던 그 해협을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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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15 11:02:28 *.52.45.248

20 대에 국가대표팀 코치가 됐던 저에게 유럽은 전쟁터였죠,

칼 한 자루에 의지한 채, 축적된 문화와 전통과 역사, 그 축적된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시합,

전  그런 그들과 싸워 이겨야 하는 전쟁같은 삶을 살았죠. 세계화라는 말이 나오기 이전에 말입니다.  

그래서 늘 '이번에 전 번 보다 더 나은 결과가 없다면 나는 다시 비행기를 탈 수 없다는'    

비장한 생각으로 비행기를 타곤 했었습니다. 늘 불가능과 한계에  도전하는 피끓는 시절이었죠,   

그래서 인지, 매년 몇 번 씩 갔던 그 곳에 대해 남는 기억은 하나도 없습니다. 절박함과 비장함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오직 단 한 번 갔던  스승님과의 여행, 그 여행의 편안함과  기쁜 추억밖엔...

그 낭만이 있고 예술이 있고 인간적인 사랑이 있던 그 행복한 단 한 번의 기억... 전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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