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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19일 10시 16분 등록
불현듯 이제는 때가 되었다는 신호가 왔다. 라고 말하면 그만 일 것이나 어쩐지 이리 간단히 설명해 치워버려서는 안 될 것 같다. 지난 연말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이라는 단어를 인연으로 만난 친구들이 모두 함께 할 수 있는 단톡을 만들었다. 널리고 치이는 게 단톡인 세상에 그까짓 단톡 하나 만들어 놓고 뭐 이리 호들갑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이하 ‘아기시’)은 ‘엄마들을 위한 변화경영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변화경영사상가이신 스승과 함께 2010년 연구원 과정을 거치며 경험했던 변화의 여정을 같은 처지에 놓인 엄마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만든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힘든데 어떻게든 그 상황을 해결해보겠다고 여기 저기 기웃거리다 몸 지치고 맘 다쳤던 짧지 않은 시간들이 떠올라 정성을 다했다. 적어도 이 프로그램과 인연이 닿은 엄마들만큼은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이 프로그램 안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그러니까 엄마를 위한 변화경영 토탈솔루션이었던 셈이다.

여기까지 말해놓고 나니까 좀 찔린다. 다시 읽어보니 마치 연구원 과정을 통해 나를 힘들게 하던 모든 문제들이 완전히 해소되었다는 뉘앙스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럴 리가 없다. 백번 양보해 다른 문제들은 그럭저럭 해결되었다고 해도 사실 가장 큰 문제, 그러니까 내게 이 모든 여정을 시작하도록 했던 근본적인 문제가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를 먹여 살려 줄 새로운 밥벌이를 찾는 것이었다. 나는 나를 가볍게 해주었던 솔루션으로 그녀들을 도움으로써 밥을 해결하고 싶었다. 그러니 얼마나 간절하고 진지했을 것인가?

포인트는 바로 여기다. 아무리 살펴보고 다시 봐도 너무나 분명했다. 스승이 나눠주신 변화경영의 핵심은 ‘사랑’이었다. 스승은 연구원 모집 공지에 연구원 과정의 수확으로 ‘50권의 책, 50개의 칼럼, 100개의 코멘트, 그리고 첫 책’을 드셨다. 내가 육아휴직까지 해가면서 연구원이 된 것도 물론 바로 그 수확이 탐나서였다. 하지만 스승과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도무지 부정할 수가 없었다. 스승이 내거신 수확은 바로 나처럼 눈에 보이는 성과만 믿도록 훈련받은 ‘사린이’(사랑 어린이)를 구제하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는 것을. 그러니까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사랑’이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돈을 받은 대가로 주는 게 무슨 사랑이야. 서비스지. 돈을 내고서야 양질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믿으니까 세상이 이구동성으로 돈돈거리느라 각박해지고 있는 거잖아. 사랑을 빙자한 서비스 말고 진짜 사랑, 그러니까 조건없는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는 돈 안 받고 내 삶을 다 건 토탈 솔루션을 나눠줘야 한다는 건데...’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 즈음 스승이 세상을 떠나셨다. 그에게 받은 사랑을 세상에 되갚겠다는 약속을 채 지키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었다.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 약속은 지키고 싶었다. 그래야 남은 세월, 두 발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만난 것이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 1기였다. 얼마나 정성을 쏟았는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고단함 역시 말로 다 할 수 없었지만, 직접 해보지 않고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기쁨에 이끌려 2기를 받고야 말았다. (그 즈음 역시 약속을 지키기 위해 『구본형의 마지막 수업』을 엮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기에 더더욱 그 기쁨이 짜릿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그러는 사이 1년을 기약하고 시작한 육아휴직은 4년을 꽉 채워가고 있었다. 소위 ‘현타’였다. ‘사랑, 좋아하네. 네가 낳은 애들은 돈없이 사랑만으로 저절로 큰다던? 멀쩡한 직장까지 때려치우고 생판 남들 돌보느라 가족들은 물론 내 자신까지 뒷전이라니. 이게 제 정신이니?’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선택은 명확해졌다. 복직이었다. 쓸데없는 욕심 다 버리고 애들 기르고 나를 돌보는 데 필요한 돈을 벌러 간다고 생각하자 그리 끔찍했던 직장이 구세주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삶이 내게만 그리 호락호락할 리가 없다. 4년 만에 돌아간 직장에 도무지 적응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적응하고 싶지가 않았다. (돌이켜보면 ‘적응해야 한다’와 ‘그러고 싶지 않다’는 두 마음간의 전쟁이 내 소진의 가장 결정적인 원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더 이상 ‘꿈’ 따위는 떠올릴 수조차 없을 만큼 만신창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당시의 내게는 ‘아기시’ 역시 ‘직장’만큼이나 아픈 실패의 다른 이름일 뿐이었다. 그저 살아있기도 버거운 시간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집으로 온지 일 년이 채 되지 않을 무렵인 2016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아기시 3기>를 진행하고 있었다. 대상은 20년지기 대학 동창들과 아이친구 엄마들이었다. 오랜 인연이고, 피할 수 없는 인연이니 적어도 ‘생판 남’은 아니라는 것이 절대로 안하겠다는 것을 다시 시작한 궁색한 명분이었다. 그렇게 다시 한번 희한한 조합의 시스터후드가 만들어졌다. 역시 정성을 다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전만큼 힘들지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들과 함께 하는 순간에만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때 알게 되었다. 내가 그들을 돌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를 함께 돌보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내게 주어진 남은 시간들은 또 다른 그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채워가게 되리라는 것을.

여기서 새로운 문제가 떠올랐다. <아기시>, 즉 ‘사랑’을 나누는 일이 ‘돈’이 되지 않아도 계속 할 수 밖에 없는 활동이라면 밥은 어떻게 해결해야하는가? 그러니까 2016년 이후의 시간들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시간들이었다. 그 과정에서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단숨에 끝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역시 무리다. 편지가 벌써 한 장반을 훌쩍 넘겼으니 다음 이야기는 다음 주로 넘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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